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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5주간 토요일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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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 성심 기념일] 제 아버지의 집(루카2,4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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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6-12 ㅣ No.147514

 

2021년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성모 성심 기념일제 아버지의 집(루카2,41-51)

 

1독서<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이사61,9-11)

내 백성의 후손은 민족들 사이에내 백성의 자손은 겨레들 가운데에 널리 알려져 그들을 보는 자들은 모두 그들이 주님께 복 받은 종족임을 알게 되리라.

10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11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화답송

1사무 2,1.4-5.6-7.8ㄱㄴㄷㄹ(◎ 1ㄱ 참조)

◎ 저의 구원자 주님 안에서 제 마음 기뻐 뛰나이다.

○ 주님 안에서 제 마음이 기뻐 뛰고주님 안에서 제 얼굴을 높이 드나이다당신의 구원을 기뻐하기에제 입은 원수들을 비웃나이다

○ 힘센 용사들의 활은 부러지고비틀거리던 이들은 힘차게 일어선다배부른 자들은 양식을 얻으려 품을 팔고배고픈 이들은 더는 굶주리지 않는다아이 못낳던 여자는 일곱을 낳고아들 많은 여자는 홀로 시들어 간다

○ 주님은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며저승으로 내리기도 저승에서 올리기도 하신다주님은 가난하게도 가멸게도 하시며낮추기도 높이기도 하신다

○ 주님은 비천한 이를 땅바닥에서 일으켜 세우시고가난한 이를 잿더미에서 들어 높이시어존귀한 이들과 한자리에 앉히시며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복음<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루카2,41-51)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 찾아내지 못하였다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독서 (이사61,9-11)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땅이 새순을 돋게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서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10-11)

 

10절에서 '나는의 1인칭 단수는 1-3절에 화자로 제시된 메시아를 지칭할 수도 있고하느님의 백성을 대표 단수로 받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주님은 그의 종 메시아를 구원의 주로의로움의 성취자로 세우셨으며그의 백성에게는 메시아께서 이루신 구원과 의로움을 소유케 한다이런 측면에서 두 가지 가능성을 모두 고려할 수 있다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메시아의 활동과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축복을 받게 된 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본다.

 

하느님의 백성이 주님 곧 그 하느님으로 인해 크게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인데그 이유는 이어지는 부사절을 통해 설명된다중요한 사실은 7절 하반절('자기네 땅에서 재산을 갑절로 차지하고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것이 되리라')을 통해 제시된 것과 마찬가지로하느님이 가져오신 일특히 구원의 행사는 그것과 관계된 모든 자들에게 완전한 기쁨넘치는 기쁨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 기뻐하는 주체도 '내 영혼'(napshi ; my soul)이란 표현을 사용하는데이것은 하느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기쁨이 일시적이거나 피상적인 것이 아닌그 존재의 심연까지도 파고드는 참되고 온전한 기쁨임을 확인시켜 준다이것은 그야말로 사람의 영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기쁨이라 할 수 있다.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이유 접소사 ''(ki)로 시작하는 본문 이하는 왜 하느님의 백성이 자신의 영혼으로 크게 기뻐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하느님은 친히 정의의 갑옷과 구원의 투구를 쓰시는 분으로(이사59,17), 그의 메시아의 구속 사업이라는 중재적 수단을 반드시 거쳐그것을 자기 백성에게 입혀 주시는 분이다.

 

구원의 옷과 의로움의 겉옷이라는 표현은 구원과 의로움()를 지칭하는 은유적 표현이다이 구원과 의로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하느님께서는 원래 의롭지 못한 자들을 불의한 상태로 구원하시지 않는다그것은 그분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신 성품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죄인들불의한 자들이 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혹은 자연적으로 의로운 자들거룩한 자들로 변하지는 않는다따라서 하느님께서는 그의 종 메시아의 대속을 기반으로메시아의 구속 성혈의 공로를 믿는 자들을 의로운 자로 변화시키시며 이것을 근거로 구원을 이루신다.

 

"모든 삶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로마3,23.24)

이것은 의로움과 구원의 근거 모두 하느님의 백성 당사자에게 있지 않고그리스도의 대속적 구속사업과 이를 계획하시며 주도하신 주 하느님께 있음을 잘 보여준다.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본문을 원문의 뉘앙스를 살려 번역하면, '신랑이 화관을 쓰고 사제 직분을 수행하는 것처럼그리고 신부가 자기 보물로 장식하는 것처럼이 된다이러한 번역을 통해서도 드러나듯이본문은 앞 문장의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신랑'과 '신부'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직유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여기에서 '관을 쓰고에 해당하는 '예카헨 페예르'(ekahen peer)는 '화관(혹은 사제의 관)을 쓰고 사제직을 수행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페예르'(peer)는 본장 3절에서 메시아가 ''를 쓰고 있는 자에게 그것을 대신해서 씌워주는 '화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재 대신 화관), 탈출기 39장 28절과 에제키엘서 44장 18절에서는 '사제가 머리에 쓰는 관'(priestly turban)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또한 '예카헨의 원형 '카한'(kahan)은 '사제'를 의미하는 명사 '코헨'(kohen)이 어근이 되는 동사로서 '사제직을 수행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표현이다.(탈출28,1 ; 민수3,4)

 

그런데 사제의 두건을 쓰고 그 직분을 수행하는 일은 사제가 하는 일이지 결혼식장의 신랑이 하는 일이 아니다따라서 본문은 마치 사제가 사제 복장을 하고 머리에 사제의 관을 쓰고 그 직을 수행하듯신랑이 성스러운 결혼식때 입는 아름다운 예복을 입고 머리에 관을 쓰고 신부와 함께 결혼 예식을 거행하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하느님께서는 결혼식장의 신랑 신부가 특별한 예복정결한 의복을 착용하는 것처럼인류 구원의 중재자로 오실 메시아에게 당신의 의로움과 구원을 입혀 주셔서 그 일을 성취하게 하실 것이다그리고 그가 이룩한 의로움(), 그가 완성한 구원을 의지하는 모든 백성들에게 동일한 의로움과 구원을 입혀 주실 것이다하느님께서 입혀 주시는 구원과 의로움의 예복은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 때 가장 아름답고 정결한 예복을 착용할 때와 같이그것을 입는 모든 이들을 복되고 아름다우며 영광스럽게 변모시켜 줄 것이다.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본절은 주 하느님께서 그의 구원 사업을 수행하신 결과를 모든 민족들이 보는 앞에서 움돋게 하실 것을 예언하고 있다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본문에서 '새순에 해당하는 단어와 '싹을 솟아나게 하듯및 '솟아나게 하시리라에 해당하는 단어가 동일한 어근 '차마흐'(tsamach)를 취한다는 사실이다.

이 단어는 이사야 4장 2절과 예레미야 33장 15절에서 하느님께서 다윗의 뿌리로부터 의로운 싹 메시아를 나오게 하신다는 사실을 예언하는 데서도 사용된 바 있다이러현 표현상의 유사성은 본문의 '의로움'과 '찬미'가 곧 메시아를 지칭하는 은유적 표현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는 전적으로 의로운 분이시며자기를 믿는 자들을 의롭게 하시며(이사53,11), 하느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하는 분으로(마르코1,11), 그를 믿는 자들에게 하느님을 찬양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 주신다.

결국 메시아는 모든 민족들 앞에서 움돋움으로 세상 만민을 향해 하느님의 구원 사업을 증거하실 것이며그 구원에 참여하도록 인도하실 것이다메시아 사역의 궁극적 목표는 마지막 절의 '하느님의 공의 구현과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는데 있다는 것이다.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개구리소리 이젠 그만냅시다.

(루카 2,41-51)

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숫자 열둘(12)은 12아들, 12지파 곧 교회의 완성의 숫자이지요.

교회는 예수님의 죽음으로그분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피로 완성되는 것으로 생명의 완성인 것입니다.(사도20,28참조그런데 그 완성의 때에도 사람의 관습에 따른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인 것이죠.

 

(마르7,7) 그들은 나를 헛되이 예배하며 사람의 계명을 하느님의 것인 양 가르친다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를 두고 한 말이다.

 

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45ㄱ 찾아내지 못하였다.

하느님의 뜻을 담고 오신 예수님을 곧 하느님의 일을 사람들 가운데에서 찾으려니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사55,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45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사람의 길에서 하늘의 길로 돌아가는 곧 메타노이아(회개) ‘가던 길에서 방향을 바꾸어 돌아서는 모습인 것입니다.


46ㄱ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사흘 뒤의 성전곧 사흗날(3)의 죽음과 부활로 완성되는 성전을 뜻합니다.

사람의 길사람의 뜻을 위한 성전이 돼버린 그 성전을 정화 하실 때~


(요한2,19-21) 19 예수께서는 '이 성전을 허물어라내가 사흘 안에(3으로다시 세우겠다하고 대답하셨다. 20 그들이 예수께 '이 성전을 짓는 데 사십 육 년이나 걸렸는데그래 당신은 그것을 사흘이면 다시 세우겠단 말이오?' 하고 또 대들었다. 21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라 하신 것은 당신의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46ㄴ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율법교사 그 유다인들과 성전에 관한 질문을 하셨을 것이다.


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예수님의 어머니가 얘야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왜 저(12-완성)를 생명구원의 완성을 사람들(방법사이에서 찾으셨나요구원은 하느님(성전)께 있음을 모르십니까오늘 우리들에게 물으시는 것입니다.


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51ㄱ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하늘이신 분께서 땅의 존재들에게 순종하시는 모습그것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입니다하늘에서 땅으로 오신 구원자의 모습이지요.

 

(루가1,78-79) 78 이것은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이라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 79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51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드릴 때위와 같은 의미를 모르고자신의 뜻을 위해 입으로만 되풀이 한다면 빈말(바톨로게오)- 바트라코스, (개구리) 될 것입니다. <개굴 개굴 개굴~~ㅎㅎ~>


(마태6,7-8)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만 하느님께서 들어 주시는 줄 안다. 8 그러니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너희의 아버지께서는 구하기도 전에 벌써 너희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계신다아멘.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복음(루카2,41~51)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49~51)

 

율법에는 13세 이상의 유다 남자들은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과월절), 초막절(장막절), 오순절(추수감사절)을 예루살렘 성전에서 지켜야 할 것이 명시되어 있다(탈출23,14~17; 신명16,17).

하지만 포로 시대 이후 여러 지역에 흩어진 유다인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했다그래도 경건한 유다인들은 적어도 유월절(과월절행사만큼은 참석하기 위해 노력했다.

 

율법의 의하면 유다인 남자들만 성전을 방문했지만(탈출23,17), 후기에는 여자들도 이 행사에 참여했으며예수님의 부모 역시 매년 유월절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성전을 방문하는 경건한 삶을 살았다.

그리고 유다 사회에서는 13세가 되면 책임있는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의식을 거행했는데이들은 '바르 미츠바'(bar mitzvah)라는 '율법의 아들'이 되어 회당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다.

 

탈무드나 미쉬나의 기록에 의하면유다 소년들은 13세가 되기 1~2년 전에 예루살렘 성전에 미리 올라가 '율법의 아들'이 되기 위한 행동들을 배웠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12살에 성전에 올라간 것은 다음 해에 있을 종교 의식을 미리 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루카 복음 2장 43절의 '축제 기간'은 유월절과 무교절을 지키는 니산월 14~21일의 일주일간의 규정들(탈출12,15; 레위23,8; 신명16,3)을 말하는데예수님의 가족들은 이 축제 기간을 다 준수했던 경건한 집안이었다.

그리고 축제 기간이 끝나고 소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고 나오는데, '남았다'에 해당하는 '휘페메이넨'(hypemeinen; stayed behind)은 '휘포메노'(hypomeno)의 부정(不定과거 능동태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실수로 남았던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로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고 당시 유월절에 참여한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남자는 남자끼리여자는 여자끼리 무리를 지어 내려갔고아이들은 아버지나 어머니 쪽 가운데 한 편을 따라갔다.

 

그래서 요셉은 예수님이 마리아 일행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반면에마리아는 요셉 일행에 있는 것으로 당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루카 복음 2장 44절의 '찾아보았지만'에 해당하는 '아네제툰'(anezetoun; they sought; they began looking for)의 원형 '아나제테오'(anazeteo)는 '반복'이라는 개념이 있는 접두어 '아나'(ana)와 '찾다'를 뜻하는 동사 '제테오'(zeteo)의 합성어로서 반복해서 찾는 것을 뜻한다.

 

더구나 이 동사는 여기서 미완료 과거로 사용되어 부모가 잃어버린 예수님을 힘들게 두루 찾아다녔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하룻길이 되는 노중 숙소에서 서로 만나 예수님이 없음을 확인했을 것이고그제서야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고 또 찾기 시작했다.

 

한편루카 복음 2장 45절의 '찾아내지'에 해당하는 '아나제툰테스'(anazetountes; seeking)는 현재분사형으로 사용되어 잠시 쉴 틈도 없이 분주하게 찾아다니는 모습이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그리고는 루카 복음 2장 46절 이하에서 성전에서 율법 교사들 가운데서 앉아 그들과 토론을 하고 있는 예수님을 발견하고는 부모가 무척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그 당시 소년 예수님과 함께 토론을 한 율법 교사들은 유다 랍비로서 당시 고령이었던 할렐삼마이그리고 가므리엘을 비롯한 유명하고 해박한 율법 박사들이었던 것이다.

소년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당시 성전 안에 있었던 회당에서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에 관한 것으로 토론했다.

 

루카 복음 2장 47절의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해당하는 '에피 테 쉬네세이 카이 타이스 아포크리세신 아우투'(epi te synesei kai tais apokrisesin autou; at his understanding and his answers)에서 '슬기', '지혜'로 번역될 수 있는 단어 '쉬네세이'(synesei)의 기본형 '쉬네시스'(synesis)는 '이해력', '통찰력', '추리력등을 뜻하는데하느님께로부터 오는 하느님의 지혜와 내적 통찰력을 말한다.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삶의 경륜이나 경험에서 얻는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 (sophia)와는 다른하느님의 지혜로 그들과 토론한 것이다.

 

여기에 대해 율법 교사들은 경탄하였는데루카 복음 2장 47절의 '경탄하였다'에 해당하는 '엑시스탄토'(eksistanto; were astonished; were amazed)의 원형 '엑시스테미'(eksistemi)는 '제 정신이 아니다', '넋을 잃다'는 뜻인데여기서는 미완료 과거 시제로 사용되어 자신들보다 한 수 위의 예수님의 깊은 통찰력과 답변에 대해 계속적으로 경탄하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루카 복음 2장 48절에서 아기의 부모도 당시 성전에서 석학들과 토론하는 아들 예수님의 모습에서 큰 충격을 받고, '얘야'라고 부른다

 

'얘야'에 해당하는 '테크논'(teknon; son)이라는 호격 안에서 '안도', '놀람', '기쁨', '책망'등의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교차된다.

특히 어머니가 애타게 찾았다고 표현하는데여기서 '애타게'에 해당하는 '오뒤노메노이'(odynomenoi; anxiously; sorrowfully)는 '매우 걱정하여'라는 뜻으로 아주 강한 느낌을 주는 단어이다.

 

예수님께 대한 마리아와 요셉의 사랑이 남달리 깊었고인류구원사업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인간적인 성장 과정을 밟아가시는 예수님을 잘 보살펴 드려야 하는 소명 의식 때문에그만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아들 예수님께 대한 근심이 컸을 것이다.

 

'제 아버지의 집에'

 

루카 복음 2장 49절의 '제 아버지의 집에'로 번역된 '엔 토이스 투 파트로스 무' (en tois tou patros mou; in my Father's house)에서 ''으로 번역된 '토이스'(tois)는 관사 ''(ho)의 여격 복수로서 '것들'로 번역되는 단어이다.

그래서 '제 아버지의 집에'는 '제 아버지의 것들에'라는 의미라서, '제 아버지의 집의 일들에', '제 아버지의 사람들 가운데또는 '제 아버지의 집들에'라는 번역이 다 가능하다.

 

그리고 '저는 있어야 하는 줄'로 번역된 '데이 에이나이 메'(tei einai me; I had to be)에서 '데이'(dei)는 비인칭 동사로서 '~이 필요하다', '~을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한 사람의 의무를 말하기 보다는구세주 혹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그에게 맡겨진 구원 사업과 관계된 일을 말한 것이다.

 

루카 복음 2장 49절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시는 장면인데소년 예수님은 이렇게 이미 육적인 부모의 관계를 초월하여 감당해야 할하느님께서 맡겨 주신 구원 사업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루카 복음 2장 48절과는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부모를 책망한 듯이 보이며마리아가 요셉을 예수님의 아버지로 말한 데 대해 예수님 자신은 성부 하느님을 자신의 아버지라고 분명히 말한다.

 

이제 루카 복음 2장 51절에서 예수님께서 있어야 할 곳은 하느님의 집이며그가 관계해야 할 진정한 일은 하느님의 일이지만아직 그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소년 예수님은 육신의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세로 그들과 함께 집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에 해당하는 '판타 타 레마타'(panta ta remata; all these things)는 루카 복음 2장 49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 뿐만 아니라 메시야의 탄생을 알린 천사의 말(루카1,27~37)과 천사들의 말을 전한 목자들의 말(루카2,17), 그리고 시메온과 안나의 말(루카2,29~35.38), 소년 예수님 및 아기 예수님과 관련되어 일어난 모든 일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마음속에 간직하였다'에 해당하는 '디에테레이~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dieterei~en te kardia autes; kept~in her heart)에서 '간직하였다'로 번역된 '디에테레이'(dieterei)는 미완료 과거로서 과거 시점에서의 '진행', '끝나지 않음'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마리아의 마음속에 계속하여 간직하여 지키는 것을 보여 주며성령께서 깨우쳐 주실 때까지 기다리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2012년 6월 16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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