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2일 (일)
(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경축 이동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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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論/ 교회 48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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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식 [alkim5533] 쪽지 캡슐

2011-07-17 ㅣ No.62712

            그리스도論 / 교회  48 회
 
  그리스도論
   그리스도 논쟁
   이단  이설
   이단  이설,  이교
   공의회
   삼위일체론
   마리아론
   교회론
  
   교회           (승전)
   

제자들을 부르심 : 공동체 소속 조건(가령 세례)이나 조직 구조(공동체

지도 직무)를 갖춘 교회 제도 (Institution) 는 아직 예수님에게서 볼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하느님 나라 선포는 부활 전 구조를 갖춘 일정한

결집 운동을 형성하였다. ‘제자들’ 의 부르심이 그것이다. 제자들은 예수

과 함께하는 공동체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특별한 과제를 떠맡

은 구릅이었다. 즉 예수님의 특수 단체가 아니라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

에게 말을 건네고 모으는 과제를 안고 있었다. 로핑크는, 이스라엘 안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드리

되 자기가 살던 곳에 머무르며 그 곳에서 하느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과,

예수님을 따라 나선 제자들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단은 윤곽이 드러난 집단이다. 예수님이 열 두 제자만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제자들을 불러모은 이유는 루가 복음 10장 2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여기서 말하는 추수는 이스라엘을 세말의 하느님 백성으로 모은

다는 뜻이다. 제자들은 열두 제자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섬기는 일의 협력

자들이요, 이스라엘을 모으는 일의 협력자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전체가

예수님의 메시지를 받아들이지 않자 제자들에게 다른 기능이 주어졌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에 전적으로 헌신하는 일, 새로운 생활 질서로 철저히

회개하는 일, 형제 자매를 공동체로 불러모으는 일이 맡겨 졌다.

열둘 : 열둘과 베드로의 부르심에서도 공동체에 대한 예수님의 관심을 볼 수

있다. 제자들 중에서도 선택된 그러나 고유한 이름으로 ‘열 둘’이 있다. 열 둘

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가르키는 상징적 숫자이다. 열둘은 새 하느님 백

성의 선조들로서가 아니라 지금 최종적으로 부름을 받은 이스라엘의 대표자로

이해된다. 예수님은 열둘을 불러 세우는 상징적 행위로 자기가 전체 이스라엘

을 상대로 하고 있음을, 그리고 전체 백성을 사제나 율법학자들에게서가 아니

라 자기의 권한있는 말씀으로 부른 자들 안에서 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예수님은 고유한 교회를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열둘로서 부활 전에

이미 사회적 제도를 건설하였다.


 참고 :  한국가톨릭대사전 제2권 1995년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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