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1일 (목)
(홍)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 “나를 따라라.” 그러자 마태오는 일어나 예수님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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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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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03-21 ㅣ No.110884

용서의 의미를 가진 영어는 ‘Forgive’입니다. 상대방을 위해서 좋은 뜻으로 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좋은 뜻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좋은 뜻으로 생명을 창조하셨고, 좋은 뜻으로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용서는 단순히 나에게 잘못한 이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란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좋은 뜻으로 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보복의 의미를 가진 영어는 ‘Revenge’입니다. 이것은 되갚아 준다는 뜻입니다. 상대방이 한 행위가 나쁜 것이면 그 나쁜 만큼 나도 갚아 준다는 의미입니다. 북한의 핵 개발은 국제사회의 고립을 초래했습니다. 국제 사회는 북한에 대해서 경제 제재를 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사드배치 결정은 중국의 경제보복으로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보복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더욱 키우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기보다는 드러난 현실에 대해서 처방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읽은 동화 중에 해님과 바람이 있습니다. 잘 아는 것처럼 바람은 길을 가는 사람의 옷을 벗기지 못하였습니다. 더욱 옷깃을 여미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해님은 길을 가는 사람의 옷을 벗게 하였습니다. 옷을 벗고 싶은 환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보복은 상대방의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설령 열었다고 해도, 언제고 힘이 생기면 다시금 닫을 것입니다. 힘이 생기면 상대방의 마음을 열려고 할 것입니다. 보복은 끊임없이 증오와 원망의 악순환을 가져오게 됩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열 수 있으며 더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남은 것이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 좋은 뜻으로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그렇습니다. 보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가정은 조용할 수는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마음이 닫히고, 열등감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용서로 문제를 해결하는 가정은 시끄러워 보일 수는 있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입니다. 사랑이 열매 맺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께 용서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형제가 잘못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처벌과 제재는 법과 규칙의 문제입니다. 사회는 이와 같은 법과 규칙이 있어야지 질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용서는 양심과 내적인 자유의 문제입니다. 처벌과 제재는 질서를 유지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마음의 평화를 주거나, 상처를 치유해 주지는 못합니다. 용서는 마음의 평화를 주기 때문에, 내적인 상처를 치유해 주기 때문에 필요한 것입니다.

 

宗敎란 으뜸가는 가르침이라는 한자입니다. Religion은 엉킨 실타래를 푸는 의미가 있는 영어라고 합니다. 으뜸가는 가르침으로 세상사의 엉킨 실타래를 푸는 것이 종교라면 그리하여 해탈의 경지에 이르고, 그리하여 참된 구원의 문에 도달하려면 꼭 是非를 가려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규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도 용서와 사랑으로 해결되는 것을 봅니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갈등과 아픔이 있다면 그것까지도 놓아버리고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따라서 용서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할 수 있도록 용기를 청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신앙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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