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따뜻한이야기 신앙생활과 영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글을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나를 닮은 너에게】겸손의 진보

스크랩 인쇄

김철빈 [ssk5762] 쪽지 캡슐

2018-08-17 ㅣ No.93339

【나를 닮은 너에게】겸손의 진보 기타(예수님) / 예수님

2015. 9. 8. 22:04

 

복사 https://blog.naver.com/perpe64/220475741794

번역하기 전용뷰어 보기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2코린 12,10

 

 

너는 겸손하냐?

네가 겸손한지 생각해 보자. 너는 자기 칭찬이든 자기 비난이든 다른 사람들에게 너 자신에 관해 말하는 것이 즐거우냐? 너는 대화를 독점하며 너를 과시하느냐? 언쟁을 좋아하고, 쉽게 분노하고, 냉소적이고, 비웃음을 일삼느냐? 창피당한 것을 곱씹고, 일이 잘못되었을 때 변명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며 네 잘못된 점을 고치기를 꺼리느냐? 사람들이 너를 대하는 태도에 불만을 갖고, 게임에서 졌을 때 부루퉁해지고, 다른 사람들이 인기를 얻을 때 그들을 헐뜯느냐? 네 윗사람들의 말을 따르기가 어려우냐? 너와 동등한 지위의 사람들이나 아랫사람들의 말을 듣기를 꺼리느냐?

이러한 결함들 중 일부를 가지고 있다 해서 반드시 네가 교만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것들은 사람들 틈에 끼고 싶은 유치한 욕망이나 열등감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은 위험 신호다.

너 자신을 잘 살펴보아라. 너의 결점을 인정하여라. 그리고 나의 도움을 구하여라. 그러면 무한한 내 덕의 보물을 얻을 수 있게 해주겠다.

너는 내 도움이 필요하다. 청하여라. 나의 바람은 주는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주는 것이다. 겸손해지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청하여라. 순수를 바라느냐? 나에게 청하여라. 믿음을 바라느냐? 나에게 청하여라. 의탁하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청하여라. 사랑하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청하여라. 거룩함을 바라느냐? 나에게 청하여라. 평생 너 혼자서 노력하는 것보다 나의 덕을 공유하기를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는 순간에 더 많이 진보할 것이다.

겸손을 달라고 기도하여라. 그러면 네가 청하는 대로 해주겠다. 너는 오해와 무시와 비난과 비웃음을 받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온유함을 보이고 분노에 찬 무자비한 말을 억누르고 불필요하게 네 의견을 표명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내놓는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을 삼가는 귀중한 기회를 준 것에 대해 나에게 감사해야 함을 기억하여라.

이러한 것은 힘든 훈련이고 때로는 고통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하거나 언짢은 심정을 드러내고 싶은 유혹을 자제해야 하기 때문에 겸손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네가 너 자신을 들어 올려 나를 향하고, 이 훈련들을 원하기에 중단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도록, 또 내가 너를 가르치고 있고 나의 가르침은 완벽하다는 것을 네가 알고 있기에 그것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도록 너를 도울 준비가 항상 되어있다.

나의 도움으로,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압박감이 완화될 것이다. 너는 적어도 한동안만이라도 너 자신에 관해 적게 말하고, 호기심을 피하고, 잘못을 고치고, 네 재능을 과시하지 않는 일이 꽤 쉬워졌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네가 악의 없이 저지른 가벼운 사고에 대한 비난을 조용히 받아들이고, 사소한 일에 대해 미소로 반응하고, 서투른 일을 벌였거나 큰 실수를 했을 때도 평정을 잃지 않게 될 것이다. 또한 비웃음을 당해도 즐거워하고, 네 초라함을 기뻐하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실패할 때도 있고 성공할 때도 있다. 이 겸손의 훈련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 것이다. 말을 삼가고, 천한 일을 거부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고, 네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마음에서 몰아내고, 짜증을 참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등을 돌려 방을 나와버리기도 하겠지만, 겸손에 언제나 성공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자제를 하는데도 겸손하지 못할 때가 있다.

실패하면 몹시 속이 상할 것이다. 그러나 계속 노력하다 보면 마침내는 심오한 진리를 알게 된다. 이러한 실망 자체를 새로운 태도로 받아들이고 너 자신과 나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실망은 제가 뜻하는 바이며, 제가 그것을 당하는 것이 마땅하고 저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그것은 마음을 아프게 하기 때문에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저는 그것을 원합니다.”

일단 여기까지 오면 갑자기 어려운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는 것 같을 것이다. 겸손은 굴욕과 같은 것이 아니라 자진해서 원하고 선택하고 구하는 것이며, 굴욕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된다.

나의 순교자들은 고통을 좋아하지 않았다. 세례자 요한은 나와 함께 지낼 수 있었음에도 요르단 강에 머물러야 했을 때 좋아하지 않았다. 요셉과 마리아는 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고 싶지 않았다. 마리아는 갈바리아 산에 서있고 싶지 않았다. 나는 십자가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감각과 고통이 거부하면 할수록 우리의 의지는 더 받아들였다.

나의 또 다른 자아여, 너는 모욕을 필요로 하지도, 원하거나 좋아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것을 싫어할수록 그것을 원함으로써 나를 섬기고 사람들을 구원할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과거의 네 잘못에 비해 너무 가혹한 벌은 아님을 기억하여라.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와 함께 모욕과, 그보다 더 심한 일을 당하는 것을 감내하여라. 네가 하느님께 좀 더 빨리 돌아서지 못하고, 그분을 더 잘 섬기지 못하고, 그분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고, 많은 위험에서 구해준 것을 인정하지 않고, 그분이 주시는 넘치는 은총에 응답하지 못했으니 너 또한 부당함을 받아 마땅함을 항상 인정하여라. 네 고통을 내 고통과 합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여라. 그리고 바오로와 함께 이렇게 말하여라.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더없이 기쁘게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라면 약함도 모욕도 재난도 박해도 역경도 달갑게 여깁니다. 내가 약할 때에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2코린 12,9-10)

그러니 과거처럼 나는 어느 누구를 위해서도 바보가 되지 않을 거야하고 생각하지 마라. 그보다는 이렇게 말하여라.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기꺼이 바보가 될 겁니다. 19세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바보가 되셨듯이 나도 그분을 위해서라면 모욕과 비웃음과 멸시와 박해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겁니다.”

 

 

 

- 6장 덕

- 나를 닮은 너에게 / 클래런스 J. 엔즐러 / 바오로딸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114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