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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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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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3-31 ㅣ No.3474

4월 1일 부활 팔일 축제내 월요일-마태오 복음 28장 8-15절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회복실에서>

 

전신마취가 필요했던 큰 수술을 끝낸 환자를 옆에서 지켜 본적이 있습니다. 회복실로 옮겨온 뒤 가족들은 이제나 저제나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일단 의식이 빨리 돌아와야 안심이 되는 것이 보호자들의 공통된 마음이겠지요.

 

초조했던 몇 시간이 지나고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환자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면서 의식이 회복되었는데, 그 순간 잔뜩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뭔가 외쳤는데, 같이 있던 주변 사람들이 듣기 송구스러울 정도의 "욕" 비슷한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수술전의 불안함, 그리고 그간 병원에서 받아왔던 스트레스 등이 쌓여서 무의식중에 그런 욕이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오랜 혹독한 고통과 지울 수 없는 배신감 속에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내뱉으신 첫마디는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홀로 십자가 위에 높이 높이 달려서 겪으셨던 극심한 고통의 순간이 떠오르면서 "너희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말씀하실 수도 있었겠습니다. 특히 쫀쫀하고 비겁하게 자기 한목숨 살겠다고 총알처럼 도망갔던 제자들을 떠올리면서 "한심한 놈들"이라고 야단치실 수도 있었겠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신 첫마디 말씀은 이것이었습니다. "평안하냐?" 여인들에게 오히려 안부를 물으십니다.

 

"평안하냐?"고 물으시는 말씀 이면에는 "그래, 그 동안 나 없이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고, 또 얼마나 혼란스러웠느냐? 이제 안심하여라. 내가 다시 살아서 돌아왔지 않느냐? 이제 내가 다시 너희 가운데 함께 있겠다. 이제 너희는 나와 함께 다시 평화를 누릴 것이다."는 따뜻한 배려가 깔려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외로웠던 순간, 그 고통스러웠던 순간, 배신을 때리고 줄행랑을 쳤던 제자들을 집합시켜서 호통을 치신 것이 아니라 "내 형제들"이라는 칭호를 쓰시며 다시 한번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토록 철저한 배신, 거듭된 배신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번 우리를 형제로 받아주시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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