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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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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연중 제7주일)-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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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은 [stellakang88] 쪽지 캡슐

2017-02-19 ㅣ No.110208

    2017년 2월 19일 연중 제7주일


    ♣“그러므로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 정인준 파트리치오 신부님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하시면서 ‘참 행복’(5,3-12)에 이어 ‘세상의 소금과 빛’(13-16절)에 대해서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과 율법’에 대하여(17-20), ‘화해하고 극기하며, 조강지처를 버려서는 안 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21-47)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오늘의 복음 ‘폭력을 쓰지말며 원수를 사랑하라,’(38-48)는 대명제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탈리오(Talio)법을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법을 다른 말로 ‘동해형법(同害刑法)’, 또는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이라고 하지요. 

    이 법은 구약의 율법의 율법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이 법을 일반적으로는 탈리오법(lex talionis)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탈리오(talio)라는 단어는 ‘이러한’, ‘동일한’ 뜻을 가진 탈리스(talis)에서 파생된 형용사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의 원형은 바빌론 제1왕조의 6대 함무라비 왕(Hammurabi, 재위 B.C 1792-1750)의 법전에서 발견되고 있습니다. 이법이 고대 아시리아, 그리스 문화권, 로마 문화권으로 이어졌다고 보겠습니다. 

    구약의 율법에서도 함무라비 법전의 기류를 읽을 수 있습니다. 탈출기에서 상해에 대한 법을 살펴보겠습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화상은 화상으로, 상처는 상처로, 멍은 멍으로 갚아야 한다.”(탈출 21,24-25) 

    레위기는 이렇게 전합니다. “골절은 골절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는다. 다른 사람에게 상해를 입힌 대로 자신도 상해를 입어야 한다.”(레위 24,20) 

    신명기 저자는 탈리오 법을 이렇게 전합니다. “너희는 그를 동정해서는 안 된다. 목숨은 목숨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갚아야 한다.”(신명 19,21) 

    그런데 주님께서는 ‘복수’의 법 정신에서 ‘앙갚음 하지 말라.’ ‘또는 ’박해자를 위해서 기도하라.‘라 이르시며 동태복수의 율법과 반대되는 사랑의 법을 들어 높이십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의 유대인들의 좁은 세계를 터놓으십니다. 레위기에서 보여 주듯 동족을 싸고도는 법에서 나온 말씀 ‘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네 원수는 미워해야 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마태 5,43-44)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원수 취급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역사적으로 대국의 핍박을 받은 민족이라서 이해가 되지만 그 안에는 동족을 중심으로 하는 배타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18) 

    그런데 주님께서는 유대인 뿐 아니라 세상의 어떤 이들도 사랑의 범위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시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사랑의 보편성을 명하십니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 비와 햇볕을 차별 없이 베푸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사랑을 본받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반대되는 이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46절) 

    그래서 이 보편적 사랑 안에서만이 우리가 하느님께 희망을 둘 수 있지요. 그 사랑에는 자비와 너그러움과 정의가 깃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끝으로 우리에게 너무 버거운 말씀으로 이르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48절) 

    불완전하고 한계가 많은 우리에게 ‘완전’이라는 말씀이 가당치나 한 것인가요?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닮아 이웃에게 너그럽고 사랑의 법을 실천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모습을 새겨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이웃도 우리에게 허물을 덮어주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우리를 대해 준다면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사람’,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겠지요. 

    사도 바오로의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마음 뿐 아니라 하느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자를 파멸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 3,16-17) 

    우리가 내 가족, 내 동족 챙기는 것을 넘어 때로 손해를 볼 줄 알고 때로는 천리를 가자고 하는 이들에게 이 천리를 가 줄 수 있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주님의 마음이 되고 성전이 되며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저자는 자비롭고 너그러우신 하느님을 찬미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우리도 그 노래를 따라 부르며 그분의 크신 사랑과 인자하심을 찬미합시다.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시편 103,8.10) 



    출처: 장성성당     원글보기  ▶ 글쓴이:저구름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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