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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새들,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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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13-11-15 ㅣ No.866

                    [주장] 철새들, 안녕하신가?





박근혜 정부의 진로를 일찍부터 훤히 예상하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속성과 한계를 스스로 극복할 만한 철학이나 정치역량이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유신시대로 역사가 후진하리라는 예상 속에서 걱정과 공포감 같은 것을 감내해야만 했다.    

유신시대로 후진하는 상황이 언제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관심을 가지면서도, 그것이 조기에 갑작스럽게 나타나리라는 것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래서 매우 황당한 느낌이다. 그것이 예상보다 빨리 왔고, 너무도 거칠고 난폭하다는 사실에서 조금은 어지럼증도 느낀다.

미숙함과 유치함과 천박함, 그리고 너무도 뻔뻔한 행태들을 보노라면 저들이 언제 또 어떤 일들을 저지르고 사건을 만들어낼지 흥미진진해지는 심정이 되기도 한다. 정녕 점입가경이다. 국민을 분열시키고 혼란케 하는 ‘정치 아닌 정치’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곤혹스럽기 짝이 없다.        

그런데 나는 이 혼미한 상황 속에서 불현듯 정치철새들의 안위가 궁금해진다. 지난해 대선 시기에 별안간 나타났던 인간 철새들의 대규모 이동, 제법 부산했던 날갯짓들이 다시금 명료히 떠오른다.    

오랜 세월 고난을 겪으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민주당 동교동계 인사들의 집단 이주는 자못 극적이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의 정치현장에서 수많은 철새들의 이동이 간헐적으로 끊임없이 있어 왔지만, 또 현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처럼 세계 최다 당적변경 기록(총14회) 보유자도 있지만, 지난해 10월 15일 거창한 현수막을 내걸고 새누리당에 둥지를 틀었던 동교동계 철새들의 집단 이주는 단연 가장 큰 규모이면서 또 가장 기이한 것이 아닐 수 없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한광옥을 비롯하여 김경재‧안동선‧이윤수‧한화갑 등 20여 명에 이르는 신종 철새들(유제연 송천영 김영도 유갑종 반형식 김형광 이길범 원광호 국종남 최수환 고홍길 신민선 박규식 조한천 하근수 지대섭 이희규 이홍배 전 의원)의 면면을 보면서 나는 실로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들이 내건 현수막은 제법 화려했다. 화해니, 동서화합이니, 국민대통합이니, 새로운 리더십이니 하는 표현들이 그들이 갈아입은 옷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은 있는 법이고,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은 없는 법이라지만, 그들이 내건 구호는 너무도 생경한 궤변의 압권이었다.

철새의 숙명적 한계를 무릅쓰고 그들이 집단 이주를 감행했던 최대의 명분은 ‘국민대통합’이었다. 그 ‘국민대통합’을 향해 유신의 적통 박근혜 대통령(이하 박통)은 무한 질주를 감행하고 있다. 유신 시절 박정희가 통치의 수단으로 강제했던 ‘국민총화’의 실상을 오늘 다시 구현하기 위해 오늘의 박통은 브레이크 없는 차에 후진 기어를 넣고 엑셀라이터를 마구 밟아대고 있다.  

그 철새 집단의 우두머리격인 한광옥은 새누리당에 영입되어 가면서 이전에 새누리당이 공들여 영입했던 안대희 정치쇄신위원장을 사퇴하게 만들었다. 정치쇄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리에 앉은 안대희는 정치쇄신을 해보기도 전에 동교동계 리더 정치인이 돌연 철새가 되어 날아오는 상황을 그대로 볼 수가 없어 사퇴를 감행했던 것이다.

그 후 한광옥은 대통령 직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 앉았는데, 요즘 전국을 순회하며 간담회를 열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전국 순회 간담회 기사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은 유명무실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정치상황 속에서 ‘국민대통합’은 어불성설일 수밖에 없다. 전국 순회 간담회뿐만 아니라 그 무엇을 한다 해도 국민대통합위원회는 ‘빛 좋은 개살구’나 ‘속빈 강정 꼴’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제법 그럴 듯한 명분을 내걸고 민주당을 박차고 나와 새누리당에 둥지를 틀고 장관급의 벼슬을 얻은 한광옥이나, 그와 함께 철새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집단 이주를 감행했던 동교동계 인사들은 오늘 무슨 심정일지 매우 궁금하다.

화해니, 동서화합이니, 국민대통합이니, 새로운 리더십이니 하며 자신들의 집단 이주를 합리화했던 그 신종 철새들의 눈에 오늘의 과거회귀 현상은 어떻게 보일지 정말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철새가 되어 힘껏 날갯짓을 한 대가로 그들은 결국 무엇을 얻었고 얻고 있을까?

그들은 저 험난했던 시절 과연 무엇을 위해 독재 권력과 싸우며 고난을 겪었는가? 고작 오늘의 정치 변신을 위해서 그토록 고난의 길을 걸어왔던 것일까? 하루아침에 철새가 되어 집단 이주를 해간 새누리당 안에서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국물 한 방울이라도 얻어먹고 있는가? 박통이 후진 엑셀을 마구 밟아대어 과거로 돌아가는 오늘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그들은 계속 화해니, 동서화합이니, 국민대통합이니, 새로운 리더십이니 하며 계속 공염불을 외워대고 있을까?

사람이 나이를 먹어 노인이 된다고 해서 다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정치를 한다고 해서 다 정치가이고 정치인인 것은 아니다. 대개는 정치모리배의 길로 간다. 정치인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정치배는 국가나 민족을 위한 대의보다는 자신의 영달과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전력투구한다.

그들에게는 상식이나 양심은 중요하지 않다. 거짓말을 손바닥 뒤집듯이 하면서도 수치심 같은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한다. 인간의 덕목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수치심인데, 정치배들은 갖가지 형태로 수치심 상실의 극치를 보여주곤 한다. 수치심 상실의 한 가지 형태가 바로 변절이요, 변절은 곧잘 철새 행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람이 평생의 여정 속에서 실수와 시행착오를 반복하더라도 말년을 멋지게 장식할 수만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박수를 받는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어렵고도 희귀하다. 과거 6‧70년대 정치인인 정구영‧예춘호 선생 같은 이가 그와 같은 유형일 것이다. 그와 반대로 평생을 대의 쪽에서 잘 살아왔더라도 말년이 올곧지 못하면 인생 전체가 추한 몰골이 되고 만다. 대차게 살았더라도 말년에 망가지는 것은 의외로 간단하고도 쉽다. 3‧1만세운동 당시의 민족대표 33인 중 만해 한용운 선생을 빼고는 모조리 변절을 하고 만 사례에서도 우리는 그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나는 지난해 민주당 동교동계 인사들의 집단 이주 상황을 접하면서 저들이 나름대로 구실을 하여 박근혜 정권이 과거 회귀로 가지 않고 민주주의를 멋지게 진전시켜 나간다면 그들의 철새 짓이 그런대로 가치 있는 일일 거라는 생각도 했고 짐짓 그것을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칫국만 마신 형국이 되어 버렸다. 정치가 실종되어 버린 상황 속에서 인간 철새들의 종적조차 묘연해진 공동(空洞)만을 본다.

지난해 시월 <오마이뉴스> 지면에 <정치철새들의 계절이 왔다>라는 글을 쓰면서 나는 우리 지역의 한 곳 천수만을 장식하는 철새들의 장관을 소개한 바 있다. 철새들을 보자니 인간 철새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도 참 어이없고 마음이 아팠는데, 오늘은 갑자기 그 철새들의 안위가 궁금해진다. 철새들, 안녕하신가?  


13.11.15 13:50 l 최종 업데이트 13.11.15 13:50 l 지요하(sim-o)
태그 : 정치철새, 동교동계, 철새의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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