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홍)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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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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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kim7405] 쪽지 캡슐

2000-06-03 ㅣ No.862

+. 찬미 예수님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요약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의 형상으로 오셔서 나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그래서 나의 죄를 씻어주셨다는 이 사실에서 벗어나 하느님은 인간 모두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시다, 모든 종교에 하느님의 진리가 불완전하게나마 녹아 있기에 그들에게도 구원이 있다는 논리에 빠져 버린다면 이단은 없습니다.

초기 기독교사에 등장하는 삼위일체를 부정했던 이단도 결국 하느님은 인정하기에 그 속에 하느님의 진리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여호와 증인도 하느님의 존재를 믿고 있으니 그들을 이단시 할 수는 없습니다. 몰몬교,통일교도 마찬가지겠고요.

다미 선교회와 같이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교회에 대해서도 우리는 굳이 경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그 속에도 불완전하게나마 하느님의 진리가 깃들고 있으니까요.

오히려 위에서 열거한 종교들은 성서라도 읽으니 차라리 불교나 힌두교 보다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조금 더 정확한 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겠군요.

모두가 구원의 길을 찾아가는 지도가 있는데 좀 더 정확한 지도가 되기 위해 예수님께서 오셨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선은 최선의 적이다’

 

그렇습니다. 선은 최선의 적입니다.

최선이 있는데도 선을 고집한다면 그 선은 그릇된 것입니다.

다른 종교의 선한 모습들(분명히 있습니다)이 구원의 조건을 이룬다고 용인한다면 최선을 이루고자 하는 그리스도교 신앙은 최선에서 선으로 격하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최선을 택하면 좋겠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성서에서 이야기 하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믿음’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요?

 

 

개신교 형제들의 열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전교에 있어서 그들의 방식이 부정적인 영향을 야기시키기도 하지만 그들은 기독교 신앙이 아니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그 긴장감속에서 전교를 합니다.

당연히 성장할 수 밖에 없지요.

가톨릭이 각성하지 않는다면 이 격차는 더 벌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얼마전 종교 통계를 낸 것을 보니 가톨릭은 40대 신자 비율이 가장 높고, 개신교는 10대 신자 비율이 가장 높더군요.

이 의미를 분명히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단 시간내에 해결 될 수 없는 신앙의 문제라고 덮어두는 것으로 해결하지 맙시다.

오히려 더 활발한 나눔으로 해결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회의.

우리가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 할 문제 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와 고난을 같이 나누고 그리스도와 같이 죽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 희망을 이미 이루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이미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나는 그것을 붙들려고 달음질칠 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입니다." (필립비 3: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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