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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토리노성의』 저자 이의원형제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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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기 [josemaria] 쪽지 캡슐

2007-06-08 ㅣ No.713

『신비의 토리노성의 현대병고친다』를 읽고


평화신문에 광고한 저자의 책을 읽고 독자로써 느낀 바를 몇 가지만 적어볼가 합니다. 혹 표현이 거칠더라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본인의 의견을 말하기전에  우선 천주교회에서 이미 2003년 11월 23일 현대 다원주의 안에서의 복음의 위상에 대해 발표한 주교님의 담화문 일부를 인용하고자 합니다. 이 담화문은 종교 다원주의시대인 현세에 매우 중요한 경고를 담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읽어보시고, 그 다음에 본인의 의견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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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성서주간 담화문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요한 14,6)

- 다원주의(多元主義) 안에서 복음의 위상(位相) -


“중략"


 지금 우리 교회가 당면한 이러한 위기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위기를 다음 세 가지 현상에서 관측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자연종교의 확산입니다. 지금까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자연의 훼손이 가져다 준 생태 위기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제 자연은 더 이상 정복 대상이 아니라 인간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풍조가 주변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연을 신성시하는 세계관의 영향은 계시종교를 배제하고 자연종교와 유사한 성향의 종교를 더 선호하게 합니다. 동양종교와 같은 자연종교가 강세를 보이고 계시종교인 그리스도교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습니다.


 둘째, 신영성 운동(NEW AGE MOVEMENT)의 범람입니다. 뉴에이지와 같은 신영성 운동의 이름으로 반(反)그리스도교적인 종교 현상과 운동들이 가톨릭 교회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습니다. 신영성 운동은 개인의 육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이나 평화를 위해서라면 어떤 방법도 동원될 수 있다는 새로운 종교 운동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종교 선택의 가장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물든 신자들은 초월명상, 선, 기공, 요가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습니다.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범신론적인 종교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신앙을 부정하는 감각적이고 열광적인 신비 체험에만 몰입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서 인격적인 하느님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말씀을 통해 인간과 대화하시는 하느님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일찍이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위협하는 이러한 거짓 영성 운동을 경계한 적이 있습니다.


 "훗날에 사람들이 거짓된 영들의 말을 듣고 악마의 교설에 미혹되어 믿음을 버릴 때가 올 것이라고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1디모 4,1).


 셋째,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조입니다. 인간의 자기 본능과 감각과 느낌을 충족시키면 그것이 바로 진리이며 선이며 아름다움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권위를 흔들고 있습니다. 감성에 충실한 것은 모두 선하다는 상대주의적 가치 기준에 기초한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인해 그리스도교적인 절대적 가치 기준이 무너지고 상대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현상이 혼합되어 효력을 발휘하면서 신자들의 신앙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융합과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뒤섞인 이러한 혼합주의의 영향은 결국 경계와 영역과 정체성을 파괴하여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의 경계선까지 허물고 있습니다. 다원주의에 입각한 이러한 움직임들은 신자들에게 혼란을 가중시켜 신앙인들에게조차 교회는 재미없고(교회전례), 고리타분하고(교리교육), 부담스러운(교회윤리)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생락”


 2003년 11월 23일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권혁주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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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께서 그리스도교 교인이신 것 같아 형제라 부르겠습니다. 양해하십시오.

이 형제의 책을 읽고 많은 느낌이 있지만 세 가지만 적어 보겠습니다.

첫째, 이 형제는 기와 성령을 혼동하고 있습니다.

둘째, 이형제가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하는데 그리스도교가 어떤 종교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셋째, 이형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주어라”(마태10,8) 는 예수님의

         명령을  모르고 있습니다.


첫째, 기와 성령의 혼동:

 

“참선, 요가들을 통해서 잠재된 여러 능력(방언, 예언, 치유)들이 개발된다”(책98쪽)고 하였는데, 이 형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이러한 능력은 사람들이 개발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입니다. (코린토전서 12,10을 참고바랍니다)


신약성경 골로사이서에는 이러한 경고 말씀이 있습니다.  새겨들어야 할 성구입니다.


 "여러분은 헛된 철학의 속임수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것은 세속의 원리를 기초로 인간이 만들어서 전해 준 것이지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것은 아닙니다."(골로사이 2,8)


여기서 헛된 철학은 이 형제가 이야기하는, NEW AGE MOVEMENT, 단학, 기공 등을 말합니다. 보기엔 좋아 보이나 거기엔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는 것이지요. 단지 인간의 마음이 이 세상에서의 평안만을 누릴 뿐입니다. 현세에서 육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원한 생명은 보장받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교는

 

하느님은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그 분 앞에서 다른 신을 섬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질투하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20,5; 34,14).


이 형제가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고 신의 영역을 설정하였다고 주장 하는데(책101쪽, 89쪽) 하느님을 믿는 신자가 할 소리가 아닙니다. 자연종교에 대해서는 그렇게 이야기 할수도 있을지 모르나 계시종교인 그리스도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믿음의 성조 아브라함을 부르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신약성경에도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복음15,16) 라고 하지 않으십니까?


즉 인간이 하느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인간을 불으셨고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직접 만드신 종교입니다.


“마음의 가난을 통해 ......마침내 하나님마져 놓아야.......”(책205쪽)한다는 말은 어느 스님의 말인가요? 아님 이 형제의 말인가요?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놓아버면 어떤 상태가 됩니까? 성경에 “마음이 가난한자”(마태5,3)라고 한 것은 “마음이 하느님만을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는 겸손되고 순종하는 마음” 을 말합니다. 그러니 하느님을 놓으면 안되지요. 



셋째, 그저 받았으니 그저 주어라(마태10,8) 는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토리노 성의에서 발하는 빛에 대해서는 이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체험이 없기 때문에 모릅니다. 그러나 이 형제가 그런 능력을 발견하였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형제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게서 이형제에게주신 능력임을 감사한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며 그러한 능력을 받았다면  가난하고 병든자들에게 그저 치료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명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이형제가 책에서 “부자청년의 비유”를 인용하였는데 그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이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하시니 그가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형제는 토리노 성의를 통해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돈을 받지않고 그저 치료해 줄 수 있나요?


이형제께서 기도원이나 성령 세미나등에 참석하여 "토리노 성의"에 대한 체험을 직접 증거 하고 하느님의 능력이 위대하심을 만 천하에 알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능력으로 안수를 해 준다거나, 이형제 친구인 정철 선생과 같이 토리노 성의 그림을 들고가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치유능력이 있음을 간증한 다음,  상처받고 병든 사람들의 병을 고쳐 줄 용의가 있습니까?  물론 무료로 말입니다.


하느님이 이 형제에게 그런 능력을 주셨다면 그것은 그저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분부하신대로 이 형제도 그 능력을 다른 형제들에게 그저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에 대한 보상은 하느님이 해주신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6,33을 참고하세요)


그렇지 않는다면 이형제가 예수님을 팔아 돈을 벌어보자는 속샘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고 정철 선생은 유명하시지요. 그분이 토리노 성의 그림에 손을 얹어 치유된 일이 있다면 그런 분의 간증을 책내용에다 실어야지요. 자신이 직접 체험한 구체적이고 확실한 간증내용 즉 “언제 어떤 증상이었는데 어떤 경로로 치유되었다. 하는.....”


그런데 그런 간증은 책 내용 어디에도 볼 수 없습니다.


책에서 보면, “믿음”에 대해 많이 할애 하셨는데 이형제가 “믿어라”한다고 믿어지는 것입니까? 믿을것은 진리뿐입니다.

 

이 형제가 하는 일을 사람은 몰라도 하느님은 알고 계십니다.  아무쪼록 서두에  인용된 담화문을 잘 새겨 들으시고 이 형제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성령님께 누를 끼치는 일이 아닌지를 다시 한번 살피시기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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