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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종교인을 구하려다 십자가를 진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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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환 [Dominic] 쪽지 캡슐

2003-02-19 ㅣ No.1445

 

 

언론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권력 - 종교

 

언론에게 있어서 가장 부담이 되는 권력은 무엇일까? 흔히들 언론인에게 외압을 얘기할 때는 정치 권력을 연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오늘날의 언론인들만큼, 정치권력에 대해 자유로운 집단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정치판"이라고 불리며 국민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정치권력은 끊임 없이 언론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할지 모른다.

 

신문방송학과 교수들은 언론이 가장 경계해야 할 권력으로 경제 권력을 꼽는다. 자본의 힘이 펜을 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 될 것임을 경고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언론 윤리와 자존심이라는 힘이 경제 권력으로부터 언론인들을 비교적 자유롭게 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 공영 언론이나 독립 언론들이 재벌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은 그런 생각을 뒷받침한다.

 

그렇다면, 정말로 현재의 언론인이 부담스러워 하는 권력 집단은 무엇일까? 적잖은 언론인들이 이에 대해 "종교 집단"을 꼽는다. 종교의 앞에서는 이성이 힘을 쓰지 못하는 현실을 여러 번 목도해 온 언론인이기에 그건 더욱 그러하다.

 

세상에 종교 비리를 끝까지 파헤쳐 온 사람으로 각인되어 문화방송 윤길룡 프로듀서의 예를 들어보면, 그 어려움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피디수첩> 창립멤버로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발을 들여놓은 윤 피디는 5년6개월동안 이 프로그램을 맡는 동안 60여건을 제작했다. 이 가운데 #소쩍새마을의 진실-일력 스님(95년) #대순진리회를 아십니까(96년 3월) #길 잃은 목자-금란교회 김홍도 목사(97년 4월) #석용산 스님은 저승 갈 때 무얼 갖고 가지(97년 10월) #세계정교 총령본존 어디 계십니까(98년 11월) #이단파문, 이재록 목사-목자님 우리 목자님(99년 5월) 등 종교계뿐 아니라 일반에 큰 충격을 던져 준 종교인의 비리를 다룬 작품에서 그의 이름은 빠지지 않았다.

 

이렇게 종교 문제를 집요하게 파헤쳐 온 그의 일상은 한동안 말이 아니었다. 방송 아이템 하나하나 마다 수건의 소송은 기본이요, 신변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면서부터는 한 때 그는 가방 안에 까만 야구 모자까지 넣고 다녔다. 자기 노출을 꺼리게 되면서는 낯선 건물에선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비상계단을 이용하게 되었다.

 

자신의 고통은 자기가 사서한다지만, 가족들의 고통 또한 말이 아니다. 가족들에 대해 몰살 위협에, 해외에 피신을 시키거나 사설 경호원의 경호가 필요한 적도 있었다고.

 

처음엔 격려해 주던 아내도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윤 피디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끝없는 소송에 휘말리게 되고 신변위협까지 느끼게 되니까 ’당신의 공명심 때문에 가족을 사지로 몰아넣느냐’고 하더군요. 전파의 위력 때문인지 거리로 나가면 목소리만 듣고도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요. 때문에 만민교회 신도들이 한번 몰려온 뒤론 사람 많은 곳에 가는 것도 꺼려집니다.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거지요."

 

 

 

오마이뉴스의 바보 같은 짓

 

적어도, 윤길룡 피디의 사례는 언론이 종교 비리를 거론하였을 때, 적어도 해당 언론인 개인에게는 도움이 될 게 전혀 없다는 교훈을 준다. 설사 그것이 유사 종교 집단(이른바 사이비 종교 집단)이거나 지도자의 사적 비리가 만연한 종교 집단일 경우에도 이 교훈은 어김없이 적용되고야 만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뻔히 잘 아는 오마이뉴스가 바보(?) 같은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유사 종교 집단도 아니요, 지도자의 사적 비리가 많은 이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종교 단체도 아니다. 단일 종파로는 최대 규모임을 자랑하는 한국천주교회의 한 성직자를 걸고 "딴지"다. 게다가 오마이뉴스가 딴지를 건 이 성직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널리 알려진 사회복지재단 "꽃동네"의 대표.

 

더구나 오마이뉴스는 의혹을 고발하는 데만 그치지 않았다. "꽃동네"의 해명(?)과 부인에 대해서도 집요하고 꾸준히 파고들고 있다. 급기야, 한국천주교회가 "꽃동네"를 비호하고 있다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오마이뉴스가 그것을 기사화하기 시작하면서는 "오마이뉴스 對 꽃동네"의 양상을 넘어서서 "오마이뉴스 對 한국천주교회"의 양상으로까지 보인다.

 

30년 가까이된 매머드 사회복지재단 "꽃동네"와 4년이 채 안된 인터넷 대안 매체 "오마이뉴스". 우리나라에서만 220년이 된, 국내 단일 종파로는 최대 종교단체인 한국천주교회와 4년이 채 안된 인터넷 대안 매체 "오마이뉴스"

 

혹시 "꽃동네"가 "오마이뉴스"의 문을 닫게 하는 것은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꽃동네의 문을 닫게 하는 건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한 상황.  혹시 한국천주교회가 "오마이뉴스"의 문을 닫게 하는 것은 어쩌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마이뉴스가 한국천주교회의 명맥을 끊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능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이제 "싸움"은 한 성직자의 비리 對 오마이뉴스에서 꽃동네 對 오마이뉴스로, 또 거기에서 한국천주교회 對 오마이뉴스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벌써부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게시판, 오마이뉴스 답글 등에는 "오마이뉴스"를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하고 있다는 점은 이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 오마이뉴스는 모르고 있었을까? 오마이뉴스는 이렇게 불리한 상황이 전개될 줄 이미 예상하였는 지도 모른다. 또 그런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는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이렇게 무모해 보이는 싸움을 이끄는 힘은 뭘까?

 

어느 쪽이 옳은 것인지 필자는 아직 모른다. 다만, 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국천주교회 두 집단 모두가 무모한 "싸움"을 일으킬 정도로 멍청한 집단이 아니라는 것만은 확신한다.

 

또, 이런 불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가 믿고 있는 힘의 실체가 만약 "진리"라면, 하는 두려움과 안타까움에 가톨릭 신자인 필자는 찹찹하기가 이를 데 없다.

 

 

 

난 이런 모습을 지닌 천주교회의 신자이고 싶다.

 

한 2년전 쯤의 일이다. 공중파 방송의 한 프로그램, 아이템 회의 후 커피 타임. 한 선배와 필자와의 대화.

 

"난 말야, 이런 아이템도 좋지만, 언젠가 기독교 관련 아이템도 다루고 싶어.. 들여다 보면 얼마나 썩은 구석이 많은 지 몰라. 정말 외압에 꿋꿋이 맞서며 다뤄야 할 건 이런 아이템 뿐만 아니라, 정말 종교 비리라고 생각하거든.."

 

자칭, 타칭, "골수" 가톨릭 신자였던 필자, 기독교에는 개신교와 가톨릭교가 모두 포함된다는 사실을 일깨우려는 듯, 또 기독교 중에서 가톨릭의 경우 그렇게 썩은 구석이 많다는 점에 대해 많은 이들의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고하려는 듯, 하늘같은 이 선배에게 한마디.

 

"기독교라고 하시면, 개신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천주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 선배, 당돌한 후배가 던지는 질문의 저의가 뭔지 모르는 듯, 필자를 빤히 들여다보며 말꼬리를 흐린다.

 

"물론 개신교를 얘기하는 거지..."

 

이제는 필자는 기독교의 비리를 얘기하는 사람들 앞에서 "거기서 가톨릭은 좀 빼고 얘기하쇼, 아예 기독교라고 하지 말고, 개신교라고 하든지.. " 하는 얘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더, 오마이뉴스에게 부탁한다. 의혹이 있으면 끝까지 파헤치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천주교회를 불의로부터 구해달라고! 그렇게 하다가 오마이뉴스가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끝까지 정확히 밝혀내어서, 내가 한 점 의혹 없는 가톨릭 교회에 편안히 몸 담을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오마이뉴스가 전하는 오 신부 관련 보도가 오보이길 바라는 필자의 마음에도 불구하고,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로서, 또 독자로서 만약 그 보도가 사실이라면 끝까지 밝혀내서 추적하라는 주문과 격려를 오마이뉴스에 보내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한 종교지도자의 비리가 드러나는 것에 대해 그 종교의 신념이 공격받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는 종교인들의 자폐적 맹신주의를 경계한다.

 

오웅진 신부 개인의 비리가 드러나면 꽃동네나 꽃동네 수용자들은 끝장 나고야 만다는 주장과 같이 꽃동네 수용자들의 인권과 오웅진 신부를 동일시하는 주장 또한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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