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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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불편해야 좋은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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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8-09-20 ㅣ No.123625

 


2018년 나해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불편해야 좋은 관계>

 


복음:마태오 9,9-13




부활하시다

루벤스(RUBENS) 작, (1612)

 

 

 

    

불편한 만남은 좋은 관계가 아니다.’라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그럼 편한 관계만 좋은 것일까요

 

요즘 남북 정상회담을 보며 두 나라의 정상은 과연 편한 관계인가, 불편한 관계인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 편한 것만 원했다면 두 정상이 저렇게 만날 수 있었을까요?

 

북측 대표도 남측 대표도 모두 이 만남을 위해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질적, 정신적 부담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에 좋은 만남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마냥 상대만 비판하다가 불편해서 만나기 싫다는 생각만 고집한다면 두 나라의 관계는 진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손해 보는 것만을 생각하며 서로 하나가 되자는 데에 불만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마냥 편한 것만 찾다가는 이대로 영원히 갈라진 채로 주저앉아 있어야 합니다. 사실 불편해야 좋은 관계지 관계 안에서 편한 것만 바라다가는 영원한 외톨이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세리 마태오를 나를 따르라!”며 부르십니다. 어떤 부연 설명도 없이 그저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셨지만 마태오 또한 주저함 없이 예수님을 따라나섭니다. 보통 사람을 설득할 때 그 사람의 감정을 좋게 만들어서 원하는 것을 얻어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르심은 너무도 단호합니다. 그를 설득시키려는 어떤 노력도 없습니다. 물론 그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에 부르셨겠지만, 사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그렇게 부르고 계신 것입니다. 이 부르심은 세리로 남느냐 예수님의 제자가 되느냐의 존재의 변화를 포함하는 부르심입니다. 구원을 받겠느냐, 말겠느냐의 부르심인 것입니다. 이 초대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죄에 머무르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지옥에 있는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르심은 당신 삶으로의 초대이지 편안함과 기쁨만을 주지는 않습니다. 마태오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여 사도가 되고 복음도 저술하고 주님을 위해 순교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세리를 제자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마태오를 당신 삶으로 초대하십니다. 만남이란 어차피 서로 간의 아픔을 전제합니다.

 

 

아프니까 관계입니다. 편안한 관계는 하나도 없습니다. 관계 속에서 서로 편안해지려고 하기 때문에 결국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애인 때는 서로를 위해 많은 희생을 해도 좋았습니다. 그래서 관계가 좋습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는 이제 관계 안에서 희생보다는 편안함을 찾습니다. 관계가 편해지면 받으려고만 하고, 그래서 관계가 깨지게 됩니다. 부부싸움은 불편해서 하는 게 아니라 편해서 하는 것입니다. 편한 관계는 깨지게 돼 있습니다.

 

 

관계에로 부르시는 예수님은 서로 불편하자고 부르시는 것이지 편하자고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불편한 관계로 상대의 뜻을 따라주다 보면 그것이 혼자 편하자고 주저앉아있는 것보다 더 큰 행복임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만나러 나갈 때 불편하기 위해 나갑시다. 그래야 사람을 만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편한 사람만 만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모기에 가깝습니다. 이웃의 피를 빨아먹으러 나가면서도 이웃이 그런 자신을 좋아해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모기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합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도 사람 만나는 게 힘들면 비로소 만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편한 관계만 고집하는 마태오를 불편한 관계로 부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의 불편함을 받아들임이 마태오를 구원시켰습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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