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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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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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남 [oyoo] 쪽지 캡슐

2000-06-19 ㅣ No.1294

저녁미사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퇴근길에 나섰는데 마침 버스를

타자마자 자리가 있었습니다. 기분좋은 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어둠이 내렸고 거리는 울긋불긋 네온사인들로 획획 지나갔습니다.

저는 습관처럼 묵주를 꺼내들고 로사리오기도를 바치기 시작했는데

그 때 누군가가 뒤에서 내 어깨를 나꾸어 챘습니다.

-이 자슥이 동방예의지국도 모르나?

거친 소리에 돌아보니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가 도끼눈을 뜨고 있었고

그 옆에는 부인인듯한 아낙이 지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사태를 파악한 제가 움찔하며 일어서려는데 그 사내가 느닷없이

제 뺨을 후려치는 것입니다.

-젊은 자슥이 왜 이리 꾸물거리노? 보믄 모르나?

버스바닥에 나동그라지자 저는 순간적으로 당황스러움과 함께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낙이 당황한듯 남편을 제지하는데 보니 말을 하지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봐라,자슥아! 내 나이 오십줄에 들어슷다.근데 내 평생 너같이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놈은 처음봤다.

그 아낙이 결사적으로 사내를 제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저를 발로 걷어 찰 기세였습니다.저는 오십이 넘었는데 아마 제가 너무 젊게 보인 탓도 있을 것입니다.그렇다고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요.

저는 버스바닥에 주저 앉아서 승객들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딱한 듯 저를 바라보았고 어떤 사람들은 무심히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창피하기도 하고...부끄럽기도 하고...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순간 성프란치스코 성인이 한 말이 떠 올랐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친구들에게 베푸시는 성령의 온갖 은총과 선물가운데

 가장 훌륭한 것은

바로 자기를 눌러 이기고,고통,수치심,모욕감,불쾌한 것들을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때문에 달게 참는 그것입니다>

저는 다음 정거장에서 내렸습니다.

지친 어깨가 더욱 무거워지는 순간이기도 했지만 저를 보는 승객들의 딱한 시선,무심한 시선들을 어떤 압박감에서 해방시켜줘야 했기 때문입니다.

집으로 와서 묵상을 했습니다.

(아직도 멀었군)

제 기분은 영 나아지질 않았습니다.

담배만 벅뻑 피어댔습니다.

그 때 딸 애가 다가와서 한 말이 저를 오늘의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아빠, 왜 오늘따라 그렇게 심하게 담배를 피우세요? 무슨 일인 지 모르지만

 장기기증을 하신다면 몸을 늘 깨끗하게 간직하셔야지 그렇게 담배를 피우시면

 누가 더러워진 그 장기를 받겠어요?

순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아는 일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의 <지극히 짧은 시간>일 것입니다.

그것이 전부인 것 처럼 분노하고, 슬퍼하고, 비통해하면서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지체인 제 자신을 학대했다는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며,

참아서 내색치 않는 것보다 고난과 고통의 십자가밖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게 없다<갈라 6,14)는 마음가짐으로 내적 평화를 유지하는 것이 더욱 옳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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