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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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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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5-18 ㅣ No.12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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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5월 18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

제1독서 사도 25,13ㄴ-21

그 무렵

13 아그리파스 임금과

베르니케가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페스투스에게 인사하였다.

 14 그들이 그곳에서

여러 날을 지내자

페스투스가 바오로의 사건을

꺼내어 임금에게 이야기하였다.
“펠릭스가 버려두고 간

수인이 하나 있는데,

15 내가 예루살렘에 갔더니

수석 사제들과 유다인들의

원로들이 그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면서 유죄 판결을

요청하였습니다.

 16 그러나 나는 고발을 당한

자가 고발한 자와 대면하여

고발 내용에 관한 변호의 기회를

 가지기도 전에 사람을 내주는 것은

로마인들의 관례가 아니라고

대답하였습니다.

17 그래서 그들이

이곳으로 함께 오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그다음 날로

재판정에 앉아 그 사람을

데려오라고 명령하였습니다.

18 그런데 고발한 자들이

그를 둘러섰지만 내가 짐작한

범법 사실은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19 바오로와 다투는 것은,

자기들만의 종교와 관련되고,

또 이미 죽었는데 바오로는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예수라는 사람과 관련된

몇 가지 문제뿐이었습니다.

20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

그곳에서 이 사건에 관하여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21 바오로는 그대로

갇혀 있다가 폐하의 판결을

받겠다고 상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를 황제께

보낼 때까지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복음 요한 21,15-19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그들과 함께

아침을 드신 다음,

15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16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7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1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이십 대의 한 청년에게

젊은 시절 엄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겠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합니다.
“엄마, 나 낳지 마....”
지금의 상황이 행복하지 않고

대신 고통과 시련을 더 많이

느끼기에 버거워서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시절의 엄마가

자신을 갖게 되었을 때

어떠했을까요?

지금이 힘들다고 해도,

 엄마의 젊었을 때가 분명

당시는 더 힘든 시기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기를

갖게 된 엄마는 행복했을 것이고,

자신의 분신이기에 이 세상 안에서

늘 행복하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사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 행복합니다.

결국 엄마를 나를 낳았기 때문에

불행한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간직하지

못하기에 불행한 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자신의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이

사랑받지 못하는 각종 이유들을

찾으면서 스스로를 힘들고 어려운

상황으로 밀어 넣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의 여유도

갖지 못합니다.

실제로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다른 이들에게도

사랑을 전하게 된다고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에서도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 사랑을 발견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하는 사람은

힘차게 이 땅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처럼 사랑을 세상에

전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주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가

세 번 믿음의 고백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주님을 배반했던

베드로였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이 얼마나 부담되었을까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떤 질책이나

비판 없이 똑같은 질문을 하십니다.

베드로가 죄책감에 시달리라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로써 과거의 죄를 씻고 세 번에

걸쳐 지위를 회복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진정으로 용서의 말씀이었고

다시 힘을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제 베드로의 대답에 주님께서는

“내 양들을 돌보아라.”

라고 말씀하시지요.

진정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면

 당신의 양들인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깨달았고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면,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나를 미워하고

외면해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큰 사랑으로 다가오십니다.

이 사랑을 받고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도 사랑으로 주님의 양들에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를 따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더 많이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사랑의 치료 약은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말씀하시는 주님.

"자리를 양보한 이유"

(신춘몽, ‘좋은 생각’ 중에서)

토요일 늦은 오후였다.

전철 안은 적당히 붐볐다.

나는 ‘환갑은 넘었지만

다리는 튼튼하니까.’라고

 생각하며 손잡이를 잡았다.

그때 앞에 앉은

아저씨가 벌떡 일어서며

 “아, 여기 앉으세요.”

하고 자리를 양보했다.
앉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아직 양보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니에요, 괜찮아요.”

라며 거절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팔을 잡아 글었다.

“저 금방 내린다니까요.”

“그럼 그때까지라도 앉으세요.”

나는 불편한 마음으로

자리에 엉덩이를 걸쳤다.

두 정거장 뒤에 내 옆자리가

비자 아저씨는 다시 앉았다.
‘이젠 영락없이

할머니로 보이는구나.’

 싶어 착잡한 와중에 아저씨가

도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여기 앉으세요.”
올려다보니 삼십 대쯤으로

 보이는 늘씬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 자리를 양보한

이유가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순전히 배려심 때문이었다는 말인가.
나는 그제야 자리에 편히 앉았다.

젊은 여자도 몇 번 사양하더니

고맙다고 인사하며 내 옆에 앉았다

오해를 걷어 내자 인품도 좋고

잘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누구의 남편, 아빠인지는 몰라도

그의 가족은 행복하겠구나 싶었다.
이렇게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면 어떨까요?

멋져 보이지 않습니까?

어제 순례오신 수원 정자동성당 연령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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