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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율 무죄판결로 직격탄 맞은 공안검찰의 개편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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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길 [u90120] 쪽지 캡슐

2004-08-19 ㅣ No.55

송두율 무죄판결로 직격탄 맞은 공안검찰의 개편논란


△ 지난 2월 22일 밤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송두율 교수가 서울구치소에 수감되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정문을 나서고 있다. 김종수 기자

[인사이드스토리]

권위주의 정권의 파수꾼 검찰 공안부, 폐지론에 직면하다

“공안부에 이런 날이 오다니….”

지난 17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회장 이석태)이 ‘검찰, 공안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 안팎에서 나온 일성이다. 이 토론회가 ‘공안부 폐지론’의 확산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안부가 어떤 곳이었나. 지금이야 중수부(또는 특수부)에게 자리를 내줬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검찰의 대표 선수는 분명 공안부였다. 학생 시위나 파업이 끊이지 않을 때, 검찰 공안부는 관계기관대책회의를 이끌며 혼란스런 세상을 평정하곤 했다. 모든 시국 사건은 공안부의 손을 거쳐야 했다. 당시 공안부는 검찰 안에서도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불렸고, 실제 그 곳 출신들이 출세가도를 달렸으며 옷을 벗은 뒤에서는 집권여당에 스카웃됐던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런 공안부가 김대중 정부 출범과 함께 옆으로 밀리더니, 참여정부 들어서는 거의 시야에서 사라질 뻔 했다. 그러다 화려하게 무대에 다시 오른 것이 송두율 교수 사건이다. 수십년만에 가장 큰 대공사건으로 공안부는 혼신의 열정을 다해 수사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한 패배였다. 지난달 2심 재판부가 송 교수의 주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탓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공안부는 ‘냉전시대의 유물’이라는 지적이 힘을 얻게 됐고, 그러던 중 민변이 처음으로 공안부 폐지론을 토론회라는 형식으로 본격 제기한 것이다. 정말 세월이 변해도 엄청 변했다.

시대적 흐름에 눈감은 공안부

이날 토론회에 발제자로 나선 이상희 변호사(민변 사무차장)는 곧바로 공안부 폐지론을 제기했다. 이 변호사의 말을 들어보자.

“그 동안 공안부는 ‘공안’이라는 잣대로 사회의 대립이나 갈등에 개입해,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검찰 스스로 정치 예속을 심화시켰다. 실제 수요나 그 능력에 비해 거대하고 검찰 내 특권층을 형성해온 공안부 조직은 당연히 폐지돼야 한다.”

이 변호사의 말은 이어진다. “국가의 권위주의적 성격이 약화되면서 일반 업무 수요는 크게 줄어 지금의 공안부는 검찰 본연의 임무보다 동향파악과 정보보고 위주로 운영된다. 더구나 송두율 교수 구속문제나 촛불집회 관련자 체포영장 청구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공안부는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두번째 발제자로 나선 송호창 변호사는 송 교수 변호인단에 참여해 공안부를 직접 경험한 사람이다. 그는 “공안부의 존재이유라 할 국가보안법 위반사건은 지난해 전체 공안부 처리 사건 가운데 고작 2.1%뿐”이라며 “이제 공안사건의 개념정의 재검토와 더불어 공안부 존폐 여부까지 고려할 시점이 됐다”고 힘주어 말했다.

송 변호사는 또 송교수 사건을 통해 본 공안부의 문제점으로 △불충분한 증거로 무리한 기소남발 △자백위주 수사관행 △피의사실 공표행위 △변호인의 피의자신문 참여권 침해 △구속수사와 보석불가 원칙 등을 지적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또 민가협의 박성희 간사, 민주노총 법률원의 권두섭 변호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한상희 교수, 필자 등 4명이 토론자로 나서 각자 의견을 내놨다. 법무부 검찰3과(공안업무 담당) 소속 검사도 토론자로 참가할 예정이었으나, 토론회 하루 전인 16일 갑작스레 “일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불참을 통보했다.

이날 토론자로 참가한 필자는 사전에 중견 검사들에게 ‘공안부를 어떻게 해야 하나’고 물어봐, 그 내용을 토론회에서 발표했다. 원래 공안검사로 일해온 검사에게는 일부러 묻지 않았다. 원래 다른 전공과목을 가졌다가 잠시 공안부 일을 해본 검사들에게 주로 물었다.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균형감각을 갖춘 의견을 기대했기 때문이다.[다음은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왜 공안부가 노동사건전담하는가

공안부의 과거는 잠시 접어두고, 현재의 공안부를 기능별로 찬찬히 살펴보자. 먼저 검찰 공안부가 노동사건을 전담하는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노동사건이 집단행동이나 집단분규의 성격을 띤다는 점이다. 현재 한국의 노동운동이 전투적이고 이념 지향적이라 예측불가능성이 높아 특별 관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한 부장급 검사는 “검찰 형사부한테 이런 집단행동을 맡겨두면 행위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그렇게 되면 화물연대 파업처럼 대규모 집단행동에 따른 피해를 예방하거나 줄일 방법이 없다”며 “앞으로 노동운동이 안정되고 예측가능성이 높아질 때까지는 한시적으로 공안부에 맡겨두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 검사는 특히, “지금까지 정치적 스팩트럼에서 왼쪽만 관리 대상이지만, 최근 들어 우익단체들의 움직이 거칠어져 이들도 조만간 공안부 관리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주최로 '검찰, 공안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김태형 기자

노동사건을 공안부에서 처리하는 것을 두고 이념적 뿌리를 거론하는 검사들도 있다. 학원, 노동, 시민운동은 겉으로 각각 따로 있지만, 밑에서 서로 뿌리가 맞닿아 있어 이들을 묶어 봐야 실상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행위자 처벌로는 집단행동이나 분규에 대응할 수 없으니, 공안부에 묶어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사실 검찰 공안부에 노동사건을 담당하게 된 출발점이 노동자들의 생존권적 요구를 공안적 시각, 즉 ‘반체제 세력의 선동에 따른 사회 소요’로 바라보았던 것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민주노총 법률원 권두섭 변호사는 “공안부는 공안적 시각에서 판단하기에 노사간 법집행의 형평성을 기대할 수 없다”며 “(공안부 자체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노동사건은 공안부에서 떼어내 형사부 안에 노동사건 전담 부서에서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두번째 선거 문제는 논란거리도 안된다. 검찰 공안부에서 하지 않아도 일반 형사부에서 처리하면 그만이다. 매년 선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선거가 있을 경우 선관위 등의 고발을 받아 관련자 불러 조사하고 처리하면 된다. 전국적 통일성을 위해 공안부가 선거사범을 전담해야 한다고 하지만, 형사부도 얼마든지 전국적 통일성을 가질 수 있다.

관건은 국가보안법 개폐문제

그래서 결국 남는 것은 대공(친북이적성) 영역이다. 이 문제는 결국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지 하는 문제로, 국가보안법이 핵심이다.

대부분의 검사는 남북대치 상황에 대해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남북한 관계가 변했다지만, 여전히 한반도의 남북대치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 부장검사는 “대북 관계에 대한 인식이 공안부 존치 문제를 반 이상 결정한다. 체제의 안전 문제는 실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생존의 문제는 한번 실수하면 돌이킬 수 없다. 따라서 값이 비싸더라도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고, 지금의 공안부 대공 기능은 남겨 둬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검사는 조금 다른 견해를 보였다. “공안부가 지금처럼 친북 이적성 수사에 주력하고 있을 수는 없다. 시대 변화에 따라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질서와 시장경제질서 수호를 위해 일하는 부서로 재정립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변화는 현행 국가보안법의 개정이 뒷받침될 때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실 현재 검찰 공안부는 큰 혼란을 겪고 있다. 공안부 고유 영역으로 자부했던 대공수사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봤기 때문이다. 법원이 송두율 교수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자, 공안부 안에서는 당장 “이제 대공 수사는 끝났다”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송 교수가 북한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이라는 기소 내용에 대해 법원이 다른 형사사건과 동일한 엄격한 증거조사 방법을 적용한 때문이다. 기소 내용의 핵심 내용이 북한에서 이뤄진다는 대공사건의 특성상 검찰은 기소하면서 확정적 증거를 제시하기 힘들었고, 법원은 이제껏 증거 부분에 있어 ‘관대한’ 태도를 보여 검찰의 손을 들어준 것이 관례였다. 이제 송교수 사건을 계기로 이런 관례가 깨짐에 따라, 공안검사들 사이에는 “이제 김정일 증인조서 받아오지 않으면 유죄 받을 길이 끊겼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이런 혼란까지 겹쳐 결국 국가보안법 문제가 정치권과 사회에서 풀리지 않으면 공안부의 방황은 끝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보안법이 개정돼 북한에 대해, 그리고 이적행위에 대해 새롭게 규정한 뒤에야 공안부는 자기 정체성을 재정립할 수 있음은 공안검사들도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혹시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로 북한에 대한 반국가단체 규정이 사라진다면, 대검 공안부도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공안부 폐지론에 대해 검사들은 대부분 부정적이다. 일단 국가작용에 있어 프랑스와 독일 등 선진국도 검찰에 공안기능을 두고 있다는 점을 논거로 들어, 국가의 공안기능을 언제나 필요하다는 말한다. 시대가 바뀌어 공안의 주요한 내용이 바뀔 수는 있어도, 그 자체를 없앨 수 없는 마당에 공안부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훨씬 실용적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 부장검사는 “변화된 시대에 새로운 공안부의 위상과 정체성을 찾아야 하지만, 과도기의 혼란을 이유로 이를 없애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독을 깨는 일이다. 실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공안부를 한번 없앤 뒤 다시 새로운 공안기능을 갖는 조직을 만들려면 더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든다. 80년대 공안부가 저질렀던 잘못 때문에 감정적으로 접근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검사는 “공안부도 이제 변화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제 공안부도 노동사건 수사하면서 노동자 권익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인간의 얼굴을 한 공안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특수수사 전공의 한 부장검사는 검찰 공안부가 철저히 낭비라고 말하고 있다. “공안부 쪽에서는 범죄 예방을 내세운다. 하지만 검찰은 범죄 예방기관이 아니다. 준법의식 고양은 법무부 일이고, 범죄예방은 경찰이 한다. 검찰은 수사하고 공소유지하는 기관일 뿐이다. 예컨대, 공안부에서는 동향정보를 수집하는데, 동향정보 수집한다고 범죄 예방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예방한다고 나섰다가 노동사건에 제3자 개입해서 조폐공사 파업유도 사건 같은 일만 생긴다. 동향정보 수집이란 것도 경찰과 국정원이 올린 정보를 분석하는 정도인데, 전혀 쓸모없는 정보다. 검찰은 범죄정보만 수집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공안부의 효율성을 따지기도 했다. “서울지검 공안1,2부에 부장검사를 포함해 모두 13명의 검사가 있다. 그런데 지난 총선 때 거기서 새로 인지한 사건이 한 건도 없었다. 모두 선관이 고발사건만 처리했다. 검사는 결국 사건을 얼마나 하는가로 결정된다. 검찰을 위해선 전혀 필요 없는 일을 하고 있는데, 외부에서는 잘 모르니까 자기들끼리 일 벌리고 자기들끼리 바쁘다고 한다”

이런 내부의 비판에 대해서도 검찰 공안부는 대답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대검 공안부 폐지는 대통령령 개정 사항으로, 대통령이 하루 아침에 마음만 먹으면 그만이다. 법개정 사안도 아니다.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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