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재의 예식 다음 토요일

스크랩 인쇄

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2-28 ㅣ No.136405

뉴멕시코에서 뉴욕으로 오는 길에 문자를 받았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신 어르신의 추도식에 올 수 있는지 확인하는 문자였습니다. 시간이 되기에 갈 수 있다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추도식장에는 어르신의 영정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목사님, 사찰의 스님도 오셨습니다. 종교는 다르지만, 신념은 다르지만 어르신을 위한 추도식에 함께하였습니다. 어르신께서도 이 세상을 떠나는 길이 외롭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어르신의 추도식에 함께 하면서 나바호 족 어르신과의 대화도 생각났습니다. 왜 우리는 이 좁은 지구에 살면서 전쟁과 폭력으로 소중한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가? 왜 우리는 편을 가르면서 나와 다른 편을 죽이는가? 모든 갈등과 분쟁은 본질은 외면하고 현상에 머물기에 생긴다고 합니다.

 

불가에서는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고 합니다. 본질은 현상으로 드러나고, 현상은 본질로 돌아간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드러나는 모든 현상은 같은 본질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서로 다른 현상을 가지고 편을 가르고, 싸우고, 빼앗고, 죽이는 것은 누워서 침을 뱉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하얀 종이로 배를 만들 수도 있고, 새를 만들 수도 있고, 비행기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 , 비행기라는 현상은 다르지만 하얀 종이라는 본질은 같다고 합니다. 새는 다시 배가 될 수 있고, 배는 다시 비행기가 될 수 있고, 비행기는 다시 새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라는 현상에서는 힘들게 사셨지만, 어르신께서는 더 이상 눈물도, 슬픔도 없는 천상이라는 본질로 돌아가리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다음, 성서는 두 가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나는 야고보와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거룩하게 변한 예수님의 현상을 보았던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시면 높은 자리를 요구하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야고보와 요한의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났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리석음 때문에 화가 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예수님께 이야기하지 못한 것에 대해 화가 났습니다. 다른 하나는 티메오의 아들 바르티메오의 모습입니다. 바르티메오는 비록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지만 예수님의 본질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높은 자리를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자비를 요구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도, 바르티메오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불교, 개신교, 천주교는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현상입니다. 본질은 자비를 실천하고, 오직 믿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겁니다. 교회의 본질은 명확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요구했던 것처럼 높은 자리, 권력, 명예, 성공이 아닙니다. 바르티메오가 요구했던 것처럼 자비, 연민, 나눔, 사랑입니다. 그것을 오늘 성서 말씀은 분명히 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사순시기를 지내는 우리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네가 네 가운데에서 멍에와 삿대질과 나쁜 말을 치워 버린다면 굶주린 이에게 네 양식을 내어 주고 고생하는 이의 넋을 흡족하게 해 준다면 네 빛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고 암흑이 너에게는 대낮처럼 되리라.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악인의 죽음을 바라지 않는다. 악인이 자기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살기를 바란다. 건강한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아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1,428 1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