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그토록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주요한 동기 중의 하나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종신 대통령’ 박정희와 그의 공과(功過)에 대한 국민과 역사의 평가와 별개로 ‘박정희 가문의 맏이’인 박근혜 대통령 입장에서 아버지가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특히 1979년 아버지가 죽고 난 이후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이회창 후보가 이끄는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에 입당하므로써 ‘공식 무대’에 등장하기까지 ‘지옥’과도 같은 18년 세월동안 아버지가 독재자로 난도질당하는 현실은 참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심지어 아버지의 신임과 총애를 받았던 정치인과 고위 관리들조차 아버지를 폄훼하거나 자신을 외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울분과 배신감 등으로 치를 떨었을 지도 모른다. 그 ‘지옥 18년’ 동안의 감정 통제와 사람과 세상과 권력에 대한 냉혹한 관찰이야말로 훗날 정치인 박근혜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는데 큰 자산이나 밑거름이 되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지 8개월이 지났다.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박근혜 대통령과 나라가 지극히 위험한 길로 가고 있다.

국가정보원과 군 당국 등 정보와 안보를 책임진 국가 기관과 종사자들이 조직적이고 무모한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 등 ‘21세기형 쿠데타’를 자행한 사실과 증거들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야 할 박근혜 대통령은 명백하게 드러난 기본적인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는 인상을 주면서,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일을 키우고 있다. 만에 하나, 박근혜 대통령이 실패하면 그의 실패는 그에게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의 실패’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평가절하’로 이어질지 모른다.

집권 세력이 차초하는 정통성과 효율성의 위기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의 역설(파라독스)’이다. 아버지가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려다 아버지에게 결과적으로 누를 끼치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 박근혜 대통령은 ‘이념전쟁’과 ‘역사전쟁’을 할 때가 아니다. 그야말로 민생과 경제 살리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할 때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와 집권당인 새누리당, 그리고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족벌언론 등 수구반동 세력이 혼연일체가 되어 전교조와 공무원노조 등에 대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감행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등에 의한 쿠데타나 다름없는 헌정 질서 파괴행위를 덮으려는 데 혈안이 돼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두가지 위기’를 해결하기는커녕 자초하고 키우고 있다는데 있다.

첫째가 정통성(legitimacy)의 위기다. 박근혜 자신이 국가정보원 등에 의한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에 직접 관여하거나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이득을 본 사실과 그런 헌정질서 문란 행위를 진솔하게 인정하고 넘어갔다면 그의 당선에 대한 정통성이 지금처럼 위협받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그의 ‘모르쇠’ 태도가 사태를 키우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사람들 중에서 ‘이건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둘째 위기는 이른바 ‘효율성(efficiency)’의 위기다. 한마디로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 살리기 등 민생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가 경제 상황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알리고, 모든 경제주체들이 힘을 합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집권당과 정부가 앞장서서 이념전쟁과 역사전쟁을 자초하거나 부추기고 있다. 민생 문제가 아닌 다른 정략적인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우면 집권당과 정부가 불리한 법이다. 지금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과 족벌언론은 ‘전투’에서 이기는 듯 보이지만 결국 ‘전쟁’에서 지는 길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