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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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주, 두려움과 고통 없애주는 ‘소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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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kimhh1478] 쪽지 캡슐

2020-08-27 ㅣ No.97761

 

묵주, 두려움과 고통 없애주는 ‘소화제’

[나의 묵주이야기] 159. <평화신문>  

노중호 신부(수원교구 서부본당 주임) 

 

 

 

얼마 전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가 유행이었습니다.

과거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그 시대에 어떤 정서였는지,

유행했던 노래에 담겨있는 사연들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그 시대에 산 사람은 삶으로 추억하고,

후대에 살아가는 자녀들은 웃고 따라 하며

그 시대를 함께 기억하게 됩니다.

 

보좌 신부 생활을 마치고 주임 신부도 두 번째 본당을 맡게 되면서

불현듯 ‘그땐 그랬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심각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일이 세상에 전부인 것처럼

모든 정신을 매달려야 했던 그때가 있었습니다.

 

매 순간이 만만치 않은 신학교 시간 중에 학부 4년과

대학원 1학년을 마치고 1월 한겨울 가장 추운 때에 한 달 피정을 하게 됐습니다.

영성 지도 신부님은 예수회 신부님이셨고,

이냐시오 영신수련을 이끌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

공생활과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까지 온 일생을

복음을 통하여 묵상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한마디도 못 하는 엄숙한 대침묵 속에 피정은 시작됐습니다.

일생에 다시는 없을 기회라고 선배들이 말하던 그대로였습니다.

그렇게 시작은 좋았지만, 뒤죽박죽 어긋나기 시작하니

모두가 엉망이 됐습니다. 한 달 피정 중에 가장 힘든 점은

매일 매일 정해진 말씀을 읽고 기도를 준비하고 성체 앞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라면 너무나도 좋았을 텐데 그다음이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머무른 묵상의 내용을 노트에 정리하고

영성지도 신부님께 매일 기도 면담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숙제 검사와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신부님 방문이 닫혀 있음에도 복도에서 다음 순서를 기다리는

저의 귀에 앞 순서의 동기가 심하게 혼나고 있는 소리가 다 전해졌습니다.

 

강도 높은 지진을 제대로 겪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하느님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면담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와 피정하게 되었습니다.

힘을 빼지 못하는 억지로의 시간과 온갖 광야와

너무나도 안 좋은 상황들이 벌어지면서 급기야 체하게 되었습니다.

 

잠도 한숨도 못 자 피폐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새벽 내내 뜬눈으로 지새우다 ‘이대로 세상이 망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가득했습니다. 신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미친 듯이 살려 달라고 마음속으로 울부짖다가 너무 손이 시려서

점퍼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잡히는 것이 있었습니다.

 

묵주였습니다. 어머니께서 짐 싸주실 때 살며시 넣어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 추운 운동장에서 묵주기도를 눈물을 흘리면서 했습니다.

살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습니다. ‘눈물이 따뜻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예수님 말씀을 따라 한 구절 한 구절

한 걸음 한 걸음 잘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체한 것도 없어져 소화가 잘되고,

고통 앞에 회피하며 세상이 망하길 바랐던

어리석은 마음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일생을 닮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3년을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 수 있으셨던 것은

30년 나자렛 성가정의 생활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꼭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성모님의 전구하심입니다.

사제로 살면서 미사 강론에 집중하다 보니

쉽게 묵주기도를 소홀히 한 적이 많습니다.

 

그러면 말씀 식탁에서 제대로 따뜻한 밥을 준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교우들에게 나눠 드려도 설익게 되고 설상 교우들이

그 말씀의 밥을 드시더라도 체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묵주기도 안에서 어머니의 기도처럼

그렇게 조화로운 신앙으로 미사와 매 순간의 삶을 준비하려 합니다.

 - html by 김현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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