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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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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관심으로 만들어지는 저 구렁텅이를 / 사순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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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17-03-16 ㅣ No.11076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어느 한 여인이 세상의 온갖 전쟁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보면서 하느님께 강력히 항의하였단다. “왜 당신은 이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가요?”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널 보내지 않았는가?” 그렇다. 굶거나 고통 받는 이들을 두고 하느님께 그 책임을 묻는 것은 비겁하다. 우리가 가진 것의 아주 조금씩만 나누어도, 아니 조금 관심만 보여도 이런 아픔은 덜 할게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신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무관심의 극치를 본다. 부자는 날마다 호화롭게 살았지만 거지 라자로는 종기투성이 몸으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다 라자로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었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 속에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 곁에 라자로가 있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를 보내시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좀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라고 부자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사는 동안에 좋은 것들 모두를,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죄다 받았음을 기억하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 사이에는 큰 구렁이 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 쪽으로 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서 여기로 올 수도 없다.”(루카 16,25-26 참조)’

 

사실 이 비유에서 부자의 잘못은 전혀 없다. 그가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았다거나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었다는 것도 없다. 자기가 지닌 재력으로 권세를 부렸다는 것도 거지 라자로를 못살게 군 건 더더욱 없다. 다만 부스러기라도 주워 먹는 걸 방관만 했다. 그가 지탄을 받아야 한다면 그건 바로 이웃에 대한 무관심일 게다.

 

그렇다. 그는 거지 라자로가 자기 집 대문 앞에서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는 것을 못 볼 수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는 날마다 호화롭게 살면서도 라자로가 죽기까지 전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의 고통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에게 관심을 가졌다면라자로가 그렇게 처참히 죽지는 않았을 게다.


라자로는 대문 앞에서 부자에게 끊임없이 회개할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그는 천국으로 넘어가는 그 쉬운 사다리를 타는 절호의 호기를 스스로 저버렸다. 그래서 그는 위로받는 라자로 앞에서 고초를 겪는 것이다. 무관심으로 버려진 것들이 저 세상 어딘가에서 우리의 관심으로 나타남을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꾸중에서 되새기자.

 

무관심에 대한 어느 수도원의 이야기이다. 당시 수사들은 서로를 너무나 미워하였단다. 이에 고민하던 수도원장은 결국 그 나라에서 가장 뛰어난 현인을 찾는다. 그는 당신 수도원에서는 예수님의 계심을 잊고 기도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겠느냐며 간단히 주문했단다. 무척 놀란 원장은 이를 수사들께 전했다. 그들은 이제 누가 예수님일까?’라며 서로를 관찰하고 혹시나 하면서 조심스럽게 대하기 시작했단다. 다들 예수님을 모시는 심정으로 서로를 상대했다. 행여 누군가에게 잘못한 게 있으면 그를 찾아서는 감히 용서를 청하기도 했단다. 서로에게 따뜻한 관심을 보인 게다.


이 분위기가 한두 달 지속되자 수도원은 형제애로 가득 찬 공동체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누가 예수님인 줄은 모를 수밖에. 결국 수도원장은 다시 그 현인을 찾았다, ‘어찌 한 사람만이 예수님일까? 다 예수님이란 생각은 잊었는가!’라며 그는 답했다. 그렇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게 그리 거창하지 않다. 지금 당장 자기 주위에 있는 이에게 최선을 다하면서 관심을 주면 그게 바로 예수님 사랑인 게다.

 

우리는 이 세상 것이 그대로 저세상 것이 되는 게 아니란 걸 되새겨야 한다. 지금 무관심이 큰 구렁텅이를 만든다. 메워져야 할 큰 구렁텅이가 곳곳에 너무나 많이 깔렸다. 무관심에서는 결코 구렁텅이는 메워지질 않는다. 이것들을 우리는 애정 어린 관심으로 메워야 한다. 지금도 우리의 무관심으로 만들어지는 아무리 작은 구렁텅이도 만들지 않도록 가까운 이웃으로 우리 눈길을 돌리자. 자신만 아는 이는 점점 이웃과 거리 둘게다. 이웃과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것이다. 이 구덩이가 점점 크고 깊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이웃은 물론이고 하느님께도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에 더 늦기 전에 나눔과 배려의 의무를 다해야만 할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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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라자로,무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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