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이게 사실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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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섭 [979aaa] 쪽지 캡슐

2006-06-12 ㅣ No.2801

"이상범 칼럼"
제목   성유물과 중세교회
글쓴이 관리자 E-mail epnnews@empal.com 번호 25
날짜 2004-01-09 조회수 34 추천수 0




1월28일이 성 토마스 아퀴너스의 축일(祝日)이다. 그 날 하루만 해도 ‘성베드로 놀라스꼬 증거자’ ‘성플라비노 순교자’ ‘성발레리오 주교’의 축일로 겹치는지라, 가톨릭 교인들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일 수인 것이 현실이기도 하지만, 성인의 축일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성인이 태어 난 날이 아니라, 망일을 축일로 삼는다. 이 땅에서 사망한 날이 곧 하늘나라에서 새로 태어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토머스 아퀴너스를 더듬다가, 한 신부의 글을 찾았다. “…1274년 교황 그레고리오 10세가 리용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는데, 토머스는 그 회의에 참석하러 가는 도중에 병을 얻어, 그 근처의 포사누오바에 있는 트라피스트(시토) 수도원에서 마지막 성체를 영하고 돌아가시게 됩니다. 그때 그의 나이는 48세였습니다. 그의 유해는 불란서 남쪽 루르드 지방 근처인 툴루즈 (Toulouse)에 안치되었습니다”.
‘안치’라고는 했지만, ‘안치라는 단어 뒤에 너무나 기가 막힌 사연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그 글을 쓴 신부는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중세 봉건시대 최고의 신학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죽자, 제자들이 스승의 시체로부터 머리를 잘라내 솥에 넣고 끓인 것이다. 시체를 성유물로 나누어 갖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안치’의 내막이라고 하면 기가 막힐 노릇이 아닌가?
당시에는 가톨릭교회나 수도원의 편성자체가 성유물 숭배를 기초로 하고 있었다. ‘성000수도원’ ‘성000교회’하는 따위의 명칭은 이들 교회나 수도원이 특정의 성자를 수호자로 삼고 관계된 성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의 과시행위였다. 수도원이나 교회가 성립 유지되기 위해서 필요불가결한 것이 성인의 시신이거나 유물이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진짜 성유물, 중에도 성인의 유체는 쉽게 인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유체를 잘게 나눈다 하더라도 수량에는 한도가 있어서, 수요를 다 감당할 수는 없었고, 진짜 성유물은 먼저 그 성자의 이름을 딴 교회나 수도원, 다음으로 왕후귀족들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민간 소유의 성유물은 거의 가짜였지만, 그것조차 차지하기가 쉬운 노릇은 아니었다.
진짜로 알려진 성유물을 독점하고 있는 교회나 수도원의 입지는 대단히 힘을 가지게 될 수밖에. 자연스럽게 권위있는 성유물은 유능한 해결사의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성유물을 내세워서 자기의 주장을 관철할 수도 있었다.
10세기 말에서부터 11세기에 걸쳐 중남부 프랑스에 널리 퍼진 “하나님의 평화운동”에서 나타났던 성유물의 효능을 살펴보자. 당시 이 지역의 봉건적 분열은 극심했다. 어떻게 하든지 평화의 기틀을 잡아보려 한 교회는 광장 여러 곳에서 평화공의회를 열었는데, 여기에 성유물을 옮겨다 놓고 출석한 봉건영주들로 하여금 평화의 서약을 하게 한 것이다. 성유물을 섬기거나 만져 보기 위해서 모여드는 민중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평화를 호소하는 교회의 작전은 크게 성공했다.
성유물은 하나님의 평화운동에서 해결사적 능력을 발휘한 것만이 아니라, 교회개혁운동에도 한 몫을 했다. 레오 9세와 같은 교황은 자주 공의회를 열어서 성직매매자 추방을 시도했다. 그럴 경우, 성유물은 더 없는 무기가 되어 주었다. 이를테면, 1049년 랑스공회의에서는 성 레미기우스의 유체를 제단에 모셔놓고, 교황이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출석한 성직자에게 물었다. 돈을 주고 성직을 얻었는지에 대해서. 이런 경우 비록 주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자라 할지라도 시치미를 떼고 거짓말만을 늘어놓을 수가 없었다. 성직 매매자들은 어쩔 수 없이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변명 비슷한 말을 늘어놓던 한 주교가 당장에서 혀가 굳어진 일이 있었다고도 전한다.
사정이 이쯤 되고 보면, 성인숭배나 성유물 숭배가 토속종교의 그리스도교 침해다 아니다를 따질 여유가 있을 수 있었겠는가? 꿩 잡는 것이 매라 했던가? 어느 사이에 성인숭상과 성유물 숭배가 가톨릭 신앙의 중심을 차지하는 당연한 추세로 발전하게 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로 해서 그리스도교는 유럽의 종교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교훈으로 되새길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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