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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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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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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8-09 ㅣ No.113747

 

2017년 8월 9일

연중 제18주간 수요일

제1독서 민수

13,1-2.25─14,1.26-30.34-35

그 무렵 주님께서

파란 광야에 있는

1 모세에게 이르셨다.

 2 “사람들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찰하게 하여라.

각 지파에서 모두 수장을

한 사람씩 보내야 한다.”
25 그들은 사십 일 만에

그 땅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26 그들은 파란 광야 카데스로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에게 왔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과

온 공동체에게 그 땅의

과일을 보여 주면서

보고하였다.

27 그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우리를 보내신 그 땅으로

 가 보았습니다.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습니다.

이것이 그곳 과일입니다.

28 그러나 그 땅에

사는 백성은 힘세고,

성읍들은 거창한

성채로 되어 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곳에서

아낙의 후손들도

보았습니다.

29 아말렉족은

네겝 땅에 살고,

히타이트족과 여부스족과

아모리족은 산악 지방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족은

바닷가와 요르단 강

가에 살고 있습니다.”
30 칼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진정시키면서

말하였다.

 “어서 올라가 그 땅을

차지합시다.

우리는 반드시

 해낼 수 있습니다.”
31 그러나 그와 함께

올라갔다 온 사람들은,

 “우리는 그 백성에게로

쳐 올라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보다

강합니다.” 하면서,

32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자기들이 정찰한 땅에 대하여

나쁜 소문을 퍼뜨렸다.

“우리가 가로지르며 정찰한

그 땅은 주민들을

삼켜 버리는 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땅에서

본 백성은 모두

키 큰 사람뿐이다.

33 우리는 또 그곳에서

나필족을 보았다.

아낙의 자손들은 바로

이 나필족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눈에도 우리 자신이

메뚜기 같았지만,

그들의 눈에도

그랬을 것이다.”
14,1 온 공동체가

소리 높여 아우성쳤다.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다.
26 주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7 “이 악한 공동체가

 언제까지 나에게

투덜거릴 것인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나에게 투덜거리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28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의 말이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너희가 내 귀에 대고

한 말에 따라,

내가 반드시 너희에게

그대로 해 주겠다.

29 바로 이 광야에서

너희는 시체가 되어

쓰러질 것이다.
너희 가운데

스무 살 이상이 되어,

있는 대로 모두

사열을 받은 자들,

곧 나에게

투덜댄 자들은 모두,

30 여푼네의 아들 칼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 빼고,

내가 너희에게 주어 살게

하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한

그 땅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34 너희가 저 땅을

정찰한 사십 일,

그 날수대로,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너희는 사십 년 동안

그 죗값을 져야 한다.

그제야 너희는 나를 멀리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5 나 주님이 말한다.

 나를 거슬러 모여든 이 악한

공동체 전체에게 나는 기어이

이렇게 하고야 말겠다.

바로 이 광야에서 그들은

최후를 맞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들은 죽을 것이다.” 

복음 마태 15,21-28

그때에

21 예수님께서 티로와

 시돈 지방으로 물러가셨다.

22 그런데 그 고장에서

어떤 가나안 부인이 나와,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제 딸이 호되게

마귀가 들렸습니다.”

고 소리 질렀다.
23 예수님께서는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제자들이 다가와 말하였다.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우리 뒤에서

소리 지르고 있습니다.”
24 그제야 예수님께서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25 그러나 그 여자는

 예수님께 와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6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러자 그 여자가

 “주님, 그렇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8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바로 그 시간에

그 여자의 딸이 나았다.

어느 잡지에서

 ‘결혼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

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의 내용은 딱

네 글자의 영어뿐이었습니다.
“DON’T”(하지마!)
결혼의 고통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낫다는 것이지요.

 사실 왜 결혼하려는 것일까요?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생각하면서

결혼하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결혼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씀은 이렇습니다.
“저희 둘 아주 행복하게 잘 살게요.”
결혼을 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고통과 시련은 생각하지 않은 채,

항상 꽃길만

가득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행복한 꽃길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위의

잡지에서 말하는 조언을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결혼만이 행복한

결혼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 삶에 꽃길만 가득해야

하는 사람은 스스로

행복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꽃길이 아니라면서

다른 이들에게

불평불만이 가득하지요.

자신의 행복하지 못한 이유들을

이야기하면서 왜 자신에게는

 그런 꽃길이 오지 않냐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고통과 시련 역시도

내 삶의 일부입니다.

피할 수도 없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통과 시련 역시

받아들이게 된다면 어떨까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힘차게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방인 여인이 마귀 들린

자신의 딸을 고쳐달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예수님께

“저 여자를 돌려보내십시오.”

라면서 이 여인이

 다가오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여인의 바람을

들어주려하지 않습니다.

자나 예수님의 행동은

자신의 딸을 고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분명히

커다란 걸림돌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예수님께서는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좋지 않다.”

면서 모욕까지 줍니다.
딸이 아픈 것도 커다란

고통과 시련인데,

 여기에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말과 행동에

더 큰 아픔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포기하지 않고

더 큰 믿음을 보여줍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시지요.
“아, 여인아!

네 믿음이 참으로 크구나.

네가 바라는 대로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고통과 시련에 대해

한탄만 하고

불평불만을 한다고

변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통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한 것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행운을

철저하게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행운은 힘들게

일할수록 더 많이 따라온다.

(스티븐 리코크)

가나안 여인의 믿음

"영화배우 박신양의 동기부여"

우연히 영화배우 박신양의

러시아 유학 시절에서

경험했던 내용을

본 적이 있습니다.
유학 1년차 때 너무

힘들어서 담당 선생님을

찾아서 상담을 했답니다.
“선생님, 저는

왜 이렇게 힘든가요?”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시집 한 권을 건네 주셨습니다.

시집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지요.
“당신은 왜 인생이 행복하기만

하고 전혀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행복할 때보다 힘들 때가

더 많은 것이 인생입니다.

중요한 건 힘들 때도

자신의 인생입니다.

 힘들 때를 더 사랑해야

행복해집니다.”

이 말에 동기부여 받아

멋진 배우로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힘든 시간을

사랑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즐거웠을 때와 슬퍼했을 때의

배분이 어떤 것 같습니까?

즐거웠을 때가 100%이고,

슬퍼했을 때는 0%일까요?

아닙니다. 때에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살펴보면 거의 50:50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즐거웠을 때만

 내 인생으로 받아들이면

어떻습니까?

슬퍼하는 50%의 내 삶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즐거웠을 때나 슬퍼했을
때나

모두 나의 100% 인생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요?

길에서 우연히 본 아이들의 손바닥 도장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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