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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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기도 없는 사랑은 거짓입니다.(김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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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숙 [mi4006] 쪽지 캡슐

2018-03-09 ㅣ No.11886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첫째는 이것이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마르코12,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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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첫째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둘째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

오늘은 좀 엉뚱한 질문으로 시작해보고 싶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첫째니 둘째니 하는 순서를 두셨을까요?
그냥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면 되지 않았을까요?
사랑에도 순서가 있다는 말일까요?

여기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사랑에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사랑이 없다면 우리의 사랑은 빗나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은 “저는 힘든 처지의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라고 말하며,

자신은 미사에 참례할 필요가 없고 기도할 시간도 없으며,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한 사람에게라도 더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합니다.
그럴 듯 하게 들릴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잊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불완전성과 오류의 가능성을 잊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선한 목적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더라도 거기에는 틀린 사랑이 있을 수 있고,

엇나간 과정과 방향으로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결국 자신의 성을 쌓기에 바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들이 쌓는 성은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끌어 주시지 않으면, 우리의 어떤 사랑도 제대로 이룰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이웃들과 함께 하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거짓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면서 적극적으로 이웃의 고통에 함께 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거짓입니다.

집착이던지, 자기과시던지 자기만족이던지 간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대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며, 한계를 만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느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우선적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 조금이라도 완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선 순위를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불완전함과 오류의 가능성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먼저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과도 통합니다.
그러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사랑은 그분으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20110308)

 

(김 대열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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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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