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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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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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02-07-20 ㅣ No.36343

 매일 고만 고만한 아이들 100여명이 성당 마당이고, 식당이고, 교육관이고, 도장이고 그렇게 시끌벅적 어질고 다닐 때는 짜증도 나고, 힘이 들고 그랬습니다. 간식을 해주면 깨끗이 먹고, 뒷마무리를 잘하면 좋으련만 간식을 먹고 난 자리는 늘 행주로 닦아주어야 하고, 물을 마신 자리는 늘 마시다 버린 물이 흥건하고, 컴퓨터는 켜놓고 끄지 않고 가기 일수이고, 마당에는 아이들이 버린 휴지들이 바람에 날리고, 도장의 물건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적이 없고 그래서 아이들이 지나간 그 자리를 보면서 "에고 내 팔자야!"라는 푸념을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없는 며칠은 참 좋았습니다. 성당이 조용하고 식당도, 도장도, 교육관도 성당 마당도 그냥 그렇게 깨끗하니까 너무 좋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없는 성당도 며칠 지나니 너무 허전합니다.

 

 어릴 때 국어 책에서 읽은 그  동화가 생각납니다. "아이들이 놀던 그 마당,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 아저씨가 아이들을 쫓아내자 그만 그 마당에는 찬바람이 부는 겨울만 오는 거 있죠.... 그런 어느 날 한 작은아이가 그 마당의 나무 가지에 있고 키다리 아저씨는 그 아이를 쫓아내지 않고 안아주고, 그래서 그 마당에는 또다시 봄이 온다는.." 잘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3일 있으면 아이들 방학이 끝이 납니다. 태권도 사범님은 생활체육 교사 연수를 다녀오실 것이고, 그러면 아이들은 사범님과 함께 성당에서 또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 시간들을 보낼 겁니다. 수녀님은 그런 아이들 중에서 세례 받기를 원하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것이고, 나는 아이들이 지나간 자리를 정리하면서 짜증을 낼 것이고, 일주일이면 몇 통씩이나 마시고 버리는 아이들을 위해 약수터로 물을 뜨러 갈 것이고, 마당의 쓰레기를 보면서 소리를 지르겠죠....

 

 그러면서 성모상 앞에 작은 초를 켜놓고 기도하는 아이를 보기도 할 것이고, 늘 같은 시간에 오셔서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하는 자매님들도 볼 것이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갈 것이고.....

 

 아이들이 없는 요 며칠 감기에 걸렸습니다.

더 편하고, 더 조용한데 감기에 걸린 것이 참 이상합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떠들고, 장난치고, 어지럽게 하는 그 많은 날에는 감기도 걸리지 않더니 말입니다.

 

 김남일 선수가 신던 축구화가 꽤 많은 액수의 금액으로 경매에 올랐다고 합니다.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당에는 그보다 더 값진 것들이 그냥 무료로 배달됩니다.

한 자매님은 이제 막 딴 옥수수를 가져오셨습니다.

한 자매님은 이제 막 캔 감자를 가져오셨습니다.

어떤 분은 참외도 가져오시고, 어떤 분은 수박도 가져오십니다. 그런 것들이 아이들을 위해 간식으로 쓰여집니다.

 

 그 옥수수, 감자, 수박, 참외에 어린 농부들의 땀과 수고가 어디 세상의 잣대로 가치를 따질 수 있나요.....

아무래도 이번 감기는 약을 먹어서 떨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뛰놀고, 아이들과 지내면서 열도 좀 받고 그래야 떨어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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