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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012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 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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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10-12 ㅣ No.115370




2017
10 12 () 가해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Thursday of the Twenty-seventh Week in Ordinary Time

말라키서 3,13-20 / 갈라티아서 3,1-5
루카복음 1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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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홀수 해)


말라키서 3,13-20

13
너희는 나에게 무엄한 말을 하였다. -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런데도 너희는 “저희가 당신께 무슨 무례한 말을 하였습니까?” 하고 말한다. 14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다. 만군의 주님의 명령을 지킨다고, 그분 앞에서 슬프게 걷는다고 무슨 이득이 있느냐?
15
오히려 이제 우리는 거만한 자들이 행복하다고 말해야 한다.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번성하고, 하느님을 시험하고도 화를 입지 않는다.
16
그때에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이 서로 말하였다. 주님이 주의를 기울여 들었다.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며 그의 이름을 존중하는 이들이 주님 앞에서 비망록에 쓰였다.
17
그들은 나의 것이 되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내가 나서는 날에 그들은 나의 소유가 되리라. 부모가 자기들을 섬기는 자식을 아끼듯, 나도 그들을 아끼리라. 18 그러면 너희는 다시 의인과 악인을 가리고, 하느님을 섬기는 이와 섬기지 않는 자를 가릴 수 있으리라.
19
보라,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 거만한 자들과 악을 저지르는 자들은 모두 검불이 되리니, 다가오는 그날이 그들을 불살라 버리리라. -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 그날은 그들에게 뿌리도 가지도 남겨 두지 않으리라.
20
그러나 나의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움의 태양이 날개에 치유를 싣고 떠오르리라.


Reading 1


Mal 3:13-20b

You have defied me in word, says the LORD, yet you ask, "What have we spoken against you?"
You have said, "It is vain to serve God, and what do we profit by keeping his command, And going about in penitential dress in awe of the LORD of hosts? Rather must we call the proud blessed; for indeed evildoers prosper, and even tempt God with impunity."
Then they who fear the LORD spoke with one another, and the LORD listened attentively;
And a record book was written before him of those who fear the LORD and trust in his name.
And they shall be mine, says the LORD of hosts, my own special possession, on the day I take action.
And I will have compassion on them, as a man has compassion on his son who serves him.
Then you will again see the distinction between the just and the wicked;
Between the one who serves God, and the one who does not serve him.
For lo, the day is coming, blazing like an oven, when all the proud and all evildoers will be stubble, And the day that is coming will set them on fire, leaving them neither root nor branch, says the LORD of hosts.
But for you who fear my name, there will arise the sun of justice with its healing r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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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독서 (짝수 해)


▥ 사도 바오로의 갈라티아서 3,1-5

1
, 어리석은 갈라티아 사람들이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여러분 눈앞에 생생히 새겨져 있는데, 누가 여러분을 호렸단 말입니까?
2
나는 여러분에게서 이 한 가지만은 알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율법에 따른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어서 성령을 받았습니까? 3 여러분은 그렇게도 어리석습니까? 성령으로 시작하고서는 육으로 마칠 셈입니까? 4 여러분의 그 많은 체험이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참으로 헛일이라는 말입니까?
5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시고 여러분 가운데에서 기적을 이루시는 분께서, 율법에 따른 여러분의 행위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에 그리하시는 것입니까?


Reading 1


GAL 3:1-5

O stupid Galatians!
Who has bewitched you, before whose eyes Jesus Christ was publicly portrayed as crucified?
I want to learn only this from you: did you receive the Spirit from works of the law, or from faith in what you heard?
Are you so stupid?
After beginning with the Spirit, are you now ending with the flesh?
Did you experience so many things in vain?
? if indeed it was in vain.
Does, then, the one who supplies the Spirit to you and works mighty deeds among you do so from works of the law or from faith in what you he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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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 루카복음 11,5-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5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벗이 있는데, 한밤중에 그 벗을 찾아가 이렇게 말하였다고 하자. ‘여보게, 빵 세 개만 꾸어 주게. 6 내 벗이 길을 가다가 나에게 들렀는데 내놓을 것이 없네. 7 그러면 그 사람이 안에서, ‘나를 괴롭히지 말게. 벌써 문을 닫아걸고 아이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네. 그러니 지금 일어나서 건네줄 수가 없네.’ 하고 대답할 것이다.
8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사람이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일어나서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그가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일어나서 그에게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10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11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아들이 생선을 청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겠느냐? 12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성령을 얼마나 더 잘 주시겠느냐?


Gospel


Lk 11:5-13

Jesus said to his disciples:
"Suppose one of you has a friend to whom he goes at midnight and says, 'Friend, lend me three loaves of bread, for a friend of mine has arrived at my house from a journey and I have nothing to offer him,' and he says in reply from within, 'Do not bother me; the door has already been locked and my children and I are already in bed. I cannot get up to give you anything.'
I tell you, if he does not get up to give him the loaves because of their friendship, he will get up to give him whatever he needs because of his persistence.

"And I tell you, ask and you will receive; seek and you will find; knock and the door will be opened to you. For everyone who asks, receives; and the one who seeks, finds; and to the one who knocks, the door will be opened. What father among you would hand his son a snake when he asks for a fish? Or hand him a scorpion when he asks for an egg? If you then, who are wicked, know how to give good gifts to your children, how much more will the Father in heaven give the Holy Spirit to those who ask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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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7 10 12일 이정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우리는 늘 관계 안에서 살아갑니다. 때로는 누군가에게 나의 도움을 주면서, 또는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면서 사회생활과 가정생활을 이어 갑니다. 이런 관계가 잘 이루어지면 우리의 삶이 행복해지고, 서로를 풍요롭게 하고 더욱 발전시켜 줍니다.
그럼에도 누구에게 무언가를 부탁한다는 것은 늘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방의 처지나 형편이 내가 생각하는 만큼 여유가 있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을 때에도 그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을 갖게 되고, 그가 나의 부탁을 거절했을 때 내가 겪게 될 심리적 타격 또한 두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어려울 때 언제든지 찾아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삶 안에서 가장 풍요로운 자산입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언제나 말할 수 있고, 내가 하는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또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 주는 사람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친구요, 아버지요, 평생 동반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바로 이런 분이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우리가 필요한 것을 ‘졸라 댈 수 있는’ 특전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실 것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언제나 자녀를 향하여 있기 때문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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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6 1006일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님)
(
성 브루노 사제 기념일)


믿음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 세상이 보이는 것들을 갈망하고, 소유하고, 집착하며, 때로는 경쟁 속에서 강탈하여 자족하는 것이 성공이라는 망상을 강요하는 반면에, 우리의 믿음은 세상이 감추고 보여 주지 않는 영적인 갈망에 대한 발견이자, 우리 안에 숨 쉬는 하느님의 거룩한 영, 곧 성령을 따라 사는 기쁨의 삶입니다. 하지만 세상 속 우리 믿음은 세속적 욕망을 채우는 도구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내가 바라보고 청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다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빵을 꾸어 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친구에게 빵을 내어 주는 것은, 요즘처럼 혈연이나 학연, 인맥과 화려한 경력 때문이 아니라, 청하는 이의 간절함과 진실함 때문임을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해 주십니다. 인디언들이 가뭄에 기우제를 바치면 꼭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그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바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라는 말씀을 들으면 자신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내가 간절히 청한다고 언제나 원하는 것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보다는 내게 필요한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성령이야말로 우리가 거저 받은 최고의 선물임을 강조합니다. 내 의지로 청해서 얻는 세상의 행복과는 달리 성령은 우리 안에 숨 쉬고 계신 하느님의 영입니다. 믿음은 이 성령의 기운, 바람, 숨결을 내면에서 듣고, 그분과 머물며, 그분의 인도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한()이 부활의 신바람[神明]이 되는 길을 찾은 영의 인간임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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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5
1008일 이기락 타대오 신부님 & 안소근 실비아 수녀님)


누군가 부탁을 해 올 때, 저는 그 부탁을 들어줄 것인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하여 대답한 다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번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는 말이 좀 생경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열 번 찍으면 넘어가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 번 부탁은 거절하지만, 자꾸 조르게 되면 결국은 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열 번 찍으면 나무가 넘어가나요?” 대답은 간단했지요. 아무나 조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넘어갈 준비가 다 되어 있는 나무를 알아보고 골라서 조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나무들은 처음에는 넘어갈 것이 아니었는데 나중에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꾸 매달리면 결국은 넘어가게 되어 있는 나무들입니다. 오늘 복음의 하느님의 모습도 이렇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가 자녀에게 필요한 것을 주듯이, 선하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분이시기에, 그 좋은 것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아시면 우리에게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꾸준하게 열심히 간청하였지만, 그 결과가 우리의 청원과 전혀 다를 수가 있음을 종종 체험합니다. 설령 우리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느님께서 싫어서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려고 잠시 유예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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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4 1009일 최대환 세례자 요한 신부님)
(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기념일)


성숙한 신앙을 위해서는 성찰과 반성, 새로운 깨달음이 늘 필요합니다. 그러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무조건적으로 절대자를 향하고 청하며 의지하는 ‘원초적 종교심’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동 문학가 마해송 프란치스코 선생이 세례를 받게 된 과정을 자신의 인생사와 함께 들려주는 『아름다운 새벽』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는 예수님과 교회를 모를 때조차도 정성껏 ‘빌 줄’ 알았던 종교적 심성이 얼마나 오묘하게 명시적 신앙 고백을 준비시켜 주는지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생각하면 참으로 오랜 세월, 나는 많이도 빌며 살아왔다. 하늘에도 빌었다. 땅에도 빌었다. 달님에게도 빌었고 별님에게도 빌었다. 바윗돌에도 빌었고 대감님에게도 빌었다. 빌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살 때였을까?
그는 천주교 신앙에 눈을 뜨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체험하던 종교성이 이제야 비로소 그 본디 대상을 발견하게 되는 사실에 감동합니다. “‘천주님이 모든 근원?’ 그렇다면 내 평생 여태까지 급할 때면 손 모아 빌던 그이가 천주님이었단 말인가? ‘무어라고 불러야 하는지 모릅니다. 그저 1년만 더 살게 해 주십시오!’ 눈물을 흘리며 빌던 그 대상이 천주님이었단 말인가? 그리고 어제오늘도 마음속으로 빈 그 대상이? 소름이 끼치고 그것이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사실 아침저녁 비는 마음 없이 지낸 날이 거의 없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의 참화로 말미암은 고단한 삶 속에서 비는 마음이 간절했던 마해송 선생의 시대와는 달리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비는 마음을 많이 잃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 그리스도인 또한 머리가 앞선 나머지 마음으로 간절히 비는 법을 익히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하느님 아버지께 아낌없이 청하라고 하십니다. 무엇보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님께 매달리고 간구하는 신앙심을 주님께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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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310 10일 한재호 루카 신부님)


미국 뉴욕의 한 신체장애자 회관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나는 하느님께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십사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룰 수 있도록.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를 약하게 만드셨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하느님께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내게 허약함을 주셨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 주십사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그러나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주십사고 부탁했다,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그러나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하느님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삶을 선물하셨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하느님께서는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쳐 주시기 전에 하신 다음의 물음과 함께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마르 10,51)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면서도 이렇게 물으신 데에는 그가 청하는 것이 생선이 아니라 뱀이, 달걀이 아니라 전갈이 아닌지 스스로 먼저 살펴보라는 뜻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언제나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지향이 우리의 구원에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면, 그분의 응답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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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210 11일 전승규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
성 요한 23세 교황 기념일)


부모는 자녀에게 어떻게든 이로운 것을 주려고 합니다. 하물며 아버지 중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이 청하는 것을 거절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께 간절히 청하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그 청을 들어주신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청하는지가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의 집요한 친구의 비유에서처럼, 무엇을 청할 때 끈기 있게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 어떤 사람이 벗에게 먹을 빵이 없다며 줄기차게 졸라 대면 마침내 그 벗은 밤중이라도 일어나서 먹을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기도에 대한 이러한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인생의 황혼기를 맞아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하느님께 자신의 여생이 좀 더 편하고 경제적으로도 고달프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그가 하느님께 부탁 드린 것은 복권에 당첨되게 해 주십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복권 당첨을 간청하는 기도를 바치고 또 바쳤습니다. 여러 달이 지나고 여러 해가 흘렀습니다. 참다 못한 그가 마침내 좌절과 절망 속에 고함을 질렀습니다. “하느님, 제발 저 좀 봐주십시오!” 그러자 하느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나 좀 봐주라. 제발 복권 좀 사거라.
사람이 문 앞에서 오래도록 문을 두드리면 반드시 누군가 깨어나게 됩니다. 하느님께 기도로 청함과 동시에 한 가지 더 필요한 것은 행동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감나무 밑에 누워 입을 벌리고 아무리 기다려도 감은 입 안으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간청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그때에야 주님께 청하는 우리의 바람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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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1 1006일 전원 바르톨로메오 신부님)
(
성 브루노 사제 기념일)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인간에게는 다섯 단계의 욕구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첫 단계가 의식주와 같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필요한 ‘생리적 욕구’입니다. 이 욕구가 충족되면 두 번째 단계는 신체적 감정적 위험에서 보호받고 안전하기를 바라는 욕구가 생기고, 이것이 충족되면 그 다음 단계로 진행되는데, 마지막 다섯 번째 단계에서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생긴다고 합니다.
이러한 인간의 욕구 단계처럼 기도에도 단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장 기초 단계는 기복적인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서는 자신의 건강이나 재산을 지켜 주고 지금보다 현세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기도가 깊어지고 성숙해질수록 기도의 내용도 바뀌게 됩니다.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든지 현실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기도를 바치게 되며, 나아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알폰소 성인이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청하는 은총은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물론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현세적 욕구와 처지를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청하는 것은 들어주십니다. 그러나 우리 기도는 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처럼 눈앞의 욕구만 채우려는 것보다 영원성에 가 닿는 단계로 성숙해야 합니다. 인간 욕구의 단계가 물질적인 것에서 정신적인 것으로 나아갔듯이, 우리의 기도도 기복적인 것에서 영성적인 것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신앙이 성숙한다는 것은 기도의 내용이 성숙해 간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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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10 10 07)
(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가 기도하는 사람의 삶의 태도에 관한 가르침이라면, 오늘 복음 말씀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의 태도에 관한 가르침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하고 우리의 자유 의지를 끊임없이 요구하십니다.
기도는 대화입니다. 대화는 어느 한편의 일방적인 훈시나 강연이 아니라, 쌍방이 주고받는 말의 교환입니다. 말과 말을 서로 주고받다 보면, 서로의 의사가 전달되고, 의사가 전달되면 이해하게 되고, 이해하면 서로 소통이 원활하게 되는 법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 소통이 제대로 안 되는 사회라고 합니다. 소통이 안 되는 것은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이해하지 못한 것은 서로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것이고, 의사가 전달되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대화를 주고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만큼 당신 백성과 항구한 대화를 하고 싶어 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당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시는데, 우리가 주님과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무슨 방법으로 주님의 은총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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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9 10 08)


주님께서는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문을 두드리는데 열어 주지 않을 아버지는 없습니다. 어떤 부모가 자식의 간청을 모른 체할는지요? 다만 기도의 내용이 황당하거나 아직은 때가 되지 않았을지 모릅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 서간’에는 엘리야의 기도 이야기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비가 내리지 않게 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하자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도하자,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이 소출을 냈습니다”(야고 5,17-18).
엘리야 역시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자, 가뭄이 들었습니다. 무려 ‘삼 년 육 개월’이나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시 ‘비’를 청하자, 주님께서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엘리야의 청을 들어 주시어, 당신의 일을 하신 것입니다.
열리지 않는 문은 없습니다. 절대로 열리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자꾸만 두드리면 답을 주십니다. 주님 보시기에 ‘옳은 일이면’ 결국은 열어 주십니다. 옳지 못한 일이라면 ‘옳은 일이 되도록’ 사건을 일으켜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청원을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것이지요.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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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8 10 09)
(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
성 요한 레오나르디 사제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셨습니다. 어떤 기록보다도 가깝고 생생하게 하느님을 표현한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선 완벽하게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라 했을 때는 느낌을 구체화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라는 가르침은 어떤 신학 이론보다도 설득력 있고 친근감이 있습니다.
‘너희 가운데 어느 아버지가 생선을 청하는 아들에게 뱀을 주겠느냐? 달걀을 청하는데 전갈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느냐?’ 이렇듯 오늘 복음은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마음을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벌주는 하느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면 ‘어린이의 신앙’에 머물고 있는 것이 됩니다.
죄의식 때문에 하느님을 감히 아버지로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주님 앞에서 뻔뻔스러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위축도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부모 앞에서 벌벌 떠는 자녀를 좋아할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는 죄를 짓는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주님의 자녀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에 끊임없이 기도합니다. 두드리면 아버지는 반드시 열어 주십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두드리다 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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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미사 오늘의 묵상 (2007 10 11)


주님께서는 우리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아무리 하찮은 기도라 여겨질지라도 주님께서는 모두 기억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잊어버리시거나 못 들은 체하시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다리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해로운 것을 청한 것은 아닌지, 청해서는 안 될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닌지 가끔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가 칭얼거리며 이야기해도 아빠는 아이의 말을 잘 알아듣습니다. 아빠에게 응석을 부리며 얘기하는 아이의 모습이 사랑스럽기만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육친의 부모님께 말씀드리듯, 우리가 그분께 신뢰와 애정으로 다가간다면 무슨 말을 드려도 사랑으로 전달될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벗이라는 이유 때문에 빵을 주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줄곧 졸라 대면 마침내 필요한 만큼 다 줄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끈질기게 기다리면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 앞에서 왜 그렇게 기다리지 못할까요? 기도의 항구함, 이것이 우리가 늘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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