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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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7 월/ 거짓 평화를 도려내는 주님의 칼 - 기 프란치스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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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 [20sook] 쪽지 캡슐

2017-07-16 ㅣ No.113265




연중 15주 월, 마태 10,34-11,1(17.7.17)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마태 10,34)




 


Jesus: A cause of division





 

거짓 평화를 도려내는 주님의 칼

 

오늘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사명과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의 자세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10,34) 이어 가족들끼리 갈라서게 하려고 오셨다 하십니다(10,35).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5,9)이라 하셨던 분께서 이제 와서 말을 바꾸시어 저주를 내리시고 분열을 일으키신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평화를 주러 오셨습니다. 주님의 평화는 세상이 원하는 거짓 평화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지요. 세상의 평화는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가짜 평화입니다. 그러한 평화는 평화의 가면을 쓰고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불의와 분열을 조장하는 ‘삶의 독소’입니다. 그런 평화는 하느님의 정의와 자비와 무관한 차가운 장벽의 침묵일 뿐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주시는 칼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나 자신을 향한 칼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칼은 탐욕과 교만, 이기심을 도려내기 위한 정화의 칼이기도 합니다. 그 칼로 세상에 재물과 권력에 대한 집착의 끈을 잘라버리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망상과 욕망의 뿌리를 잘라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히 내 마음의 평화를 되찾기 위해서가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평화의 도구가 되기 위해 주님의 칼로 먼저 나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거짓 평화를 칼로 도려내고, 하느님의 참 평화를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지요. "칼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거짓 평화를 도려내기 위한 하느님의 칼을 주러 오셨다는 뜻입니다. 이 칼은 지배하려드는 힘의 칼이 아니라 사랑의 칼입니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칼이 아니라 하느님 자비의 강이 흘러가도록 해주는 정의의 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이 칼로 세상에 참 평화를 이루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렇게 거짓 평화를 과감히 도려내는 결단이 없이는 결코 이 세상에 하느님의 평화를 이루는 행복한 우리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결단이 쉬운 일입니까? 사실 결단은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길을 선택하는 것이기에 고통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을 첫 자리에 두고 그 무엇보다도 가장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분을 선택하는 결단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랑만이 사랑하는 이를 위해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겪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가족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데 참 평화가 찾아올까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데 참으로 행복할 수 있을까요? 내 삶의 가치기준과 방향이 하느님이 아닌 세상 경험과 돈과 능력을 향하면서 영원한 생명에 이를 수 있을까요? 집착과 편견, 무관심과 무자비, 그리고 불의와 불평등이 팽배한 삶의 자리에 주님께서 들어설 자리가 있을까요?

우리 모두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10,39)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참 평화를 위한 결단과 평화의 도구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십자가의 길이지요. 그럼에도 그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이 세상에 주님의 평화가 실현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주신 칼을 손에 들고 목숨을 바치는 우리였으면 합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다보면 바보 취급을 당하고 무시와 천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늘 주님을 삶의 첫자리에 두고, 정의의 실천을 통해 사랑의 열매를 맺으며,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시원한 물 한잔을 건네는(10,42) 자비를 전함으로써, 온 세상에 참 평화를 전하는 ‘평화의 사도’가 되도록 힘써야겠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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