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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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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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9-10-20 ㅣ No.133298

 

2019년 10월 20일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제1독서 아모 2,1-5

1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환시로 받은 말씀.

2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모든 산들 위에

굳게 세워지고 언덕들보다

높이 솟아오르리라.

모든 민족들이 그리로 밀려들고

 3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분께서 당신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치시어 우리가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

이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오기 때문이다.
4 그분께서 민족들 사이에

재판관이 되시고 수많은

백성들 사이에 심판관이 되시리라.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

 5 야곱 집안아, 자,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제2독서 로마 10,9-18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9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셨다고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0 곧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11 성경도 “그를 믿는 이는 누구나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으리라.”

하고 말합니다.

12 유다인과 그리스인 사이에

차별이 없습니다. 같은 주님께서

모든 사람의 주님으로서,

당신을 받들어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한

 은혜를 베푸십니다.

13 과연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14 그런데 자기가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받들어 부를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들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15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16 그러나 모든 사람이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사야도 “주님, 저희가

전한 말을 누가 믿었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18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그들의 소리는 온 땅으로,

그들의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갔다.”

복음 마태 28,16-20

그때에 16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어느 날, 책을 읽다가 이 책의

작가처럼 특별한 내용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남들과 다른 생각이 담겨

있지 않는다면 어느 출판사에서도

그 글을 받아주지 않을 것입니다.

 즉,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만약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하고

밥 먹고 직장에 갔다가 저녁에

 다시 돌아와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들었다.’라고 썼습니다.

그런데 이 문장만 계속 반복되면

어떨까요? 자신의 특별한 생각 없이

 이렇게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만을

 반복한다면 어느 출판사에서도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관심을 끌만 한 특별한

 내용이 있어야 책도 낼 수 있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게 되겠지요.
우리의 생각에 대해 떠올려

보셨으면 합니다. 내 생각들은

책으로 낼만큼 소중한 것일까요?

사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우리는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특히 내 이야기가 아니라

남 이야기를, 좋은 이야기가

아닌 부정적인 나쁜 이야기를

머릿속에 담곤 합니다.

이런 생각들을 과연 소중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생각을

내가 만드는 것이라면 이제

다른 생각들로 내 머릿속을

채워야 하지 않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까지도

 다 헤아리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떤 생각에 관심을

가지고 봐주실까요?

따라서 어떤 생각을 간직해야

할지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기쁘게 보실만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의심이나 미움 등의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굳은 믿음과

따뜻한 사랑 등의 긍정적인

생각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께서 승천

직전에 제자들을 만나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결정적인

부활까지 목격했지요.

그런데도 그들 중에

“더러는 의심하였다.”라고

복음 사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까지 목격했어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의 나약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꾸짖지 않으십니다.

당신을 부인한 베드로나 달아난

 다른 제자들을 꾸짖지 않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인데도

가만히 둡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명을 주시지요.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이렇게 나약하고 부족한

제자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사명을 주시지요.

포기하는 마음으로 그냥 하신

말씀이었을까요?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라면 충분히

가능하므로 해야 할 일을

직접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라는 용기의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기에 우리는

어떤 것도 다 할 수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생각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 몸을 통해 가장

멋진 이야기를 주님과 함께

만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쓸데없는 생각이 나열되는

 나쁜 이야기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세상 끝까지

선포될 수 있는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삶의 마지막 순간에

바다와 하늘과 별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마십시오.

지금 그들을 보러 가십시오.

(엘리자베스 휘블러 로스)

(전교주일입니다)


이 세상에 악이 너무 많다면서

불평불만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서 왜 하느님께

이 악을 그냥 놔두냐고,

혹시 하느님께서 너무 약하고

무능한 분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악령도,

 악한 것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라는

선물로 그분께 대항하는 타락한

천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스스로 악해지는 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로 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는 곧 하느님 것이 아닌 것을

선택하는 행위가 됩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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