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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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님(2024년 4월 28일 부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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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4-04-28 ㅣ No.171905

제1독서

▥ 사도행전의 말씀 9,26-31 

 

그 무렵 

26 사울은 예루살렘에 이르러 제자들과 어울리려고 하였지만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그가 제자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27 그러나 바르나바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는지, 또 어떻게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28 그리하여 사울은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며 주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다.
29 그리고 그리스계 유다인들과 이야기도 하고 토론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사울을 없애 버리려고 벼르고 있었다.
30 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냈다.
31 이제 교회는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온 지방에서 평화를 누리며 굳건히 세워지고, 주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면서 성령의 격려를 받아 그 수가 늘어났다. 

 


제2독서
▥ 요한 1서의 말씀 3,18-24 

 

18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9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게 되고, 또 그분 앞에서 마음을 편히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20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더라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마음보다 크시고 또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21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이 우리를 단죄하지 않으면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22 그리고 우리가 청하는 것은 다 그분에게서 받게 됩니다.
우리가 그분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 마음에 드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23 그분의 계명은 이렇습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4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우리는 바로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알고 있습니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5,1-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쳐 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모두 깨끗이 손질하시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한 말로 이미 깨끗하게 되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잘린 가지처럼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런 가지들을 모아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내 안에 머무르고 내 말이 너희 안에 머무르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청하여라.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내 제자가 되면, 그것으로 내 아버지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것이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


오늘 제1독서에서는 바오로의 회심이 그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단호하고, 결정적인 사건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참으로 그의 회심은 죽음을 담보로 한 회심이었습니다.

 

그의 회심은 신앙이 하나의 장신구가 아니라, ‘신앙이 아니면, 삶이 의미도 없다.’라는 실존적 선택이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윤리 도덕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사도 바오로에게 목숨을 불사하게 한 신앙의 진리는 무엇이었을까?  

 

이 진리에 대해서,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해줍니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요한 3,18)

이는 단지 언행일치의 윤리도덕 차원의 차원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신적 속성인 '진리 안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그 근거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은 단지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가 아니라, '참 포도나무와 가지'에 대한 비유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포도나무는 이스라엘 백성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참'이라는 형용사가 붙어서, 예수님의 진리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참된 진리는 '참 포도나무와 가지와의 관계, 곧 참된 진리이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통해서 드러납니다.

이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여덟 번이나 반복되고 있는 '머물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신비스런 단어인 '머물다'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 복음에서는 우선적으로 '붙어있음'을 말합니다.

곧 포도나무에 붙어있어서, 다른 데서가 아닌 바로 그 포도나무로부터 수액을 받아먹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마치 물고기 물을 떠나면 죽음이듯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처럼 '머물다'는 말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상호 불가분의 긴밀한 관계'로 ‘붙어있음’ 말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포도나무에 붙어있다는 사실만으로는 결코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있다 하더라도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잘려져 불에 태워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붙어있되 '열매를 맺는 이'라야 '머물러 있는 이' 입니다.

따라서 '머물다'는 말의 의미는 단지 그분께 붙어있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열매 맺으실 수 있도록 자신을 비워드림이요, 그분의 말씀의 권능이 자신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허용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참 생명’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요, 그분과 결합하여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에서 말합니다.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 분과 한 영이 됩니다.”

(1코린 6,17)

그러기에 '머물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상호 내주 혹은 상호 공유의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느님과 인간이 함께 벌리는 역동적인 활동이 벌어지는 ‘상호 친교’요, ‘상호 교제’요, ‘상호 교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오늘 <예물기도>에서는 '거룩한 교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토록 예수님께서는 사도 베드로가 밝히듯,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2베드 1,4)

참으로 하느님께서는 하찮은 우리에게 영광의 관을 씌어주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우리 안에 계시며 활동하십니다. 

참으로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그분과 이토록 신비롭게 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러한 '공동 본성(Connaturality)'에서 오는 앎에 경탄하여 탄성을 질렀습니다.

“아, 우리가 하나라는 걸 그토록 모르는가?”

 

바로 이 ‘공동 본성’이 우리에게 신적 진리, 참된 진리를 가능케 하는 자리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자리가 신적 진리로써 사랑이 피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스런 ‘참 사랑’, 하늘스런 ‘참 생명’이 피어나는 곳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토마스는 ‘공동 본성에서 오는 사랑의 지혜, 하느님 사랑으로 주어지는 신적 지혜 혹은 관상’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이 신적 진리, 참된 진리에 참으로 머물러 있고, 열매를 많이 맺을 수가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오늘 복음에서 찾아본다면, “너희는 나 없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라는 말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곧 가지는 나무에 속해 있을 뿐 스스로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가지가 나무를 지탱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가지를 존속시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또 열매를 맺으실 수 있는 그분께 승복하여 그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라야 참된 사랑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단지 붙어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머물러 있어야 할 일입니다.

이미 우리 안에 내주하신 그분의 수액을 받아 마시며, 말씀 안에 머물고, 사귀고, 교제하면서, 당신께서 열매를 맺으시도록 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사도 바오로처럼,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고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요한 15,4)

 

주님!

당신께서는 무너뜨리지만 열매를 맺어주셨고, 부서뜨리지만 새싹을 틔워주셨습니다.

이토록 제 자신이 부서지고서야, 제 자신을 건네주고서야, 당신께 머무르는 법을 배워갑니다.

꽃이 지듯 제가 무너지는 것을 안타까워하지 않게 하소서.

열매가 떨어지듯 제가 사라지는 것을 서러워하지 않게 하소서.

주님, 저는 오늘도 떨어져야 머물게 되는 이 신비로운 사랑 앞에 떨어지지 못함이 부끄럽고 죄송스러워 고개를 떨굽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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