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교전 생존자 … GP 참사 목격자 … 베트남 참전 군인 그들은 아직도 전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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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참전자 권기형씨의 왼손에는 큰 상흔이 있다. 북한 경비정에서 날아온 총알이 손을 뚫고 나간 것이다. 그의 마음에도 총상만큼 깊은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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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교전 당시 북 경비정의 공격으로 침몰했던 아군 참수리 357호가 인양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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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상을 겪은 군인의 마음에는 상흔이 남는다.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총상'. 의학적으로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 부른다. 국가의 '명'에 따르다 얻은 고통인 만큼 선진국에선 대책을 단단히 세워놓는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이를 방치한다. '꾀병'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한다.
#1. 창백한 얼굴에 힘없는 목소리. 2002년 6월 발생한 서해교전의 생존자 고경락(26)씨. "만사가 귀찮고 기억력도 떨어지고…." 그를 이렇게 만든 건 북한 함정의 기습 포격으로 아수라장이 됐던 선상의 기억. 지금도 밤이면 가끔 살려달라던 전우의 신음이 귀를 울린다. 사진 속 인물이 노려보는 것 같아 방에 있는 액자를 모두 치웠다. 그날의 악몽을 지우려고 여섯 달 동안 게임만 한 적도 있다. 마음을 옥죄는 건 공포만이 아니다. "교전 직후 주변에서 '아군 함정이 침몰당한 패전'이라고 수군대더군요. 교전수칙을 지키다 그렇게 된 건데, 그런 편견 때문에 더 괴롭습니다."
#2. 새벽 5시, 어둠이 싫어 전등을 켜놓은 방. 누군가 흉기를 들고 달려들 것만 같다.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에 둔 가방 속으로 손을 뻗는다. 잡히는 건 늘 지니고 다니는 재크나이프.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내가 날 지키는 수밖에….' 칼을 만지작거리며 잠을 청해보지만 이내 끔찍했던 현장이 떠오른다. 지난해 6월 터진 경기도 연천 총기 난사 사고의 생존자 Q씨는 매일 이런 불면증에 시달린다. 입대 전 교사를 꿈꿨던 그. 하지만 사고 이후 딴 사람이 돼버렸다. 누군가 자신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람 만나기를 꺼린다. 제대 후 복학도 하지 않았다.
"사고가 날 것 같아 버스나 지하철 타기가 겁나요."(서해교전 생존자 김택중씨) "아직도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어요."(연천 사고 생존자 최재욱씨)
전투.사고 등을 겪은 군인 중 상당수가 우울증.대인기피증 같은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린다. 그 상처는 오랫동안, 깊게 남는다. 30여 년 전 베트남전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던 박형원(62)씨. 한때 자살을 기도했던 그는 요즘도 잘 때면 숨이 멈춰지곤 해 산소 호흡기를 쓴다.
취재팀은 서해교전과 베트남전 참전자, 연천 총기 사고 생존자 등 235명을 심층 인터뷰, 설문조사했다. 정신과 전문의가 조사 내용을 감정한 결과 대부분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증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천 사고 생존자 24명은 모두 심한 장애를, 서해교전 참전자 6명도 모두 중.경증 장애를 보였다. 베트남전 참전자도 205명 중 78%가 고통을 겪고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들 장병을 제대로 예방.치료할 체계를 갖추기는커녕 정확한 실태조차 파악하지 않고 있다. 연천 사고 생존자의 가족들은 최근 "생존자들이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신체장애처럼 국가유공자 인정 범위에 포함시켜 달라"고 집단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가톨릭대 전태연(정신과) 교수는 "국가에 봉사하다 받은 상처인 만큼 당연히 국가가 책임지고 치료와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직도 전쟁 중
한국선 자료 요청하자 "통계 없다"
미국선 1989년 국립 치료센터 세워 <상> 그들은 아직도 전쟁 중
'마음의 총상'의 의학적 용어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여기서 외상(外傷)은 신체적 손상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전쟁.천재지변.화재.사고 등 끔찍한 사건이 남긴 정신적 충격을 가리킨다. 1982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끔찍한 범죄를 경험한 피해자, 총을 쏴 사람을 사상하게 한 경찰관, 대형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 등에서도 나타나지만 주로 전쟁의 참상을 겪은 제대 군인에게서 많이 발생한다.
미국에는 제대 군인의 정신적 후유증을 치유할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갖춰져 있다. 베트남 전쟁에서 귀향한 군인들의 사회 부적응이 이슈로 부각되면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된 결과다. 89년 국립 PTSD센터가 설립되기에 이른다. 호주의 경우 이 장애의 일종인 '전쟁 과민 증상'을 국가가 책임져야 할 후유증으로 보고 환자들에게 연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취재팀은 국방부에 PTSD를 겪는 전.현직 군인에 대한 자료 공개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28사단 사고(연천 총기 사고) 관련 14명임"이라고 밝혀왔다. 연천 사고 이전의 실태에 대해서는 공식 통계가 없는 것이다. 서해교전이나 베트남전 참전자들이 겪고 있는 후유증은 아예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국가보훈처에는 PTSD로 유공자에 선정된 경우가 있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보훈처 심사정책과 관계자는 "질환별로 통계를 내지 않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체계적 관리가 이뤄지고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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