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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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끌어안은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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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옥 [songdo] 쪽지 캡슐

2001-11-03 ㅣ No.5002

(오늘아침 중앙일보 칼럼에서)

[사형수 끌어안은 추기경]

 김수환 추기경의 얼굴이 환하다.

생면부지의 사형수를 끌어안으면서 그렇게 환하게 웃다니.

지난달 26일 서울구치소에서 가톨릭에 귀의한

사형수 7명을 만난 추기경 얘기다.

사형수를 만나고 돌아온 추기경이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은 면담후 소감은 더 놀랍다.

"그 사람들 나보다 더 나은데,

왜 그런 사람을 꼭 죽이려고 하는지…."

"정권말기 집행 안했으면"

추기경은 우리나라에서 사형폐지운동에

가장 앞장 서는 사람이래도 과언이 아니다.

그날도 추기경은 구치소에서 사형수를 만나기 직전

법무부 교정국장에게 사형폐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요지는 "생명은 존중돼야 한다"는 것.

가톨릭의 고위성직자로서

'하느님이 창조한 생명'을 존중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만약 이 자리에서 추기경이 매우 이례적인

두가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의 사형폐지론은 그저 평범한 주장에 불과했을 것이다.

주목할 만한 두가지 언급 중 하나는

추기경이 극히 자제해 온 정치적 발언.

이례적으로 강한 톤의 경고다.

"문민정부 말기에 마치 청소를 하듯

사형집행을 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현정부가 그런 일을 되풀이한다면

노벨평화상의 색깔이 달라질 것입니다."

추기경은 우선 급한 사형집행을 막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끌어들였다.

대통령이 무더기로 사형을 집행할 경우

평생 민주.인권에 공헌한 성과로 받은

노벨평화상의 의미가 퇴색할 것이란 경고다.

평소 추기경답지 않은 강한 표현은

그만큼 사형집행을 막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탓일 것이다.

동시에 정권말기 사형집행의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한다는 얘기다.

추기경의 지인들에 따르면,

이런 추기경의 추측은

교도소 주변을 떠도는 소문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난 김영삼 정부 말기 23명의 사형수를

 무더기로 교수형시킴으로써

사형수의 숫자를 38명으로 줄여 현정권에 넘겼다.

현정권은 한번도 사형집행을 하지 않았다.

현재 사형수는 51명으로 늘었다.

교도소 주변에서 흔히 나도는 사형수의 '적정인원수'는 30명선.

추기경은 정권말기 재연될 개연성이 큰

'사형수 숫자 맞히기'를 경고한 셈이다.

두번째 주목할 언급은 '왜 추기경이

사형폐지에 이토록 적극적인가'를 설명해주는 얘기다.

추기경은 35년 전 개인적 경험을 어렵사리 꺼냈다.

1966년 마산교구장이었던 추기경은

대구에서 수감자들을 위한 사목활동을 할 당시 알았던

사형수가 사형집행을 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고 대구로 달려갔다.

"피해자 가족에게 용서를 구한다"는 유언을 남긴 살인범에게

올가미가 씌워졌다.

 '덜커덩'하고 발판이 빠지면서 사형수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

 '우지직'하며 나무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올가미를 매단 나무가 부러진 것이다.

교도관이 "아마 심장마비로 죽었을 것"이라고 했지만

추기경은 확인차 달려갔다.

지하 바닥에 떨어진 사형수가 추기경을 보고 빙긋이 웃었다.

추기경은 뭐라고 위로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추기경이 사형수와 앉아 얘기를 나누는 동안

교도관들이 나무를 가져다 사형대를 수리했다.

30분 가량 걸릴 것이란 얘기를 듣고

사형수가 추기경을 오히려 위로했다.

"하느님께 가는데 두려울 게 없습니다.

30분 후면 제가 천당에 가 주교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카톨릭에 귀의한 '흉악범'

죽음과 죽음 사이,

짧은 시간에 사형수가 추기경을 위로한 진풍경이다.

이 얘기에서 추기경이 강조하고자 한 것은

'회개한 흉악범'이다.

추기경은 이후 여러번 가톨릭에 귀의한 사형수들을 면담하면서

35년 전 보았던 '회개한 인간'의 모습을 확인해왔다.

 26일 면담에서도 추기경은 '맑아진 영혼'을 보았고,

"그들이 나보다 낫다"고 얘기한 것이다.

이날 면담은 일부 국회의원들이 추진 중인

사형폐지특별법 제정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일종의 시위였다.

그러나 추기경이 남긴 몇가지 이례적인 언급은

결코 정치적 레토릭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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