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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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略 개입된 ‘국정원 개혁’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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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1-12 ㅣ No.784

이른바 국가정보원의 ‘댓글 사건’으로 촉발된 여·야의 정치적 대립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국가정보원·경찰·검찰 같은 국가기관이 정치권과 얽히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언제, 어디까지 갈 것인지 지루한 공방에 국민은 답답하고 불안하다.

북한은 2000년부터 비대칭 전력의 하나로 사이버 공간을 활용한 테러와 심리전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약 1만2000명의 전문 인력이 한국 인터넷에 대한 사이버 테러는 물론 체제선전과 대남 심리전을 자행하고 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 ‘우리 민족끼리’ 기사를 배포하는 시스템을 구축, 300여 개의 북한 체제 선전 계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여기에 종북 세력이 북한 계정과 친구 관계를 맺고 반정부 선전선동 글을 유포한다. 이에 국정원은 북한 및 종북 세력에 대응하기 위한 트위터상 심리전 활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심리전단을 구성했다고 한다.

국정원 심리전 활동의 정당성에 시비를 걸 수는 없다. 문제는 대선을 앞두고 북한 및 종북 세력들에 의한 특정 후보 지지 또는 반대의 글이 트위터에 난무하고, 국정원이 심리전 차원에서 이에 대응하면서 발생했다. 야당은 자기 측 대통령 후보에게 불리한 글이 게재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민감한 시기에 정치권은 각자 유리한 방향으로 이 사건을 활용했고, 정보활동 비공개를 생명으로 하는 국정원과 이를 밝히려는 경찰·검찰 사이에도 기관의 입지 등을 고려한 미묘한 갈등이 생기면서 사건은 정치적으로 변질돼 갔다.

어쨌든 국정원의 심리전 활동은 1년 가까이 정치권을 수렁에 빠뜨리고 국민을 불안케 했다는 점에서 실패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체 감찰조사와 업무감사를 통한 엄중한 책임 추궁과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한 정치적 통제와 감독이 이뤄져야 한다. 정보기관의 속성상 책임 추궁 역시 비공개가 원칙지만 그 활동이 외부에 노출됐다는 점에서 사법기관의 법적 판단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제 ‘댓글 사건’이 대북 심리전 활동의 범위를 넘어 대선에 개입한 것인지 여부는 사법부의 법적 판단에 맡겨졌다.

야당은 ‘댓글 사건’을 이유로 국정원 개혁을 주장한다. 그런데 ‘댓글 사건’과 전혀 관계 없는 대공 수사권과 국내 정보 수집, 정보 및 보안 업무의 기획조정 기능을 폐지하자고 한다. 말이 개혁이지 사실상 정보기관 해체를 주장하는 것이다. 야당의 속내를 이해 못할 바 아니지만, 정보기관의 무력화(無力化)를 초래할 이러한 주장이 과연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겠는가.

특히, 야당이 예산회계에 관한 특별법 폐지 법률안을 발의한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안보와 국익을 위한 정보활동을 차질 없이 수행하기 위해선 정보 역량과 수단에 대한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산회계 특별법이 정보기관의 예·결산상 세부 내역이 공개되지 않도록 특별절차를 규정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보기관의 예산이 국회의 통제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 국회 정보위가 예·결산 심사를 위한 별도의 소위를 구성, 세부 내역을 충분히 보고받고 수정·의결하는 등 엄격한 실질적 통제를 하고 있다. 더구나 예산소위 위원장은 야당에서 맡고 있다. 그런데도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정보기관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국정원은 특정 정권의 정보기관이 아니고, 여야를 초월한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이다. 따라서 국정원 개혁은 정략적(政略的) 차원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국익, 미래 정보 환경의 변화에 맞춰 정보기관 본연의 업무를 더욱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정보기관의 약화는 국가 안보의 약화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김호정/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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