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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3일 명동주보 8면 빈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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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성당 [myungdong] 쪽지 캡슐

2002-10-11 ㅣ No.40263

 우리말에 "이판사판"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국어 사전에는 순수 우리말로서 본시는 "이판 새판"이며 그 뜻은 "막다른 데에 이르러 더는 어찌할 수 없게 된 판"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최근에 들은 바로는 이 말이 불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판(理判)은 속세를 떠나 도를 닦는 데 마음을 기울이는 스님들을 뜻하고 사판(事判)은 재산 관리 등의 사무를 맡아보는 스님을 뜻한답니다. 이 이판과 사판이 혼동되면 정말 어찌 해결해야 좋을지 모를 막판에 이르게 된다는 오랜 경험에서 나온 말인 듯 합니다.

 요즘 성모병원들에서 노사간 갈등이 심해지자 노조는 명동성당에 몰려와서 대주교님과의 면담을 주장하며, 경희 의료원에서 이사장이 결말을 지었듯이 가톨릭 의료원에서도 이사장이신 대주교께서 나서서 결말을 지으라고 아우성입니다. 병원 책임을 맡은 신부도 필요 없고 명동 주임신부도 필요 없고 대주교께서 직접 나서랍니다.

 서울 대교구의 교구장 대주교는 한국 천주교회의 정신적인 수장이시고 이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중 한 분이십니다. 비록 법률 제도상 천주교 서울 대교구 유지재단의 이사장이시고 또 학교법인의 이사장으로서 학교 병원의 명목상 직책을 가지고 계시지만 그 분은 이판(理判)이실 따름입니다. 복음을 묵상하고 세상에 선포하는 일이 그분의 중요하고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산하 본당을 공식 방문하실 때에도 오로지 사목적인 관심에 치중합니다. 학교 방문은 극히 이례적이며 그 운영은 담당자에게 일임하고 있습니다. 학교 산하의 병원운영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노조와의 관계는 이판으로서는 직접 관여하기에는 힘든 극히 전문적인 사항입니다. 직접 개입하다가는 그야말로 이판사판이 되어버립니다. 이에 반하여 일반 사회의 거의 모든 재단이나 법인들의 이사장들은 평소에 운영권을 행사하는 사판(事判)인 셈입니다. 따라서 운영에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비록 수하에게 위임하였던 사항일지라도 직접 나서서 결정권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정신적 지도자인 대주교께서 이판으로 영원히 남는 것이 이 나라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하여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노조의 주장대로 사판으로 끌어내리고 나면 우리 나라가 불행해집니다. 결국에는 정신적 지도자 하나를 버리는 것이고 또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가톨릭 교회도 이판사판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농성 현장에서 좌충우돌해야 하는 저는 늘 이렇게 고민합니다.

  "나는 이판일까, 사판일까, 그와 저가 섞인 아수라판일까?"                 

                                            - 백남용(바오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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