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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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렬신부(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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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5-10 ㅣ No.120367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 찬미예수님

미사 때마다 보이던 할머니들이

안보이면 가슴 철렁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맨 앞줄

전원출석 다하셨네요. 반갑습니다.

크리스챤들이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머리에 남아있는

성서구절 1번이 무엇인줄 아세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어느 복음인 줄은 몰라도

개신교나 천주교신자나

가장 많이 기억하는 구절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55절입니다.

외우세요.

오늘 복음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교우들과 나와의 관계가

어떠해야하는지 관계성을

묵상하게 합니다.

첫 번째 가지와 줄기의

관계를 묵상해봅시다.

줄기는 하느님,

가지는 우리 각자입니다.

줄기 없이 가지가 세상에

혼자 존재할 수 없어요.

반드시 줄기가 있어야

그 끝에서 가지가 나오고

나중에는 열매까지 맺게 됩니다.

가지가 줄기에

어떤 힘으로 붙어 있는가?

그것이 첫 번째 묵상거리입니다.

우리들은 이 관계를

늘 확인하기 위해 자주

세 가지의 질문을 던져야합니다.

첫째, 내가 하느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

둘째, 내가 영성적으로

커질 수 있는 힘이 무엇인가?

셋째, 나를 냉담자가 안되게

하는 힘이 무엇인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가지가

줄기에서 떨어지면 금세

불쏘시개가 될 수밖에 없어요.

하느님에게, 줄기에 붙어 있으면서

자라서 나중에 열매까지 맺어야 해요.

붙어있긴 한데 자라지 않는다면

쓸데없는 가지입니다.

세상은 자꾸 나를 끌어내리고

마귀는 나를 하느님에게로부터

자꾸 떼어놓으려고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혹은 여러분도

과거에 냉담한 적이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마음먹고

냉담하는 사람은 없어요.

처음 한주 두주 빠지다보면

한 달 두 달이 되고,

그러다보면 휙 지나 2

0년 냉담을 하게 되요.

마귀는 마귀장난이

아닌 것처럼 교묘하게 하느님과

나를 떼어 놓으려 해요.

아무튼 가지가 줄기에

어떤 힘으로 붙어있는가?

또 어떤 힘으로 쭉쭉 자라

나중에 당도 높은

열매를 맺게 되는가?

비바람이 치고 우박이 내리고

돌멩이가 날아와

상처가 있을지언정

줄기에서 붙어있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여러분들이 저에게 물어보세요,

신부님에게는 어떤 덕이

가장 어렵 습니까?’

겸손입니다. 겸손하게

사는 것이 제일 힘들어요,

속은 부글부글 끓어도

표정관리하면서

겸손한 척은 할 수 있으나,

내 속까지 꿰뚫어 보시는

주님 앞에 무릎 꿇고

오늘 하루 겸손하게 살았는지

내가 사목하는 본당에서

겸손한 목자로 살았는지

스스로 물어보면 늘 부끄러워요.

이 겸손이 없으면 줄기에

붙어있어도 바람만 불면

툭 떨어져 나가요.

붙어있어도 헛것이에요,

자라지도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해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에게

제자들이 임종 전에 묻습니다.

이 세상에서 첫 번째

덕이 무엇입니까?’ ‘겸손이다.’

두 번째 덕을 물어도 겸손,

세 번째 덕을 물어도

겸손이라 했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성인도

한평생을 겸손과 싸웠어요.

그런데 이 겸손은 재주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참 더 힘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이나

바오로 사도나 한평생을

자기 교만과 싸우는 모습이

성서 곳곳에 나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겸손하게 살 수 있을까?

겸손은 억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시대에 바리사이들이

있었는데 바라사이에는

종류가 많았어요.

그 중 붕대 바리사이가 있었는데,

늘 붕대를 감고 다니고

그 사이로 핏빛이 보여요.

늘 겸손한 척 하려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다가

여기 저리 꽝 부딪힌 거예요.

피할 수 있어도 나는 이렇게

겸손한 자라고 보이려도

일부러 부딪혔어요.

고개 숙이고 다닌다고

겸손한 것 아니지요?

목소리 나긋나긋하게 한다고

겸손해 지는 것 아니죠?

겸손은 의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입니다.

하느님에게서 겸손이라는

선물을 받으려면

첫째 자신에 대한 관상을

소홀히 해서 안 됩니다.

관상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거예요.

그러기위해서는

성찰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서에 있는

저녁기도, 말로만하면

5분도 안 걸리지만

저녁기도가 참 중요해요.

생각과 말과 행실로

지은 죄가 무엇인지,

무관심하게 살았던 죄라 무엇인지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보면

하느님 앞에 비참한 마음이 들어요.

예수님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해드렸는지,

성모님의 마음을 얼마나

상하게 해드렸는지 깨닫게 되요.

주님, 오늘도 저는

죄인으로 살았습니다.’

하느님 앞에 자기 자신의

영적인 비참함을 깨달을 때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

겸손입니다.

그러면 자동으로

하느님에 대한 관상으로

들어가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영적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겸손한 자는 기쁘게 살아야 해요.

입으로만, 혹은 얼굴이나

행동만으로 겸손한지

가식적인지는

기쁘게 사는지를 보면 알아요.

모든 행위가 겸손한 행동일지라도,

그 사람에게서 기쁨을

발견할 수 없다면

그것은 겸손을

가장한 교만입니다.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는

첫 번째 힘은 겸손입니다.

이런 겸손은 자기에 대한

관상을 통해 얻어지기에

마귀새끼들은 저녁기도를

못하게 해요.

텔레비전을 보다

바로 잠들게 해요.

그리고 저녁기도를 하더라도

혼이 없는 기도를 하게 만들어요.

그러면 겸손의 끝은 어디일까요?

언제야 주님에게

너는 참 겸손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 닮아야 해요.

예수님의 마음이 되어야 해요.

두 번째로 가지가 줄기에

붙어있는 힘은 죽을 때까지

향주삼덕을 붙들고 살아야합니다.

이 신덕, 망덕, 애덕,

삼덕으로 나와 하느님을

연결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천국에 못갑니다.

신덕의 핵심은 순명입니다.

망덕의 핵심은 기쁨입니다.

애덕의 핵심은

사랑이 아니라 용서입니다.

순명과 기쁨과 용서의 삶을

살지 않으면 죽은 가지가 됩니다.

새도 앉지도 못하고

뚝 부러져버리는

썩은 가지가 됩니다.

이렇게 가지와 줄기의

관계는 겸손과 향주삼덕으로

연결됩니다. 아멘!

잠언 1812절에서

교만에는 재난이 따르지만

겸손에는 영광이 따른다.”

이라 말씀하십니다.

야고보서 410

주님 안에서

스스로 낮추십시오.

그러 주님께서 높여주실

것입니다.”라 하십니다.

두 번째 관계인 가지와

가지와의 관계를 살펴봅시다.

가지와 가지는 붙어있는

관계가 아니라 줄기를

중심으로 모여 있는 관계입니다.

교우와 교우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양분을 받아서 같이

공유하는 관계입니다.

교우들끼리는 근본적으로

서로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신뢰의 대상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믿음의 대상입니다.

그러니 누구 믿고

돈 빌려주었다는 말은

하지 마십시오.

사람들끼리는 믿음이라는

말을 쓰면 안돼요.

사람끼리는 신의의 관계요,

신뢰의 관계입니다.

사람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과 동급으로

여긴다는 말인데, 아니죠.

세상에는 수많은 집단과

모임이 있습니다.

돈을 중심으로 모이는 집단,

정치 성향으로 모이는 집단,

취미를 중심으로 모이는 집단 등.

이런 세속적인 집단의

특징이 있어요.

첫째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계주가 튀면 그 계는

깨지는 겁니다.

두 번째 가면 재미는 있으나

평화와 기쁨은 없습니다.

계 모임가면 성당보다

훨씬 더 평화를 느끼고

기뻐하는 분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세 번째 기득권 싸움,

세력 다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라고 하는

줄기를 중심으로 양분을 받아

살아가는 가지들이 모인

신앙공동체는

첫 번째 어떤 일이 있어도

깨져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 재미로

모여서는 안 됩니다.

세 번째 높고 낮음의

세력다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피정을 다니다보면

역사가 있는 성당에서

사목하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하시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토박이 신자들이 다른 곳에서 오는

신자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묘하게 괴롭혀서 상처를 준다거나

다른 곳에서 온 능력 있고

열심한 신자들을 받아주지 못하고

유세를 부린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저는 우리 교구에서 오래된

성당 1, 2, 3

다 다니고 있습니다.

감곡, 진천, 서운동성당.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제가 갈 때만해도

교구 신부님들 사이에

기피 1호 성당이

감곡성당이었습니다.

너무 드세서 임기 채우려면

두 가지 방법뿐이 없다고 했어요.

신자보다 월등히 기가 세어

신자들을 누르고 살든지,

아니면 임기동안 신자들 말에

잘 순명하고 살든지.

감곡은 신부님 수녀님이

가장 많이 나온 곳이라

집집마다 신부 수녀

한 둘 없는 집이 없지요.

자기 아들신부 딸 수녀

생각해서 본당 신부 수녀에게

더 잘해야 하는데,

대부분은 잘합니다.

하지만 내 아들도 신부인데,

내 딸도 둘이나 수녀야.

뭔 본당수녀가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 해?’

자기 아들 신부 얼굴,

딸 수녀 얼굴에 똥칠하는 거지요.

저는 그곳 5년 동안

빚만 갚은 것은 아니라

신자들의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고치고 싶었어요.

후임신부로 누가 와도

정말 성모님의 성지에

사는 신자들이구나.’ 라고

말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제일가고 싶은

우선순위 성당가운데 하나래요.

나 혼자 생각하는 거예요.

확인된 것도 아니고요.(웃음)

여러분, 제가 사람끼리

믿음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고 그랬지만

오늘은 이 말을 쓰고 싶어요.

저는 서운동 신자들을 믿어요.

좀 전에 이야기했던

타관사람 눈치주고

유세 떠는 신자들은

한 사람도 없다고 믿어요.

만의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교회를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는 사탄의

생각이 분명합니다.

받아들이는 교회,

겸손한 교회로 살 때

끊임없이 맛있고 알이

가득 찬 포도송이

열매를 만드는 교회임을

명심합시다. 아멘

2018년 부활 제5주일(4/29)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서운동순례지성당 -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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