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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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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1-06-23 ㅣ No.147822

2012년입니다. 5년간의 본당사목을 마치고 중견사제연수를 신청하였습니다. 연수는 11월에 끝나고, 새로운 곳으로 가기 전까지 3달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마침 미국에 있는 동창신부님이 대림특강을 부탁하였습니다. 미국여행도 가고, 대림특강도 하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순풍에 돛을 달면 배는 가볍게 파도를 헤치고 나갈 수 있습니다. 5년간의 수고를 하느님께서 알아주시고, 제게 특별한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생각은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중견사제연수를 마치기 10일 전에 그만 발목골절이라는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으로 가면서 동창신부님에게 전화하였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갈 수 없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동창신부님도 잘 치료받으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행을 가는 대신에 병원에서 깁스를 하면서 지내도록 해 주셨습니다. 병원에 있으면서 어머니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1년 전에 홀로되신 어머니에게 효도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목발에 의지하면서 고통을 묵상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셨습니다. 성탄 전날에 깁스를 풀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성탄을 지낼 수 있었습니다. 성지순례 가기 전에 목발을 내려놓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게 자비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6년이 흐른 뒤입니다. 2018년입니다. 저는 교구 성소국장의 소임을 마치고 동창신부님이 있는 본당으로 갔습니다. 동창신부님이 강의를 부탁하였습니다. 저는 2달 동안 머물면서 강의도하고, 미사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맞습니다. “인간이 마음으로 앞길을 계획하여도 그의 발걸음을 이끄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잠언 16,9)”

 

오늘 축일로 지내는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뜻이 드러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분은 점점 커지셔야 하고, 나는 점점 작아질 것입니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삶의 태도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축일도 그런 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축일은 여름이 긴 하지에 가깝습니다. 하지가 지나면 여름은 점차 짧아집니다. 예수님의 축일은 겨울이 가장 긴 동지에 가깝습니다. 동지가 지나면 낮은 점점 길어집니다. 슬픈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한 없이 슬플 수 있습니다. 구약을 마치고, 신약을 시작하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는 가장 위대하다는 말을 들었던 세례자 요한은 살로메의 춤 값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의 몸에서 태어난 이들 중에 가장 위대한 세례자 요한을 기억하고 있으며, 사랑과 공경을 드리고 있습니다.

 

언젠가 읽은 수도자란?’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높이지 않고 떠벌이지 않으며

앞세우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얕보지 않고 굽히지 않으며

숨길 것 없으며

탐할 것 없으며

불 꺼진 곳에 한 점 빛이다.

 

밀알처럼 썩는 아픔과

기쁨을 누리고자

오직 이름 없이 살기를 원한다.

진실로 죄지은 이의 짐을 지고 가는

지게이고자.

 

남을 복되게 해 놓고

맨 나중에 행복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끝에

자신의 이름을 지워버리고

떠나간다.”

 

우리는 이 세상의 순례자입니다. 오늘 수도자라는 이름 대신에 세례명을 넣어보면 좋겠습니다. “가브리엘 너는 밀알처럼 썩는 아픔과 기쁨을 누리고자 오직 이름 없이 살기를 원하는가! 가브리엘 너는 진실로 죄지은 이의 짐을 지고 가는 지게가 되길 원하는가! 가브리엘 너는 남을 복되게 해 놓고 맨 나중에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리고 끝에 자신의 이름마저 지워버리고 떠날 수 있는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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