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일)
(백)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영화ㅣ음악 이야기 영화이야기ㅣ음악이야기 통합게시판 입니다.

* 관장 할머니 * (엄마)

스크랩 인쇄

이현철 [hl1ye] 쪽지 캡슐

2005-10-18 ㅣ No.509

 

                    관장(灌腸) 할머니



  십자가를 안테나로!

  제가 집을 찾아가면 늘 ‘상등통회’니 ‘하등통회’니 하고 교의신학 석사인 아들에게 일장의 교리설명을 늘 해주시던 저의 어머니의 화제가 언제부터인지 ‘변’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머니가 만성변비로 고생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는 그동안 여동생에게서 들었지만 이렇게 모처럼 아들이 찾아왔는데도 계속 ‘변’이야기만 하셔서 듣기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른 아침, 어머니가 제게 급히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이냐시오야, 같이 병원에 좀 가자”고...

  저는 놀란 나머지 세수도 제대로 하지 않고 택시를 대절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 응급실에 갔는데, 상냥한 간호사가 하는 말,

  “어서 오세요. 관장 할머니”하고 베드에 빨리 누우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전에 성당 사무장을 하는 친구가 저희 어머니가 성당에서 어지럼증으로 ‘잘 넘어지는 할머니’로 유명(?)하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병원에서도 간호사들에게 ‘관장 할머니’로 유명한 줄은 미처 몰랐고 또 이런 처지가 된 어머니가 너무나 불쌍해보였습니다. 하지만 늦게나마 제가 어머니께 조금은 효도를 할 수 있게 됨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남자 간호사가 못 되면 ‘배관수리공’ 자격증만은 꼭 따서 어머니의 민생고(?)를 제가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참고로 박용식 신부님의 글 ''''어머니의 기저귀''''와 영화 ‘엄마’를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어머니의 기저귀>


   나의 어머니께서 췌장암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은 후 극도로 쇠약해지셔서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하실 수 없다. 밥도 먹여드려야 하고 대소변도 받아내야 한다.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대변을 보신 후에 밑도 닦아드려야 한다. 옷도 입혀드려야 하고 얼굴도 씻겨드려야 한다.

 열여섯 살에 시집오셔서 지금까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시고 자식만을 위해 사시면서 무엇이든지 자식을 위해 다 해주셨지만 이제는 자식을 위해 해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그래서 이제는 자식들한테서 받을 차례이다. 나는 요즈음 틈만 나면 어머니에게 가서 밥을, 아니 미음을 먹여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얼굴을 씻어드리고 옷을 입혀드리면서 전에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사랑을 느끼고 있다.

  내가 어머니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대변을 닦아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어머니께서 나의 대변을 몇 번이나 닦아주셨을까? 내가 똥을 쌌을 때마다 밑을 닦아 주셨을 텐데 몇 번쯤 될까? 적어도 4-5년은 닦아주셨을 것이고 5년이면 1,825일이고 하루에 두 번씩만 닦아주셨어도 3,650번이다. 그렇다면 내가 어머니의 밑을 36번을 닦아드려야 겨우 100분의 1을 갚는 것이다. 그런데 어머니의 대변을 36번 닦아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오줌을 싸서 기저귀를 갈아 주신 게 몇 번이나 될까? 적어도 3년 동안은 오줌을 쌌을 것이고 세 시간에 한 번씩 쌌다면 하루에 8번이고 3년이면 8,760번이다. 내가 어머니 기저귀를 87번을 갈아드려야 겨우 100분의 1을 보답하는 것이다. 어머니께서 나에게 젖을 먹여주시고 밥을 먹여주신 것이 몇 번이나 될까? 적어도 3년은 먹여주셨을 것이고 3년이면 하루에 세 번씩만 쳐도 1,095번인데 내가 100번을 먹여드려야 겨우 10분의 1을 갚는 것이다.

  그밖에 몸을 닦아드리는 것, 옷을 입혀드리는 것, 각종 시중을 들어드리는 것들도 100분의 일을 갚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제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고 형제들과 교대로 간병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내 차지가 돌아오지도 않는다. 어머니가 나한테 베푸신 사랑은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100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는 것을 숫자로 계산해봄으로써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그동안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머리로만 한 사랑이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사랑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머니를 자주 찾아뵙고 가끔 용돈을 드리고 가끔 맛있는 것을 사다드리고 좋아하시는 옷이나 물건을 사다드리면 그것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으로 가기 전에도 혹시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돌아가실지도 모르니까 3박4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시켜드렸고 미국까지 초대해서 미국구경을 시켜드려 거의 1년 동안 자랑할 거리를 만들어 드렸을 때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했고 효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것들이 추상적이고 막연한 사랑일 뿐 진정 마음 속 깊이 심장을 움직이는 사랑에는 이르지 못했음을 나는 요즈음 깨닫고 있는 중이다. 어니의 기저귀를 갈아드리는 등 어머니께서 나에게 하신 똑같은 방법으로 어머니께 해드림으로써 어머니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아직도 멀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진정으로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더 일찍 사랑했어야하는 건데 너무 늦은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고백록에서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라고 너무 늦게 하느님을 사랑하게 된 것을 후회했다. 나도 늦게야 어머니를 사랑했지만 이제부터라도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라도 마음껏 온 정성을 다해서 어머니를 사랑할 것이다.

  내가 요즈음 들어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은 어머니가 나를 이제 와서 전보다 더 사랑해서도 아니고 기도를 더 많이 해서도 아니다. 내가 어머니에게 밥을 먹여드리고 기저귀를 갈아드리면서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부터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것이다.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기 전에는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 못했지만 내가 어머니를 사랑하니까 어머니의 사랑이 깨달아진 것이다. 내가 어머니의 기저귀를 갈아드리고 밥을 먹여드리는 사랑을 실천할 기회가 없었더라면 영영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 못할 뻔했다. 만일 어머니께서 건강한 몸으로 사시다가 갑자기 돌아 가셨더라면 나는 어머니를 돌보고 사랑을 할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그러면 끝내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로 어머니께서는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었고 자식들의 돌봄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어머니에게 먹여드리고 입혀드리고 씻어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드리고 밑을 닦아드리게 되어 이 모든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깨달으면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묵상했다. 하느님은 우리를 한없이 사랑하신다. 이사야서는 어미가 자식을 잊을지언정 하느님이 우리를 잊지 않는다고 표현함으로써 하느님은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리고 그 사랑을 구체적으로 증명하신 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고 당신의 살과 피를 양식으로 주심이다.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크신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가? 머리로서가 아니라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는 길은 무엇일까?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은 다음에 어머니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어머니를 사랑하고 나서 아니 어머니를 사랑하면서부터 비로소 어머니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신앙생활의 목적은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없음을 나는 알게 되었다. 어머니의 사랑을 추상적으로는 ,이론적으로는 알았지만 어머니를 사랑하기 전에는 깨닫지 못했듯이 하느님의 사랑도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깨달을 수 없음을 나는 새삼스럽게 배운 것이다.

   우리도 하느님을 사랑하면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하느님을 구체적으로 사랑하면 당신 살과 피를 주신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게 될 것이다.

                                                   (박용식 신부님의 ‘예수님 흉내내기’중에서)

 

 

                                          영화 <엄마>


  죽어도 차를 못 타는 우리 엄마(고두심 분)는 어지럼증 환자입니다. 땅끝 마을 해남에서도 차를 타고 1시간쯤 들어가야 하는 마을에 살고 있는 우리 엄마는 나를 낳은 이후로 한 번도 차를 타 본적이 없습니다. 차를 타 보기는 커녕, 지나가는 차를 보기만 해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어지럼증이 생긴답니다. 엄마는 마흔 살에 나를 낳은 이후부터 어지럼증이 생겼답니다. 그래서 둘째 오빠 제대할 때도 두 시간이나 걸리는 읍내 버스터미널까지 걸어서 마중 나가고, 큰 언니 결혼식에는 무리해서 택시를 탔다가 동네를 채 벗어나기도 전에 포기하고, 결국 혼자 집으로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28년 전부터 우리 엄마에게 차는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그럴 때마다 “나가 늘그막에 너를 낳을라고 너무 힘을 써버렸당게…”며 허허 웃습니다.

  그런 우리 엄마가 생애 첫 모험에 나선다고 합니다. 그렇게 씩씩했던 우리 엄마가 며칠째 머리를 싸매고 누웠습니다. 그것은 나흘 앞으로 다가온 내 결혼식에 꼭 와야 할 이유가 있다는데 결혼식장에 가는 방법이 막막하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엄마를 위해 배를 타고, 가마를 태우고, 열기구를 띄우고, 수면제까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보지만, 결국 엄마가 내 결혼식에 올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걸어서랍니다. 68세 늙은 엄마에게 해남 집에서 목포 결혼식장까지의 이백 리 길은 나흘을 꼬박 걸어야 당도할 수 있는 거리입니다. 결심을 단단히 한 우리 엄마, 말리는 가족들에게 이런 최후 통첩을 했습니다.

  “금지옥엽 내 새끼 시집 간다는디…사부짝 사부짝 걷다 보면 기일 안에 당도하겄제…. 그러고 막둥이 결혼식에는 나가 꼭 가야 할 이유가 있당께…..”

  처음엔 말도 안된다고 결사반대를 외치던 가족들도 엄마의 이 한마디에 결국 함께 동행하기로 했답니다. 나흘 뒤에 있을 내 결혼식에 엄마는 무사히 걸어서 도착할 수 있을까요? “엄마, 미안해… 엄마가 어떻게 험한 산을 넘으면서까지 목포까지 걸어와… 그러게 힘들게 걸어오면서까지 오겠다는 이유가 뭔지 나한테만이라도 말해주면 안돼? 엄마한테 백분의 일도 못해주는 딸 결혼식,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그런데 사력을 다해 딸의 결혼식장에 걸어오신 엄마는 안타깝게도 딸의 결혼을 흐뭇하게 바라보면서 결혼식장 혼주석에서 고요히 앉은 채로 하늘나라로 떠나십니다...)


                                  <성서묵상>


   네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부모님의 덕택임을 잊지 말아라.

  그들의 은덕을 네가 어떻게 무엇으로 갚을 수 있겠느냐? (집회 7, 28)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545 5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