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권력과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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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형 [cocoland] 쪽지 캡슐

2006-11-27 ㅣ No.2850

대부분의 고급(?)종교는 권력자의 필요에 의해 국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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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아쇼카왕(Asoka, 인도 마우리아왕조의 제3대 왕(BC3세기) 때 ....
<유교>를 사회에서 지배이념으로 정착시킨 한(漢)의 무제(武帝 BC 2세기) ....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帝 (AD4세기) ..... 이슬람교,힌두교 등도 대동소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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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교

아쇼카 왕은 마지막으로 마우리야 왕조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칼링가 왕국을
참혹하게 정복함으로써 인도 최초의 통일국가를 세웠다.
국가가 정치적 하나로 통일 되었으나, 사회나 문화 특히 종교의 통일은 어려움이 있었다.

한편 아쇼카 왕은 이 전쟁의 참혹함을 목격하고 불교에 귀의한 뒤
아시아와 멀리 유럽까지 포교에 힘써
불교가 인도를 넘어 세계종교가 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한다.

그리 할수 있었던 것은 아쇼카왕의 칙령 12호에서와 같이
... 다른종교 ... 비판하지말고 , 명예를 손상시키지말고 ... 어느 여건에서도 서로를 존경하라고 ...
... 그리해야 무지함에서 깨어나고, 서로에게 유익함?주게 된다는 내용이다.

왕이 죽고나자 그런한것은 지켜지지않았다 ...
결국 쿠샨왕조의 3대왕 카니슈카가 나타날때까지는 서로 쌈박질 끝에 예전처럼 분열되었다.
(차별주의, 우월주의, 그런 배타주의의 결말입니다.)



2. 유 교

전한(前漢)무제 즉위 이전에는,
초기엔 공신들로 제후를 삼았으나 그들의 횡포가 있었고,
여태후(呂太后)의 집정의 기간에는 왕족-유씨는 숨도 못쉬고 살아야 했고 ,
근친동족(유씨)을 봉건제후로 삼다 발생한 오초 7국(吳楚七國)의 난등 ......
왕권이 제대로 서있질 못했다.

중앙집권에 의한 전제체제의 지배를 사상면에서 뒷받침하기 위하여 한무제는
동중서의 헌책(獻策)에 따라 오경박사의 설치를 필두로 유교의 국교화 정책을 취하였다.
학문과 예(禮) 그리고 효(孝)등이 강조되었다.

유학은 황제지배 아래 국가질서의 지도이념이 되었고
유학을 통해 교양을 갖춘 자가
정치 지도자가 된다는 방침이 세워져 관료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이것은 중국 관료제 특징의 하나인 문관우위원칙을 제도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유교일변도를 지양하고 다른 사상의 장점을 수용하여
정치에 있어 기술면에서는 법가주의, 정신면에서는 유교주의를 채택하여
전체적으로 양쪽의 조화를 이상으로 삼았다.

진나라 시황제(始皇帝)의 분서갱유(焚書坑儒)에 의해 탄압되었던
학문과 사상은 한나라 때로 접어들면서 부흥하여
유가(儒家)외에도 법가(法家)·도가(道家)·음양가(陰陽家) 등
제자백가(諸者百家)의 난립시대를 맞게 되었다.
(사상의 조화가 있을때 문화의 꽃을 피우는 것 같다)



3. 기독교

기독교는 기독교의 세계화 힘을 실어주고 그래서 기독교와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콘스탄티누스帝는  일찍부터 태양신을 믿었고 유일신 숭배에 호의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또 하나의 正帝 막센티우스(콘스턴티누스의 2번째 제물이 된 로마황제)가
로마 입성 전에 교회를 박해하지 않고 보호하자 .... 콘스탄티누스도 그대로 따랐다.

측근이었던 그리스도교도들의 설득으로 ...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
동방에 많은 무리들로 성장하고 있는 그리스도교도들을 무마하는 것이
곧 제국 지배를 위하여 필요한 일임을 그는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콘스탄티누스에게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이해와 참된 개종의 실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로마 최고 신관지위를 가졌으며 전통적 제사도 지내게 하였다.

그에 상응(?)하는 답례를 카에사레아의 주교 유세비우스 등은 황제에게 바친다.
.... 그것은 그를 <신의 지상 대리인>에 상정하고 교회 발전의 방패로 삼아,
.... 그리스도교에 제황권을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 역할을 부가한 교리로써
황제에게 접근하였다.

그 아름다운(?) 마음씨를 콘스탄티누스도 받아들이고
더욱 더 많은 그리스도교도를 관직에 발탁하여
교회와 성직자를 보호하고 여러 가지 입법을 실시하였다.

324년 니케아공의회를 소집하여 아리우스주의를 배척하였고
아프리카의 드나티즘분쟁(도나투스파를 핍박)을 조정하기도 하였는데
이러한 관계는 뒷날 비잔틴교회 황제교황주의의 실마리가 되었다.

죽기 직전, 이단시되었던 아리우스파 주교에게 영세를 받았다고 전해진다.  .... 아 이 러 니 .....

(제임스강2006)

 

 

▥☞  그중에 기독교의 변질(특히, 성직자라는 인간)


"종교는 권력자(종교인과 종교인부류도 포함)에 의해 '정의'<定意(儀)>된다" 고 봅니다.

제가 요즈음 하늘을 대신(?)하여 살피고있는
신길동에 있는 신길교회( http://www.newsnjo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087 ) 뿐만 아니라 ...

한국기독교의 많은 부분 역시 ....


마치 콘스탄티누스 처럼 먹거리-터'에 온힘을 기울이며 헌신(?)하고자 하는 '먹사', 그에 권력(?)과
권력이라 말하면 그리 말할 수 있는 그 권력에 맛물려 교회를 통한 대리만족을 추구하는 자들의 욕심이
서로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천국(天國) ?? ..... 그 먹거리-터를 방불케 하는 교회 역시

로마제국의 형태와 같은 '하이락키-체제'로 ... 그것을 롤-모델로 만들어진,
'공후백자남'의 서구 하이소사이어티... 그리고 중세 가톨릭 사제 계급체제(지금도..)는 물론,
말이 봉사직이지 .... 지금의 개신교 계급체제 또한 그 속모습은 전혀동일하다.

그런곳에서 무슨 '청년예수의 외침'이 들릴까 .......
겉모습을 '훼인팅-페인팅' 하면서 그 커뮤니티에서의 쏘셜-포지션을 푯대로 삼고 사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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