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동아]MBC 드라마 「왕초」 깡패왕으로 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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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세자요한 신부 [john1004] 쪽지 캡슐

1999-05-24 ㅣ No.3

 

  

MBC 드라마 「왕초」 깡패왕으로 변질

 

MBC ‘왕초’(월화 밤9·55)가 방영중반을 넘기면서 ‘거지왕’에서 ‘깡패왕’으로 변질돼가고 있다. 방영초반 거지로 상징되는 민초들의 애환을 일제치하 독립운동세력의 투쟁과 적절히 엮어가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이정재(정준호 분)가 ‘발가락’(허준호)과 함께 세력을 불려가고 신의주를 주름잡던 '시라소니' (차룡)가 이에 합류, 광복 후 서울 폭력계의 ‘진용’을 갖춘 드라마는 지난주 또다른 폭력배 상하이 박(나한일)을 가세시켰다.

 

지난 주는 상하이 박이 갖고 있던 아편가방을 김춘삼 패거리가 훔치고 다시 발가락의 부하가 훔치면서 범 이정재파와 김춘삼파의 대결구도로 이어졌다.

 

그러다보니 그간 빠른 전개를 과시하던 드라마는 아편을 뺏고 뺏기는 과정만으로 2회 분량을 넘겼다. 고문 폭력 등 역겨운 장면으로 1회가 가득찼다. “김춘삼을 다뤘지만 이름만 따왔을 뿐이지 내용은 창작”(장용우PD)이라는 것이 애초 연출의 변이었지만 “당시 폭력배들은 아편을 놓고 ‘전쟁’을 벌이지는 않았다”는 것이 실제인물 김춘삼씨(75)의 시청소감. 90년대말 폭력배들에게나 있을 법한 상황으로 40, 50년대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극중 김춘삼도 거지들의 대변자에서 “우리 애들 굶어 죽어”만을 외치는 또하나의 보스로 자리잡고 있다. 비록 “공산당 때려잡자”는 김두한의 회유에 “15살짜리 여공 때려잡는 것이 민주주의냐”는 유의 대사를 간간이 끼워넣지만 방영초반 인간적 고뇌의 그림자는 점차 빛을 잃어가고 있다.

 

‘왕초’의 이러한 구도는 방영초반 액션신을 지휘하던 무술감독 정두홍이 미국유학으로 빠지면서 부족해진 액션신을 메우기 위한 시도일 수 있다. 방영초반 독립투사로 나와 드라마의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담당하던 ‘김빠’(김상경)가 기층세력에 합류, 역할이 축소되면서 생긴 ‘빈칸 메우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당초 MBC측은 “어려움 속에서도 인간미와 패기를 잃지 않았던 우리의 당당했던 옛모습을 통해 경제환란으로 고통받고 있는 오늘을 되돌아보도록 하겠다”고 기획의도를 밝혔었다. 기대이상의 시청률(30%안팎)을 올렸으니 이제 다시 ‘초심’을 생각할 때도 됐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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