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토)
(백) 부활 제7주간 토요일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그의 증언은 참되다.

만평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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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은정 [up9080] 쪽지 캡슐

2006-02-20 ㅣ No.170

만평과 고양이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1면 머리기사 자리에 만평을 싣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자리에 20년 넘게 만평을 그려 온 시사만화가 장 플랑튀는 거침없는 풍자와 날 선 유머로 또한 악명이 높다. 대통령 연설을 생중계하는 TV방송에 출연해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여인 마리안과 성관계를 맺는 만평을 즉석에서 그려 보였을 정도다. 만화에서 시라크 혼자 열을 올리고 있을 뿐 마리안은 졸고 있는데 자기 변명만 늘어놓는 대통령의 말을 국민이 외면한다는 풍자였다.

그의 신랄함은 19세기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한테 물려받은 것이다. 도미에는 '만평의 아버지'라 불리는 인물이다. 서점에서 일하며 석판화를 배운 그는 1830년 만화잡지 '라 카리카튀르'의 창간과 함께 정치 풍자와 서민 풍속을 담은 만화들을 선보인다. 국왕 루이 필리프를 조롱하는 만평으로 6개월간 옥살이를 했지만 그것도 날카로운 그의 필봉을 꺾지 못했다. 문맹률이 높아 신문.잡지가 귀족들만의 오락물이던 시절, 도미에의 만평은 서민들을 울리고 웃기는 생활 비타민이었다.

만화에 말 풍선이 처음 들어간 것은 19세기 말 미국에서였다. 뉴욕 하층민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던 만화가 리처드 아웃콜트가 '옐로키드'란 작품에서 어린 아이가 말하고 생각하는 내용을 자루 모양의 노란색 옷에 적어 넣었다.

한 컷짜리 이 만평은 조셉 퓰리처 소유 일간지 '월드'에 실리다 랜돌프 허스트가 '뉴욕모닝저널'로 스카우트했고 월드가 다시 끌어가는 등 인기가 대단했다. 양대 언론 가문의 이러한 신경전 속에 탄생한 것이 바로 선정주의 언론을 일컫는 '옐로저널리즘'이란 말이다.

만평은 인기가 있는 만큼 수난도 많이 겪는다. 마호메트를 풍자한 덴마크 신문 때문에 유럽 언론들이 난리굿을 벌이더니 4대 성인을 희화화한 만평의 러시아 일간지는 다음날로 폐간돼 버렸다.

딱한 일이다. 종교가 만평의 성역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으면 그만이다. 덴마크 신문의 잘못은 마호메트를 다룬 것이 아니라 그 전에 예수 풍자 만평은 게재를 거부했던 편파적 불균형이다. 플랑튀의 만평이 사랑을 받는 것도 르몽드에조차 조롱의 비수를 던진 적이 있는 균형 감각 때문이다.

19세기 프랑스 작가 샹플뢰리는 "만평은 평소 고양이처럼 잠들었다가 아주 작은 동요에도 그 푸른 눈을 번쩍 뜬다"고 말했다. 어느 특정한 방향의 기척에만 눈을 뜨는 고양이는 좋은 고양이가 아니다.

 

출처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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