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수직적 관계의 깊이와 수평적 관계의 깊이

스크랩 인쇄

김리원 [silver0824] 쪽지 캡슐

2017-06-11 ㅣ No.112555




2017년 가해 삼위일체 대축일
 
<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


복음: 요한 3,16-18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한 번은 알지 못하는 신자분이 만나보겠다고 해서 오시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은 아니고 카톡에 도는 제 강론을 읽고 큰 힘을 받아 감사하고 싶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전 그분을 위해 강론을 쓴 것이 아니었음에도 저에게 큰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감사의 깊이는 관계의 깊이와 비례합니다. 내가 감사하는 사람이 나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과 깊은 관계가 될 수도 있구나!’

그렇습니다. 함께 사는 부부라고 할지라도 서로 감사하지 못하면 깊은 관계로 사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역시 자주 만난다고 관계가 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래 만나왔던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필요할 때 전화 한 통 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죽기 직전에야 자신이 평생을 바쳐 이루어온 관계들이 종잇장처럼 매우 가벼운 것이었음을 깨닫고 허탈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연히 만난 어떤 사람이 지금까지의 모든 관계보다도 더 깊고 편한 느낌을 줄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맺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관계들 안에서 실패하지 않는 법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후회 없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떤 것을 조심해야할까요?

결론은 사람들은 평등한 수평적 관계를 맺기 때문에 관계가 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관계는 평등해야합니다. 그러나 평등한 관계는 힘이 부족합니다. 오히려 수직적인 관계가 그 관계에 힘이 있고 깊이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서서 서로 손을 잡고 있다면 언제고 그 손을 놓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낭떠러지에 떨어지려 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다면 두 사람은 서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군대의 상하관계가 가장 깊은 관계냐고 물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그 관계는 억지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 맺어진 수직적인 관계가 다른 어떤 관계보다 그 깊이를 더하는데 가장 좋은 예는 바로 스승과 제자 간의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는 어떤 부부관계보다 깊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아내들과 자녀들을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녀가 그분을 선생님(라뽀니!)”라고 불렀던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깊은 관계를 말하고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서편제는 우리나라 최초 백만 관객을 모아 작품성과 흥행을 모두 챙겼던 영화사에 획을 긋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누구보다 큰 역할을 했던 주연은 딸의 역을 했던 오정해씨입니다. 그녀는 18살에 아버지에 의해 눈을 멀고 한을 담은 목소리를 낸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녀가 강심장이란 프로그램에 나와 고인이 되신 그녀의 스승 명창 김소희 선생에 대해 말한 적이 있습니다. 칠순이 훨씬 넘어 받아들인 마지막 제자 오정해는 중학교 때부터 스승과 함께 기거하며 소리를 배웠습니다. 스승은 매우 엄했습니다. 자신에게 야단을 맞고 나가서는 절대 욕먹지 말라는 뜻에서였습니다. 그분은 이미 쉬어버린 음식을 먼저 드셨고 아이였던 제자 오정해에게도 먹게 했습니다. 소리를 하다보면 많은 곳을 다녀야하고 그래서 음식 때문에 배가 탈이 날 수도 있는데 그것에 대한 대비였던 것입니다. 오정해씨는 쉰 음식을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손수 빨래를 해야 했는데 얼음물에 청바지를 빨아 꼭 짜서 널어야 할 때가 제일 싫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충 짜서 빨랫줄에 널면 다시 물속으로 집어 던져서 끝에서부터 꼭꼭 짜서 널어야 했던 것입니다. 시간 엄수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정해가 처음으로 판소리 대회에 참가해야 했을 때는 가난해서 입을 한복도 부채도 장만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김소희 선생은 자신이 입던 저고리를 손수 줄여주고 자신의 부채를 주어 참가하게 하였고 당당히 1등을 하였습니다. 그때 등을 쓰다듬으며 잘했다!”고 처음으로 칭찬을 해 주셨다고 합니다. 잘했다는 말이 지금까지도 계속 들려서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분께 칭찬을 받기위해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의 마지막 제자가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을 그렇게도 바랐기에 오정해씨는 공부를 마치고 교수가 되었고 그 모든 것이 스승의 덕이라고 울며 스승을 회고하였습니다.

계속 울먹이며 스승을 회고하는 오정해씨를 보며 많은 이들이 따라서 눈물을 훔쳤습니다. 죽음도 끊을 수 없는 매우 깊은 관계. 이미 돌아가셨지만 여전히 영향을 주는 관계. 이것이 수직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인데 교회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는 이 유명한 구절로 삼위일체에 대해 묵상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 관계의 가장 좋은 모델은 역시 남녀의 관계입니다. 하느님인 남자이시고 성자는 여자이시며 성령은 그 둘 사이를 오가는 사랑의 표현, 혹은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헨리 단편 소설의 크리스마스 선물에서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를 위해 빗을 사오고 아내는 머리카락을 팔아 남편 시곗줄을 사 옵니다. 이 선물이 없으면 둘의 관계는 지속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물은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만약 선물을 주었는데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상대는 자신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갖는데 그 이유는 선물 안에 자신의 존재를 넣어서 전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사랑 자체이시기 때문에 선물로 당신 자신을 온전히 상대에게 내어주는데 그 선물은 그래서 생명이라 할 수 있고, 피라 할 수 있고, 신성이라 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서로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다면, 그 모든 것인 성령은 두 분 하느님과 같은 하느님이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버지께서 인간에게 선물로 당신 아드님을 내어주십니다. 아드님을 통해 구원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아드님은 인간이 지켜야 할 법입니다. 그래서 제1독서에서 십계명 판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십계명 판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이 만약 그분을 받아들일 마음이 있다면 그 속에 그의 법을 새겨 그분과 하나가 됨으로써 인간의 본성을 넘어 신성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께서 스승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주시는 법을 받아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가르침, 즉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시어 우리가 그의 삶을 본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 스승님이 되어 우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세상의 스승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마태 28,19)

스승은 법, 즉 가르침을 품고 있어야합니다. 그리스도를 품고 그 그리스도를 전해주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주고 있다면 그 스승은 그 영원한 진리를 받아들인 이와 매우 깊은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저 만나서 이야기하고 술만 마신다고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더 그리스도의 진리를 품고 있다가 그것을 전해주어 수직적인 관계가 되어야합니다. 만약 어떤 아이에게 하느님의 진리를 알려주었고 그가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그는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영원히 그 복음을 전해준 사람에게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복음의 제자들을 만들어야합니다. 우리가 길이 남을 관계를 맺고 싶다면 우리가 가진 생명의 진리를 전해주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상승욕구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만큼 사람을 유익하게 만들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이들이 가장 깊은 관계를 만들어 외로울 수 없는 것이 이 이유입니다.

우리는 이태석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그분이 가르쳤던 이들이 무덤에 손을 얹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이 진리를 전해주지 않으셨다면 그 깊은 관계들을 맺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관계가 재산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생명보다 아끼는 진리를 전해주십시오. 삼위일체의 심오한 관계를 이 세상에서부터 맺으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삼위일체 관계는 수직적이어서 깊고 강할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6,997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