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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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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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8-05-09 ㅣ No.120349

 


2018년 5월 9일

부활 제6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 17,15.22─18,1

그 무렵

15 바오로를 안내하던 이들은

그를 아테네까지 인도하고 나서,

자기에게 되도록 빨리 오라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에게 전하라는

그의 지시를 받고 돌아왔다.

22 바오로는 아레오파고스

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모든 면에서 대단한

종교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23 내가 돌아다니며 여러분의

예배소들을 살펴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도 보았습니다.

여러분이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그 대상을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려고 합니다.

24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하느님은

하늘과 땅의 주님으로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신전에는

살지 않으십니다.

25 또 무엇이 부족하기라도

한 것처럼 사람들의 손으로

섬김을 받지도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오히려 모든 이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26 그분께서는 또 한 사람에게서

온 인류를 만드시어 온 땅 위에

살게 하시고, 일정한 절기와

거주지의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27 이는 사람들이 하느님을

찾게 하려는 것입니다.

더듬거리다가 그분을

찾아낼 수도 있습니다.

사실 그분께서는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28 여러분의 시인 가운데

몇 사람이

‘우리도 그분의 자녀다.’

하고 말하였듯이,

우리는 그분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존재합니다.

29 이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이므로,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됩니다.

 30 하느님께서 무지의 시대에는

그냥 보아 넘겨 주셨지만,

이제는 어디에 있든

모두 회개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명령하십니다.

31 그분께서 당신이 정하신

한 사람을 통하여 세상을

의롭게 심판하실 날을

지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리시어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증명해 주셨습니다.”
32 죽은 이들의 부활에

관하여 듣고서,

어떤 이들은 비웃고

어떤 이들은 “그 점에

관해서는 다음에 다시 듣겠소.”

하고 말하였다.

33 이렇게 하여 바오로는

그들이 모인 곳에서 나왔다.
34 그때에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

 그들 가운데에는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가 있고,

다마리스라는 여자와 그 밖에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18,1 그 뒤에 바오로는

아테네를 떠나 코린토로 갔다.

복음 요한 16,12-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13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14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사랑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조안 다빌라는 이성과 건강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내가 나를 알고

나를 좋아한다.

둘째, 내가 상대방을 알고

상대방을 좋아한다.

셋째, 상대방도

나를 알고 나를 좋아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참으로

실천하기 힘든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먼저 자신을 좋아해야 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없어지면

그 어떤 것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없습니다.

싫은 내 모습을 상대방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상대방을 좋아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

좋아하는 감정을 갖기 힘듭니다.

좋아하는 친구를 떠올려 보십시오.

그 친구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좋아하는

감정도 갖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단계를 거치고 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도 나를 알고

 나를 좋아하게 됩니다.
이러한 대인관계는 주님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주님을 좋아할 수 있을까요?

주님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주님을 좋아하면서 굳은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따라서 내 자신을 먼저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내 자신이 가지고 있지 못한 것에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

 패배감을 갖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을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이 성령은 진리의 영으로

우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불평과 불만 속에서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삶이 아닌,

감사와 기쁨 안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부정적인 마음으로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주님을 알려고 노력하지

않으면서 주님도 싫어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사랑으로 이 세상 안에서

살고 있는 내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

긍정적인 마음을 키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미사, 기도, 성경이나

영적독서 등을 통해 주님을

알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랑을 통해 우리는 보다 더

앞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을 간직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또한 사랑을

받아들일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사랑의 힘을 바로

성령을 통해서 얻게 됩니다

누구도 자신이

받은 것으로 인해

존경받지 않는다.

 존경은 자신이

베푼 것에 대한 보답이다.

(캘빈 쿨리지)

조세프 베누아 쉬베-성 바오로의 설교.

"낯익은 얼굴"

어느 엄격한 교수님께서

학기 마지막 수업에서 자신에게

서명을 받은 학생만 학점을

주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직접 한 명씩 얼굴을 보면서

수업에 충실했는지를

확인하겠다는 것이었지요.

수업에 한 번도 출석한 적이 없는

학생을 본 교수님께서는

“자네는 내가 강의시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라고 말씀하시면서 서명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서명을 받지 못한 이 학생은

머뭇거리다가 다시 줄의

맨 뒤에 섰습니다.

 그리고 다시 차례가 되었을 때

교수님께서는

 “음, 낯익은 얼굴이군. 좋아.”

라고 말씀하신 뒤에 서

명을 해주셨습니다.
만약에 이 학생이 서명을

받지 못했다고 그냥 돌아갔으면

학점을 받을 수 없었겠지요.

그러나 다시 줄을 섰기에

 교수님의 착각(?)을 일으켜서

점을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물건이 가장 많이

팔릴 때는 같은 손님에게

4번 권할 때라고 합니다.

그만큼 안 된다고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안 된다고 물러나면

 그대로 끝이 나고 말지만,

다시 한 번 힘을 쓰게 되면

가능성과 기회는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됩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다시 한 번 용기와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와

주님께서도 함께 하십니다.

인천의 마전동성당.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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