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유신이 선포됐던 1972년 고교 수험생들은 허탈과 혼돈에 빠졌다. 얼마 남지 않은 대학입시를 앞두고 기존에 배우고 익혔던 헌법을 머리에서 지워버리고 바뀐 헌법 조문을 새롭게 학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천부인권과 권력 분립을 민주주의의 근본으로 알았던 학생들은 어느 날 갑자기 그것이 비효율적이며 시대착 오적인 낡은 사상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내키지 않는 ‘거짓 답안’을 작성해야 하는 현실에 무력감과 자괴감을 느껴야만 했다.

사회과목을 담당했던 선생님은 강의 도중에 종종 긴 한숨을 내쉬곤 했다. 그때까지 견지해 왔던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명분도 논리도 없는 ‘전도된 가치’를 학생들에게 억지로라도 주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율배반의 현실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유신 헌법은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모두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시킨 무소불위의 일인 독재체제였다. 대통령은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추천했고 법관의 임명권을 가졌으며 스스로 대통령을 뽑는 통일주체국민회의의 의장이 되었다. 대통령의 임기는 4년에서 6년으로 늘었고 국회의 회기는 축소됐으며 국회의 국정감사와 지방의회는 폐지됐다.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  
 
이 헌법의 출범을 위해 전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국회는 해산됐으며 정당과 정치활동은 중지됐다. 유신에 대한 일체의 반대 의견이나 행동은 금지됐다. 그해 11월 21일 폭압적 분위기에서 유신헌법은 91.9%의 투표율에 91.5%의 찬성률로 통과됐다.

아직도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아무리 폭압적 분위기가 국민을 짓눌렀다 하더라도 민주주의의 이념을 정면으로 부정한 헌법안이 90%가 넘는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다. ‘국민’ 앞에 ‘위대한’이라는 섬김의 수식어를 습관적으로 달고 다니는 정치인들의 말대로라면 유신은 ‘위대한 국민의 선택’이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일상의 믿음대로라면 유신은 ‘정의로운 것’이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국민의 선택’이 집단적 광기로 나타나 ‘정의의 승리’와 함께 조롱받았던 역사는 종종 있었다. 가까이는 쿠데타로 국민의 주권을 찬탈하고 광주를 피로 물들였던 신군부의 전두환이 7년 단임의 대통령 간선제로 헌법을 개정하고 당당히 대통령이 되어 ‘정의사회 구현’을 역설하게 된 것도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절대적 선택’이었다.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나치에 대한 독일국민들의 맹신과 충성의 역사도 집단 광기의 한 모습이다. 그러기에 아무데나 ‘국민’을 갖다 붙여 善으로 위장하고 자신들의 치부를 가리기 위한 방패막이로 이용하는 정치인들의 입버릇은 낯간지러운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16세기 프랑스의 모럴리스트 라 보에시(la Boetie)는 ‘국민의 자발적 예종(隸從)’에서 독재가 발아한다고 지적했다. 라 보에시는 다수의 국민이 독재자에 유린당하는 것은 기마대나 보병대나 무기 때문이 아니며 독재를 지탱해주는 것은 독재자에게 신임을 받고 그의 귀에 의견을 속삭이고 그의 쾌락의 친구가 되고 그의 열락의 거간꾼이 되는 5~6명의 공범자라고 했다. 이 몇 명의 공범자가 그들 밑에서 이익을 보는 수백 명을 거느리고, 이 수백 명이 또한 그들 밑에 등용한 수천 명을 거느리고, 마침내 그것은 수십만 수백만의 사람들을 엮어 독재자와 공범의 연을 맺게 하는 것이다.

40여 년 전, 온 국민을 노예화 했던 유신을 회고하며 오늘의 현실을 직시할 때 참담한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부르짖는 정치인, “차라리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고백하는 교육자, “한국은 독재를 해야 돼. 하나님이 독재 하셨어”라며 열변을 토하는 종교인이 노골적으로 유신과 독재자에 대한 찬양과 숭배의 언사를 쏟아내도 대다수 국민은 별무반응이다. 라 보에시가 우려했던 ‘자발적 예종’의 싹은 불의에 분노하지 않는 이러한 토양 속에서 자란다. 권부 주변에서 유신을 찬양하고 옹호했던 족벌신문, 정권에 포획된 방송, 기회주의적 지식인과 종교인 등 언론과 극소수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독재의 숙주가 되어 다수의 민중들까지도 독재에 중독되게 한다.

친일세력과 유신독재의 후예들로 짜여진 박근혜 정권은 ‘찍어내기 인사’로 지난 대선의 선거범죄를 은폐하고 종북사냥으로 야권의 입을 틀어막았으며 법의 울타리를 악용하여 공무원과 교사들을 길들임으로써 저항의 싹을 자르려한다. 일제강점기를 근대화로 포장하고 독재와 쿠데타를 미화하는 등 그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감춤으로써 미래세대에 대한 새로운 판짜기를 도모했다. 급기야 ‘정당 해산’이라는 민주주의 파괴행위마저 시도했다.

박근혜 정권의 이러한 일련의 행태는 국민의 눈에 과도하고 무리하게 보이더라도 뚫고 지나가자는 철저하게 계산된 책략이다. 그것은 단기적으로는 발등에 떨어진 대선 관권부정선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술수이며 장기적으로는 언론과의 강철 동맹으로 여론을 지배하고 역사교육을 통해 미래 세대를 훈육함으로써 영구집권을 꾀하려는 시대역행적 폭거이다. 박근혜 정권은 출범 1년도 되지 않아 기대난망의 권력이 되었고 타도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개별화된 다수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고 있고 국민의 구심이 되어 독재의 부활을 선봉에서 막아야 할 민주당은 작은 정치적 이익에 좌고우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관권부정선거로 자신들의 표를 도둑맞은 상황에서도 “대선불복이냐”는 으름장 한 마디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겁쟁이가 되었다. 민주당은 이미 확보한 127석의 자산을 잃을까 두렵고 내년 지자체 선거가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이런 야당의 미지근한 대응과 국민의 침묵이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은 독재에 길들어져 가고 있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야성을 상실한 민주당의 모습은 독재가 착근하도록 물을 뿌리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