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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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장 임기가 10년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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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1-09 ㅣ No.737

워싱턴에 가을이 짙게 깔렸다. 나뒹구는 낙엽에서 소멸만을 본다면 허무해진다. 하지만 이듬해 봄의 생명을 낙엽에서 미리 볼 수 있다면 허무는 기대로 바뀐다.

 지난주 워싱턴 중심가의 FBI(연방수사국) 본부에선 12년 만에 국장 취임식이 열렸다. 2001년 취임한 로버트 뮬러가 물러나고 제임스 코미가 취임하는 행사였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2년 만의 FBI 국장 취임식에 참석한 대통령이 됐다. 취임식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보기관이 동네북 신세가 되곤 하는 한국에선 보기 힘든 장면들이 연출됐다. 오바마 대통령은 본부 직원 3000여 명 앞에서 FBI의 기를 살려주려 애썼다.

  “여러분은 미국을 보호하는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팡파르도 없고, 스포트라이트도 없지만 당신들의 애국심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연방정부 재정적자로 여러분에게 배당되는 예산이 줄고 있다. 그렇더라도 이 도시의 정치로 인해 여러분의 일이 오염되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수사에 불과할지라도 대통령이 정보기관의 탈정치를 당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신선했다.

  1908년 법무부 검찰국으로 시작된 FBI에도 어두운 역사는 있었다. 존 에드거 후버 국장 시절이 대표적이다. 그는 1992년 29세 때 국장 대행으로 시작해 72년 사망할 때까지 무려 48년간 FBI를 이끌었다. 갈아치운(?) 대통령만 8명이다. 고인 물이 썩듯이 후버의 FBI도 예외가 아니었다. 반공주의자인 후버는 헬렌 켈러, 마틴 루서 킹 목사 등을 공산주의자로 의심해 불법 도청을 일삼고 탄압했다. 후버가 죽고 나서야 미국 사회는 깨어났다. 의회는 국장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했다. 아주 특별한 경우 연장하려면 의회 동의를 거치도록 했다.

 취임식에서 제임스 코미 신임 국장은 이 부끄러운 역사를 끄집어냈다. 직원들에게 “여기 워싱턴의 마틴 루서 킹 목사 기념관을 의무적으로 방문하라”고 지시했다. 낙엽을 이듬해 봄의 생명으로까지 끌고 가려는 미국의 지혜는 이처럼 반성에서 시작한다.

  국가정보원(국정원)을 둘러싸고 1년이 넘도록 논쟁이 난무하고 있다. 잡음만 무성한 논쟁은 소비적이다. 이젠 논쟁의 본질로 돌아가야 할 때다. 105년 역사의 FBI는 국장 역임자가 18명이다. 1961년 김종필의 중앙정보부에서 시작해 역사 52년인 국정원의 장은 무려 31명이다. 평균 임기가 2년도 안 된다. 이러고도 음지·양지를 강조하고, 탈정치를 운운하는 자체가 모순이다.

 

정보기관을 이젠 정권의 손에서 놓아줘야 한다. 그 안에도 애국심을 품고 땀 흘리는 우리의 아들딸이 있다. 이들에게 음습한 곳에서 댓글을 달게 한 건 누군가. 한국도 이젠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이 여당 되는 세상이다. FBI는 너무 오래해 부패했다지만 우리는 반대로 접근해야 한다. 국정원장 임기를 10년으로 못 박는다면 5년마다 바뀌는 정권만을 바라보고 일하겠는가. 정치가 더 이상 공해(公害)가 돼선 안 된다.

joongang.joins.com박승희 워싱턴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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