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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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절뚝거리는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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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8-06-12 ㅣ No.121100

 




2018년 나해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절뚝거리는 신앙>



복음:마태오 5, 17-19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1661)


 

 

    

스타 부부쇼 자기야에 출현하였던 양원경 박현정 부부는 결국 둘의 사이를 좁히지 못하고 이혼하게 됩니다. TV에 비춰지는 것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아내 박현정 씨는 착하고 어진 아내로 비춰지는 반면, 양원경 씨는 그저 나쁜 남편으로 군림하는 면모를 보였습니다. 아내가 대화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어도 남편은 자신에게서 나오지 못하고 아내의 눈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다가서지 않으려합니다. 부부간의 진솔한 대화를 하는 장면에서는 매일 부부싸움을 하던 가정에서 자라난 아내와 가난하게만 자라와 돈에 찌들어 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싫었는데 아내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남편의 진솔한 고백에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딸이 방송국으로 직접 보냈다는 편지에서 부모님이 싸우는 게 너무 싫고 괴롭다.”는 내용을 들으며 둘이 통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상황극을 할 때 양원경 씨가 자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아내가 손을 내밀며 울고 있고 남편은 자아라고 하는 두 여자가 서로 맞잡아서 자신을 감싸고 있는 팔을 끊고 나가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양원경 씨는 결국 가녀린 두 여자가 감싸고 있는 팔도 끊지 못했습니다.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너무 많아서 자기를 지금까지 지켜주었던 자존심을 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내에게 가고 싶다고 하면서도 자아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가가지 못하고, 아버지를 용서하라고 해도 결국 용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변하고 싶지 않으니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말은 죄를 짓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도 계속 죄에 빠지는 것은 그것에서 변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관계가 끊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만약 그 관계가 하느님과의 관계라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엘리야 예언자와 450명의 바알 예언자 사이의 싸움이 벌어집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언제까지 하느님과 바알 사이에서 절뚝거릴 것이냐며 잘 보고 결단을 내리라고 권합니다. 절뚝거린다는 뜻은 말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신앙을 말합니다. 십일조를 내야 하는 줄 알면서도 결국은 내지 못하는 것을 말하고, 미워하지 않아야 함을 알면서도 또 미워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우상숭배라 부릅니다. 진짜 우상은 자기 자신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아니면 자아를 섬기는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제단에 소로 상징되는 자아를 불살라야 하는데 바알의 예언자들은 그것들을 불사르지 못합니다. 그러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성령의 불이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450’이라는 바알 예언자들의 숫자를 굳이 풀이하자면 4-5-10이란 숫자로 이루어져있는데, ‘4’는 인간을 의미하고, ‘5’는 오감이나 자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10’은 율법을 말합니다. 사람이 자아를 버리지 못하고 율법을 지키려한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절름발이식 신앙입니다. 변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하려고 하는데 잘 안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아를 완전히 죽이지 않으면 내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형태, 4-10, ‘사순(40)’이 완성되지 못합니다. 사순을 거치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절름발이식 신자입니다. 육체의 욕망을 상징하고 뱀인 자아를 상징하는 ‘5’를 버리지 않으려는 신앙 안에서는 영원히 그 신앙이 절뚝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불이 내 자아를 사르게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습관을 들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사람이라면 40일을 두고 금주의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중도에 술을 마시고 실패했다고 해서 다시 40일을 처음부터 시작할 필요는 없습니다. 40일의 기간 동은 3번을 실패했다면 다음엔 2번을 실패하게 되면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그렇게 40일을 안 마시고 버틸 수 있게 되었다면 이제 3년에 도전해야 합니다. 3년은 덕을 만드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40일 광야에서 기도하시고 3년 공생활을 하셨습니다. 이 말은 40일 기도하며 이긴 자아를 3년 동안 이끌어갈 수 있다면 하늘나라 갈 수 있는 준비가 된 것이란 뜻일 것입니다.

자신을 이기기 위한 이런 노력들을 하고 있지 않으면서,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 그건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자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변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이미 변하고 있어야합니다. 성령은 변하려는 사람에게 내려와 그 버리려는 자아를 제물로 삼아 우리 안에서 훨훨 타오르십니다. 그러니 성령은 우리 자아가 버려지는 만큼 우리 안에서 강하게 활동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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