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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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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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20-06-01 ㅣ No.138647



2020.6.1.월요일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창세3,9-15.20 요한19,25-34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오늘은 6월 예수성심성월 첫날이자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원래 6월1일은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미사를 봉헌하지만 2018년 부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뜻에 따라 성령 강림 대축일 다음날 월요일은 “사목자, 수도자, 신자들 안에 교회의 모성애와 진정한 마리아 신심의 성장을 증진하기 위하여”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교회의 어머니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입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닮아갈수록 교회는 더욱 모성적이 됨으로 비로소 어머니인 교회가 되어 갑니다. 어머니없는 집안은 얼마나 썰렁한지요. 가톨릭 교회가, 수도원이 어머니 품같이 아늑하고 푸근하게 느껴지는 것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을 닮아 모성애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신자들이 바로 교회입니다. 착한 신자들을 통해서도 교회의 어머니인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빛나는 모성애를 느낍니다. 매월 1회 수도원은 성전 안에 있는 봉헌함을 열어 수도형제들이 함께 모인 휴게실 안에서 봉헌금을 헤아립니다. 수도원의 생계에 큰 보탬이 되는 봉헌함의 봉헌금입니다. 그동안 코로나 사태로 몇 달 만에 처음으로 봉헌함을 여는 것입니다.

 

“아, 이게 교회의 가난한 모습이구나!”

 

수도형제들이 많아 보이지 않는 봉헌금을 헤아리는 장면에서 순간 수도공동체의 거룩한 가난, 자랑스런 가난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대부분 신자들이 할 수 있는 한 정성을 다해 봉헌금을 바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 봉헌금 두 봉투에 소박한 글귀에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꼈습니다.

 

“평화를 빕니다. 다음엔 두둑히 넣을게요.”

“잘 쉬고 갑니다. 그리고 피정비가 적어서 죄송합니다.”

 

바로 이 마음이 교회를, 수도원을 아끼는 어머니의 마음입니다. 교회인 신자들의 마음은 그대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어머니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신자들이 얼마나 사랑하는 여기 요셉수도원인지요! 그대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어머니의 참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수도원이요 교회임을 깨닫습니다. 또 가톨릭 신자들이 대부분 착하고 인내심 깊은 것은 바로 교회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를 닮았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이런 신자들에 대한 고마움이 더욱 성모님을 닮아 날로 모성애 깊어지는 수도원이 되게 합니다. 사실 많은 분들이 어머니의 품을 찾듯이 고향집 같은 수도원을 찾습니다. 마땅히 수도원은, 교회는 이래야 할 것입니다. 2018년 처음 이 축일을 지낼 때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강론은 지금 읽어도 참 좋은 깨우침이 됩니다.

 

“복음 안에서 마리아는 항상 ‘부인’이나 ‘요셉의 미망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로 불렸습니다. 잉태 예고 장면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성경의 모든 부분은 마리아의 모성애를 강조합니다. 교회는 우선 교회를 뜻하는 단어인 교회나 신부가 여성형이기에 여성적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출산하는 어머니입니다. 

 

교회는 신부이자 어머니입니다. 교회의 여성적인 차원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성적인 차원이 없을 때 교회는 정체성을 잃게 되고 단순히 하나의 자선단체나 친목회, 축구팀같은 무엇이 되고 맙니다. 여성적인 교회만이 풍요의 태도를 지닐 수 있습니다. 

 

이런 여성적인 차원을 망각할 때 남성적인 교회가 되고, 슬프게도 사랑도 할 수 없고 출산도 할 수 없는 외로움 속에서 살아가는 노총각들의 교회가 되고 맙니다. 교회는 여성없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합니다. 교회는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여성의 태도는 마리아에게서 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원하셨습니다. 온유함과 겸손은 어머니의 강한 자질입니다. 교회는 사랑의 길을 걸어가는 어머니입니다. 침묵할 줄 알고, 연민 가득한 눈길로, 조용하게 어루만져 주는, 수많은 지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압니다. 또한 사랑이 넘치며, 웃음을 머금고, 따뜻한 애정과 부드러운 온유의 사람으로서 어머니의 길을 걸어가는 교회입니다.”

 

내용이 좋아서 많이 인용했습니다. 날로 노화되어 불임不任의 노총각같은 교회는 아닌지 살펴보게 합니다. 오늘 복음의 장면도 인상적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 아래 한쪽에 성모 마리아가 계시고 한쪽에 애제자 요한이 있으며 바로 교회를 상징하는 장면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요 교회의 어머니인 성모님과 신자들을 상징하는 애제자 요한입니다. 예수님 친히 말씀하십니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비단 애제자 요한뿐 아니라 믿는 이들 모두가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의 아들 딸이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여기가 믿는 이들 우리 모두의 삶의 자리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그때부터 그 제자는 마리아 어머니를 집에 모셨다 합니다. 비단 애제자 요한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어머니, 바로 교회의 어머니가 되시는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목마르다.”, “다 이루어졌다.” 아드님의 죽음을 그대로 목격하신 피에타의 성모님 모습이야 말로 아들 예수님과 같이 케노시스, 비움의 절정에 도달했음을 봅니다. 그대로 하느님의 사랑에 까지 이른 연민 가득한 어머니 성모님을 우리 교회의 어머니로 모시고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자비로운 사랑도 마리아 어머님의 모성애를 닮았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창세기의 참으로 미숙했던 하와의 실패를 결정적으로 만회한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창세기 마지막 말마디는 성모 마리아를 통해 온전히 실현되었음을 깨닫습니다.

 

‘사람은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하였다. 그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의 어머니이심은 물론 진짜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어머니가 되신 성모 마리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부터는 5월 성모성월에 이은 6월 예수성심성월의 시작입니다. 마음의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성심의 사랑도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로부터 유래됨을 봅니다. 감사송의 고백처럼, 나그넷길을 걷는 우리 교회를 어머니의 사랑으로 보살피시어, 천상 고향으로 들어가도록 자비로이 지켜 주시는 우리 교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이십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닮아 모성애 풍부한 온유하고 겸손한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주님을 낳으신 행복한 동정녀, 복되신 교회의 어머니,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영으로 우리를 길러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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