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모이세의 아,바,행(도보성지순례기 여사울에서 덕산까지 ) 두번째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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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수 [pgsmoses] 쪽지 캡슐

2007-08-27 ㅣ No.497

 

모이세의 도보 성지 순례 두 번째 여정(여사울에서 덕산까지)


성모승천 대축일날  두 번째 도보 순례 여정은 여사울-대전리 무명순교자 묘-신리 성지-

거더리 성지- 베나드리-덕산성당까지이다.


순례하기  며칠 전부터 성지 중심의 순교자의 삶을 찾아보았다.

초기 교회 공동체를 형성한 여사울과 박해시대의 후기에 순교사를 쓰고 지하 공동체를

오랜 세월동안 간직한 신리성지와 그리고 많은 교우들이 덕산 관아로 붙잡혀서 끌여가던

 길이다.


순교자들의 피와 숨결을 체험하고 묵상할 수 있는 여정이다.


사과 과수원에 붉게 익어 가는 사과를 보면서 아담과 하와처럼 따먹고 싶은 유혹이 들었다.

아담과 하와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 꾹꾹 참는데 힘들었다.

 

06:30 모산 집에서 출발 (승용차로 이동)

07:00 여사울 도착(  성지 산책 후 데레사는 차를 회수하여 돌아감)

07:05 생가 터 뒤 동산에서 내포지역를 바라보면서

   * 아침기도

   * 이존창 순교자의 삶을 묵상

     순교자는 천주교를 알게 되면서 지금까지 자신이 누렸던 모든 것을 포기하였다.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 왔기 때문에 이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그를 따르게 되었다.

     자신의 목숨을 노리던 원시장(백정)마저도 주님의 형제로 받아들인 분이었다.

     양반과 상놈 등의 구분은 통치수단으로서 인간이 만들었고 하느님 앞에서는 평등하다고

     주장하신 분이었다.

     배교와 회심을 거듭하였지만 끝내는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신 분이다.

 

      (원시장 베도로는 산적이며 백정이었다. 내포 사도 이존창 산에 만나고 후에 권일신

      선생을 만나면서 사람으로 대접하는데 놀라서 나쁜 과거를 뉘우치고 이존창에게 세례를 

      받았으며 따라 다니면서  어려운 이웃을 돕고 따뜻한 정으로 전교를 하여 2년 동안 30여

      명을 입교하게 하였다.

      권일신을 죽고 하늘같이 믿었던 이존창의 배교한 소식에 접하면서 슬픔 속에서 포졸에게

      잡혀 1792년 12월17일 61세 나이에 옥에서 고요히 잠들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 “보시기 참 좋았다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현실은 빈부의 격차,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차별 그리고 교회에

     서 마저도 소외된 이들에게 무관심 하고 있지 않은가? 

     불신과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 주님이 보시기에는 참 좋은 세상이겠지요?"

 

     주님 ! 인간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은 참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평등하게 이 세상을 맡겨 주었습니다.

     이 세상 소풍 끝내고 당신 앞에서 셈 받게 될 때는 공정 하리라 믿습니다.


07:45 여사울 출발  (묵주기도를  시작하였다.)

07:55 버스정류장 도착

     여사울에서 원신흥사거리까지는 첫번째 여정과 중복되므로 신리 성지11시 미

     시간을 맞추기 위하여 버스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15분을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아 지나가던 차를 이용하여 원신흥사거리까지 이동하였다.

     차들이 그냥 지나치고 갔는데 이분은 나에게 천사가 되어 오셨다.

     고마운 분을 위하여 안전 운행하시라고 기도드렸다.


08:17 원신홍 사거리

08:30 하흙 공소에서 휴식과 사진을 찍음

     공소를 지나서 걸어가는데 한 할머니께서 앉아서 무엇을 보고 게셨다.

     자세히 보니 매일 미사를 보고 계셨다.

      “ 성당에 가세요?”

      “ 예 성당에 갑니다. 어디 가세요?”

      “ 신리성지에 갑니다.”

      “ 은총 많이 받으시겠습니다.”

      “ 부족한 것이 많아서요.”

      “ 인간은 다 부족합니다.”

      “ 이곳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 공기가 좋은데 약을 치는 날은 냄새 때문에 힘들어요.

        나는 성지가 가까이 있어도 다리가 아파서 가 보지 못하여서.....”


     할머니는 성지를 못가는 것이 죄송하듯이 말끝을 흐리신다.


     할머니와 헤어져서 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또 않아서 책을 보고 계셨다.

     나는 주님을 만나러 갈 때 어떤 준비하고서 만나고 있는지 묵상하면서 할머니를

     위하여 기도하였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들녘에서는 약을 치시는 분들이 많았다. 날씨가 잦은 비 때문에 그 동안 약을

     못하시고 날씨가 좋은 오늘 하시는 것 같다.

     그러나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 농촌의 노령화라는 이야기가 피부로 와 닿아다.


9:00 세거리 공소 입구( 무명 순교자 묘는 삼화리 표지를 보고 우회전)

9:15 대전리 삼거리

9:23 무명 순교자 묘 입구

9:30 무명 순교자 묘 참배

    순교자들은  휘광이 칼 아래에서도 주님을 노래하였다니?

    묘지 주변에 아름답게 피어난 야생화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무명 순교자의 삶과 같지 않은가?

    자신을 알아주기 바라고, 알리기에 여념이 없지 않은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만이 알아주면 되지 않을까?


9:55 묘지를 출발

    묘지를 출발하여 궁리로 내려오는데 새참을 먹고 계시는 두 아주머니께서 옥수수를

    먹고 가라고하면서 하나를 주셨다.

     “어디에서 오세요. 무엇을 하고 계세요.”

     “ 도보성지 순례 중입니다. 여사울에서 출발하여 오고 있습니다.”

     “ 장하십니다.”

     “ 기도하면서 오셨나요.”

     “ 네 ”

     “ 합덕이라면 이해하지만 신례원(여사울을 잘 모르고 계셨다.) .....”

     “ 믿음 때문에 가능한 것 야!”

     “ 감사합니다. 신리성지 가는 길이 맞나요.”

     “ 이 길로 가면 됩니다.”

     “ 잘 먹고 갑니다.  ( 중간에 커피 한잔 까지 대접을 받았다.)


    헤어져 오면서 내 믿음은 얼마 만큼인가? 묵상하여 보았다.

    나는 아직도 순교자들처럼 주님에 대한 믿음이 크지 못하고 티끌에 불가하다.

    나를 돌아보니 주님 보기에 부끄러웠다.


10:15 신리성지 도착

     오는 도중 비가 오락가락하여 판초를 쓰고 성지에 도착하였다.

     수녀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시었다. 세면장을 물어보고 세수를 하였다.

       “혼자 오셨나요.”

       “네”

        “점심을 먹고 가세요.”

        “도시락을 싸 가지고 왔습니다.”

        “도시락은 저를 주세요.”

        “감사합니다.”


      성당 현관을 비로 쓸고 계시는 수녀님을 보면서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다.

      불가에서는 마당을 쓸고 계시는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도량을 가름한다고 하던데

      우리 수녀님은 무슨...........????????

 

      성당에서 성체조배하면서 손자선 성인이 형리 앞에서 자신의 살점을 뜯는 성화를

      보면서 주님의 자녀로 당당한 모습을 보았다. 나는 내가 따르는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당당하여 보았는가?

      아직도 비신자들 앞에서 식사 때 성호도 제대로 못할 때가 많지 않은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었다. 


      주님! 그래도 아무 곳에나 성호를 그을 수 있는 힘을 주시어서!  감사합니다.


11:00 성모승천 대축일 미사

     미사를 집전하시는 신부님 모습과 손자선 성인 모습이 똑같이 편하여 보였다.

     아니 기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손자선 성인을 묵상하며 편하게 주님을 영접할 수 있어 기뻤다.


12:00 점심식사

     수녀님이 “형제님 꼭 식사하고 가세요.”

     식당에 가서 식사준비 하시는 자매님들 불볕더위에도 싱글 벙글 그리고 까르르 

    웃음소리 얼굴에 기쁨이 충만하였다.


     처음 만난 수녀님, 신부님, 자매님들 얼굴 표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 모습은 주님의 향기가 나는 모습일 것이다.

      이 향기가 온 세상에 가득할 때 주님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모습일까?

 

     식사 전 신부님과 대화중에

      “ 이 주변은 다양한 도보 성지 순례를  할 수 있습니다.”

      “ 여사울에서 올 때 삽교천 뚝방 길을 이용하여 거더리 성지로 오는 방법이

        있습니다.”

      “ 이 지역은 어디를 가나 순교자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길은 별도 순례를 하면 좋을 것 같다.


    내포지방 도보 순례 길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순교자들의 숨결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 같다.


    “내포지방은 삽교천을 따라 다양한 문화를 접합면서 새로운 학문과 신앙을 받아들일

     토양이 마련된 곳입니다.

   “ 박해를 피해서 산으로 들어갑니다. 차령(금북정맥 )산맥 줄기로 들어가서 교우촌을

     형성하였습니다.”

   “ 신리 중심으로 30리가 손자손 성인의 땅인데 지금은 손 씨가 없습니다.

     박해가 얼마나 극심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신부님과 신자 분들이 식사하시는데 자매님이 다라에다 보리밥을 비벼서 다 같

   공평하게 나누어 주시는데 참 맛 있었다.

   이 모습은 또한 우리나라의 초대 공동체의 모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손맛입니다.  박 나물도 처음 먹었는데 참 맛이 있었다.


12:25 다블뤼 주교관에서 신부님 성지 설명

     신부님의 성지 설명 중에 하신 말씀 “주님의 기도” “보시기 좋았다” “주님의 종이오니”

     듣고서 제가 자주 인용하는 말이라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어 기뻐었다.


     저는 성경을 압축하면 “사랑” 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신부님 말씀을 듣고서 묵상하여 보니

     “사랑”+“주님의기도”+ “주님의 종이오니” 인 것 같습니다.

     신부님 좋은 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13:10 성지 순례

     사진을 몇 장을 찍고 있는데 수녀님이 차 한 잔을 주시었다. 도보 성지 순례에 대하여

     대화를 나누었다.

     순례를 하면서 만난 분들에게 할 수 있는 것이 기도뿐이라 기도로써 감사드렸다.


14:00 신리성지 출발

     수녀님께서 기도하여 주신다는 격려를 듣고 성지를 출발하였다.


14:30 거더리 공소

     거더리 공소를 찾는데 20분을 소요하였다.(아무런 표지가 없었다.) 다른 분들

     잘 모르고 계셨다.

     아랫마을에서 위 마을로 가서 기웃거리다 길가에 계신 어르신에게 여쭤보았다. 

     어르신 집 라고 하면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공소는 박기봉 (75세) 어르신 댁이었다.

     어르신께서 차 한 잔 하고 가라고 했어 집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주교님께서 나무더미에 숨어 계시던 장소를 가르쳐 주시었다. 지금은 집을 개축하여

     옛 모습을 볼 수 없어 서운하였다.

     그래도 잠깐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내온 수박과 보리차 한 잔을 감사히 먹었다.

     ( 오아시스에서 발견한 샘물처럼....)

 

     “ 주교님이 나무더미에 숨어 계셨는데 지금은 초가집을 헐어 버리고 새로 집을 지었네.”

    “ 거더리 나루터는 지금 사용하고 있나요. 건너면 추사고택이고 이곳으로 주교님께서

      잡혀 가셨다는데”

    “ 사용 않아 구양교로 돌아다니고 있네. 어디에서 왔는가?”

    “ 온양 모산에서 왔습니다.”

    “ 죽기 전에 강당이라도 지으려고 학교에서 패 자재를 구입하였는데 힘들 것 같아… ”

    “ 오면서 보니까? 약을 주시는데 노 부부가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 농촌이 10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끝나지 않게 서..... 나도 75살인데.”

    “ 공소인가요?”

    “ 지금은 합덕성당 구역이야 예전 신자가 100명 이었는데 지금30명도 않되.....

    “ 삽교천 뚝 길은 어떠하나요.”

    “ 길이 자동차도 다닐 수 있어”


   더 쉬고 가라는 어르신을 뒤로 하고 큰길을 버리고 삽교천 뚝 길로 방향을 잡았다.

   어르신 세대에서 이제 모든 역사가 묻히는 것을 못내 안타까워하시는 것 같다.


15:40 청룡교

    청룡교 못 미처서 정자에서 휴식을 취하였다.

    목침도 있어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는 데 바람도 솔솔 부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었던 한국천주교 역사 만화책을 재미있게 보았다.

    순교자들의 삶과 어떻게 전교활동과 우리나라 초대 교회를 세운 이야기들을 만화책으로

    10권이 있다.

    오래 전에 보았는데 순례하면서 보니 가슴에 깊이 와 닿는다.


16:00 청룡교 출발

     어느덧 시간 16시가 되었다 . 서둘러서 배낭을 꾸려서 청룡교을 출발하였다.


16:45 용리 갈림길

     갈림길에서 정자에서 쉬시는 어르신께 용동리 가는 길을 여쭤봤다.

     건너편 동네라고 하신다.

     이곳에서 직진하면 덕산이고, 좌회전 하면 용동리이다.


17:00 배나드리

     순교자 인언민 순교자 기념비가 있는 곳에 도착하여 철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가던 어른이 따라 와서 횡설수설하면서 방해를 하는데  귀찮아서 비가 오

     얼른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리니

     삼발 리어카를 저기까지만 가다라고 하시고, 조금 가다가 또 와서 왜 혼자 왔는지,

     언제 올 것인가? 등 한 말을 또 하면서 횡설수설하시는데  문뜩 예수님께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귀찮게 하였을 때도 그들을 고처주시고 따뜻하게 맞아 주서 는데

     나는 귀찮게 여기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손하게 그분께 비가 오니 집에 들어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분과 헤어져서 인언민 순교자의 마지막을 묵상하여 보았다.


     “그렇구 말구, 기쁜 마음으로 내 목숨을 바치는 것야”

 

    조금만 힘들고 불편하면 불평하는데, 세상 물질이 우선이고 주님은 뒷전인데,

    주님을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목숨을 바칠 수 있는가?

    순교자들은 이렇게 주님을 위하여 기쁘게 목숨을 봉헌하였는데......


   지금의 순교는 주님을 첫 자리에 놓는 같다.

   삶속에서 부,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아니 주변에 있는 가족들도 바보라고 하는 손가락질을 참아야 한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 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하느님으로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을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하시었기에.......

 

     “주님의 종이오니”


17:15 기념비 출발

     용동리에서 베나드리 벌판을 바라보면서 덕산성당으로 향하였다.

     용동리 초등학교 못 미처 가리 방향으로 우회전하였다.

     가리에서 소낙비를 만나서 빗속에서 계속 걸었다.

     점점 힘은 빠지고 묵주 기도도 되지 않고 발목과 발도 아프고 종아리는 당기고 참 힘들다.

     이때 뒤를 돌아보니 무지개 떴네.

     오래 만에 보는 것 같다.

     주님께서 모이세 힘내라고 아름다운 무지개를 보여주신 걸까?

     그래도 지루하고 멀게만 느껴진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로 가신 길을 생각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힘을 내어

     걸어갔다.


18:20 덕산성당 도착

     얼굴을 닦고 성당에서 성체조배를 하였다.

     오늘 순례여정에서 만난 분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주님은 이분들을 통하여 나에게 주신

     메시지는 무엇일까? 


     “기쁨”  “주님의 향기”


    조용히 오늘 여정에 함께 하신 주님께 조용히 듣는다.


18:40 마무리

     19시 미사라 신자들이 오기 시작하여서 모든 일정을 마치기로 하였다.

     성당 문을 나서는데 배는 조금 고프지만 힘이 솟는다.

     예산 가는 버스를 기다리면서 수녀님 주신 떡을 한 조각씩 떼어 먹는데 꿀맛이었다.


     예산에서 온양 그리고 모산집에 돌아오니 20시30분이었다.


     주님! 무사히 집에 까지 동행하여 주시어 감사합니다.



                                이천칠년 팔월 십구일 (연중20주일)

                                배방산 아래에서 박근수 (모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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