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9일 (목)
(백) 부활 제6주간 목요일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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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 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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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영미 [sukmaria] 쪽지 캡슐

2001-01-02 ㅣ No.2313

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 그날

장애는 사라질 것이라 믿습니다.

 

나에게 언어장애가 생기지 않았다면, 아프지 않았다면 내 인생이 어떻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음~~ 잘 나가고 있겠지요. ^_^ 최소한 내 입장에서만큼은 말입니다. 제가 계획하고, 하고 싶고, 하길 원한 일에서만큼은 이를 악물고 고집스럽고 독하게 하고 있을 꺼라 여겨집니다.

저는 생각하곤 했어요. 최소한 말로 하는 일은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발만큼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난전에 생선장사부터 세일즈까지 나에게 닥치면 뭐든 할 수 있을 꺼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하느님께서  

"마리아! 너의 영혼을 위해 네 말하는 기능을 막을까 한다. 너의 구원을 위해 그게 좋겠다."

이렇게 미리 말씀하셨다면 저는 온갖 말로 하느님을 설득하려고 했을 겁니다.

"하느님! 그렇지 않아요. 제 말문을 막으면 하느님한테 손해지요. 제가 하느님의 기쁜소식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데 제 말문을 막아버리면 얼마나 손해입니까? 또 제가 노래로 하느님을 찬양하잖아요. 제 노래를 듣고 감동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제 노래소리 안 듣고 싶어요?  말문을 막기에는 제 재능이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하느님 안됩니다.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시고 결정해 주세요."

구구 절절한 변명이 참으로 길었을 것 같습니다.

 

병과 언어장애는 의논 없이 그냥 그렇게 조금씩 나에게 다가왔습니다..

어쩌면 병이 가벼웠을 때 진리를 깨닫길, 충분히 하느님을 느끼길 원하셨을 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저는 그 정도의 가벼운 병으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위인이 못되었습니다. 병이 깊어지고 나서야 제 삶을 좀 더 깊숙하게 인식하게 되었고 사람들과 그렇게 쉽게 나누었든 잡담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야 제 내면을 조금씩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을뻔하다가 다시 살아났을 때, 목숨은 건졌지만 한쪽 성대가 마비된 것을 알았을 때 감히 저는 그 누구에게도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목숨을 다시 얻었는데 말 좀 못하게 되었다고 투덜거릴 수가 있겠습니까? 한마디로 하느님께 찍 소리도 못했습니다. 목숨을 살려 주셨지만 언어장애를 남겨 두시는 하느님의 뜻을 알 것 같아 인간적인 복잡한 마음 뒤로하고 그저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들을 오래 대하면 빨리 지치는 제 병과 언어장애로 저는 혼자인 것에 조금씩 익숙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과 이런저런 많은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조용히 자연을 바라보고 앉아 있는 시간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조용히 서로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좋습니다. 말이 얼마나 뜬구름 같고 소음인지 가끔 느끼게 됩니다. 몇마다 라도 정확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필요 없는 말은 이제 점점 생각에서 벗어나곤 합니다.

 

말문이 막히면서 저는 글쓰기에 더 집착하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막힌 통로를 다시 열기 위해 제가 선택한 방법이지요. 한번씩 제가 왜 글을 쓸까? 생각합니다. 아직 제 안에 찌꺼기들이 많아서라는 것을 압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욕망, 한, 열정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안에 모든 것을 벗어버리기까지 아직 뭔가 구구절절 잡담을 더 해야 하나 봅니다. 그 과정이 필요하다면 하려합니다. 한번에 다 비워질 수 없는 것이 사람 마음이기에...

 

더 이상 나에게 말하는 것이 큰 의미가 되지 않을 때, 말 할 수 있는 거나 말하지 못하는 거나 제 생활에서 그렇게 큰 의미가 되지 않을 때 언어장애는 제 집착과 함께 소리도 없이 사라질 꺼라 믿습니다. 나에게 말에 대한 집착이 남아 있는 그날까지 언어장애는 언제나 나와 함께 할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하느님 제 말문을 열 필요 없어요. 그냥 이대로 두십시오. 편하고 좋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게 될 때 언어장애는 더 이상 나에게 아무 것도 아닌 "무" "없음"이 되어 사라져 버릴 것 같습니다.

 

더 이상 글쓰기로 풀어낼 한과 욕망이 없어질 때 저는 컴퓨터 앞에 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냥 오솔길을 걷고, 산언덕에 올라 큰 숨 한번 쉬고,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보고 맑은 약수 물을 마시는 것으로 한과 욕망이 사르르 녹아 버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몸둥아리의 장애와 욕망이 더 이상 장애로 한으로 느껴지지 않는 그날

나는 참 자유, 참 해방을 맛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날이 언젠가는 꼭 오리라고 저는 느끼고 있습니다.

오늘도 한발 더 그날에 가까이 왔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2001년 1월 2일

                                        천안에서

                                        석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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