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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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人 안도현’과 너무 다른 ‘피고인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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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3-11-08 ㅣ No.698

안도현 시인은 ‘연탄재 시인’으로 유명하다. 1994년 발표된 시 ‘너에게 묻는다’에 포함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는 시구는 안 시인을 유명 작가로 만들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 복직한 안 시인은 이 시가 발표된 이후 3년 만에 교사직을 접고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단은 그의 작품세계를 ‘자아성찰’로 표현한다. 한국문학번역원 도서관은 2012년 안 시인의 작품에 대해 “변화된 정세와 삶의 국면 속에서 자신을 질책하고 새롭게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반성적 주체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정치판에 들어온 안 시인의 목소리는 기존 정치인보다 훨씬 거침이 없었고 거칠었다.
 
안철수 당시 무소속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안 후보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안 후보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자 “개콘(개그콘서트)보다 웃기는 찌질이”라고 말하기도 했고, 박근혜 후보에게는 “공주가 여성을 대표하던 시절은 봉건사회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거침없는 말을 쏟아냈다.

안 시인은 대선이 끝난 뒤 “박근혜 후보가 도난 문화재로 등록된 안중근 의사 유묵(遺墨)을 갖고 있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린 사실이 문제가 돼 공직선거법상 허위 사실 유포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그의 후보자 비방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됐다. 그는 재판 후 트위터를 통해 “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의 기분”이라고 재판부를 비난했다.

서정성을 바탕으로 한 자아성찰을 추구했던 ‘시인 안도현’은 어느새 상대 후보를 악의적으로 비방한 글을 쓰고 사법부의 판단조차 인정하지 않는 ‘피고인 안도현’이 됐다.

안 시인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절필을 선언하고 시를 쓰지 않고 있다. 안 시인을 아끼는 많은 사람들은 그가 비방과 원망의 말이 아니라 성찰의 시를 내놓길 기대하고 있다.

김병채 사회부기자 haasski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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