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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증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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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철 [hl1ye] 쪽지 캡슐

2005-11-08 ㅣ No.528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십자가를 안테나로!

  프랑스 소요사태의 불씨가 인근 유럽국가로도 날아간 모양입니다. 지난 밤에 프랑스에서만 1,000대 이상의 차량이 불탔고 또 독일에서도 몇 대의 차량이 불탔다고 합니다. 그리고 ‘똘레랑스’ 즉 ‘관용’의 전통을 자랑하던 프랑스가 시위관련자 엄벌대처를 내세우는 가운데 경찰이 2명이나 피격이 되고 또 시위자들에게 며칠 전에 폭행을 당한 어느 시민이 끝내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럴 때 어머니의 자랑스러운 조국 즉 ‘프랑스’라는 뜻의 이름을 받고 태어난 이탈리아 아씨시의 성자  ‘프란치스코’의 기도가 정말 절실해집니다. 그리고 교회의 맏딸인 프랑스가 세속적인 정의의 길보다는 주님의 사랑과 평화의 길을 걷기를 바라면서 성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와 오태진님의 신문칼럼, 그리고 영화 ‘증오’를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평화의 기도>


     주여,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주여,


위로를 구하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을 구하기보다는 사랑하게 해 주소서.


     자기를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잊음으로써 찾으며


     용서함으로써 용서받고


     죽음으로써 영생으로 부활하리니.



                                <프랑스의 ‘증오 세대’>


  27세의 마티유 카소비츠가 칸영화제 감독상을 따낸 프랑스 영화 ‘증오’(La Haine·1995년)에선 분노가 스크린을 찢고 뛰쳐나올 듯 으르렁댄다. 인종폭동이 일어난 파리 외곽의 이민자 빈민촌을 쏘다니는 유대계와 아랍계, 그리고 흑인 건달의 하루를 폭발적 영상으로 쫓는다. 셋은 불합리한 체제의 폭력을 목격하며 증오를 키우다, 경찰서에 갇혀 있던 시리아 소년이 맞아죽자 폭발한다. 이들은 경찰과 권총을 맞겨누는 파국을 맞는다.


   영화 ‘증오’는 실화를 다뤘다. 1994년 외국인 입국·체류와 프랑스 국적 취득을 까다롭게 한 이민법이 통과되자 시위가 잇단다. 시리아 소년이 경찰서 유치장에서 살해되면서 시위는 무력충돌로 격화한다. ‘증오’는 인종차별에 병든 프랑스를 어떤 다큐보다 강렬한 직접화법으로 세계에 드러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이 영화를 인용해 인종 간 화해를 강론했다. 프랑스의 소수민족 젊은이들에겐 ‘증오 세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엊그제 비상사태 선포까지 부른 프랑스 인종소요의 발화점도 두 소년의 죽음이다. 아프리카 북서부 말리와 튀니지계인 두 10대는 검문을 피해 달아나 변전소 담을 넘다 감전돼 죽었다. 방화와 폭력사태는 열흘을 넘겨 지방으로 번지며 폭동 조짐을 보이고 있다. ‘카트리나’ 재난을 비롯해 미국에서 인종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사회통합에 실패한 나라”라고 야유했던 프랑스는 할 말이 없게 됐다.


  ‘해 지는 서쪽’이라는 아랍어 ‘마그레브’는 알제리·튀니지·모로코 같은 아랍·이슬람권(圈) 북서부 아프리카의 옛 프랑스 식민지를 이른다. 마그레브 출신 ‘뵈르(beur)’는 프랑스 600만 이민자의 절반을 넘는다. 풍부한 노동력과 천연가스 공급원으로 프랑스의 ‘텃밭’이라 불리던 마그레브는 종교·인종 갈등의 원천이 됐다. 프랑스가 내세워 온 ‘톨레랑스’(관용)의 전통도 뵈르에겐 말뿐이었다는 얘기다.


  1980년대엔 그래도 반(反)인종주의 운동이 활발한 편이었다. 마르세유에서 파리까지 이어진 ‘뵈르들의 행진’의 구호는 “나는 이곳에 있고 이곳에 남을 것이다”였다. ‘내 친구를 건드리지 마라’는 반(反)차별 배지도 유행했다. 그러나 지금 ‘증오 세대’는 마천루에서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밑바닥 삶에 좌절하고 있다. 영화 ‘증오’의 시작과 끝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며 중얼거리는 남자의 독백이다. “중요한 건 추락하는 게 아니라 착륙하는 거야.” 그의 끝은 착륙이 아니라 파멸일 수밖에 없다. 

                                                                                         (오태진 / 조선일보)



                        <영화 ‘증오’>


  프랑스 파리의 교외에 방리유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이민자들과 부랑자들의 집합소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할렘가와도 같은 슬럼지역이다. 방리유에 사는 빈쯔, 사이드, 위베르는 각기 유대계, 아랍계, 흑인으로서 친구사이다. 이들은 방리유의 전형적인 불량소년들이다.

 

                              (영화 ‘증오’)


  어느 날, 경찰의 심문을 받던 아랍 소년 압델이 혼수상태에 빠졌다는 소문이 나돌고 거리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돈다. 경찰은 계엄령을 선포하는데, 빈쯔는 압델이 죽으면 자기도 경찰 하나를 쏴 죽일 거라고 호언장담 하면서, 지난 밤 싸움에서 얻은 총 한 자루를 숨기고 다닌다..


                                                <성서묵상>

 

                          내가 이제 가장 좋은 길을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내가 인간의 여러 언어를 말하고

천사의 말까지 한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울리는 징과

요란한 꽹과리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전할 수 있다 하더라도

온갖 신비를 환히 꿰뚫어 보고

모든 지식을 가졌다 하더라도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비록 모든 재산을

남에게 나누어 준다 하더라도

또 내가 남을 위하여 불 속에 뛰어 든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모두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고린 13, 1-3)


                           (마르코니 문화영성 연구소 : http://hompy.dreamwiz.com/hl1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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