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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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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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3-18 ㅣ No.170698

[사순 제5주간 월요일] 요한 8,1-11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오늘 제1독서인 다니엘서에 나오는 수산나 이야기와 복음에 나오는 간음한 여인 이야기는 서로 많이 닮아 있습니다. 특히 ‘고발자들’에게 초점을 맞추면 자기가 저지른 죄는 생각하지 않고 남의 죄를 고발한다는 측면에서 같지요. 그러나 고발 당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면 상황이 좀 다릅니다. 수산나는 억울하게 누명을 쓴 사람이고, 복음 속 여인은 간음이라는 큰 죄를 지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재판이 이루어진 결과에 초점을 맞추면 수산나 이야기는 인간의 부정과 불의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다니엘 예언자를 통하여 당신의 정의를 실현하시는 내용이고,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인과응보’가 됩니다. 간음한 여인 이야기는 인간의 죄악과 교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용서와 화해를 실현하시는 내용이고,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하느님의 크신 자비’가 됩니다.

 

이제 복음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봅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던 여인을 그 현장에서 적발하여 예수님 앞에 끌고 와서는 그 처분을 어떻게 해야할지를 묻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골치 아플 수 있는 질문입니다. 율법에 따라 돌을 던져 죽이라고 하면 예수님이 지금까지 강조해오신 ‘사랑’의 원칙은 어딨냐고 트집을 잡을 것이고, 용서하고 풀어주라고 하면 율법 규정 중에서도 핵심에 해당하는 ‘정결법’을 어기라고 종용했다는 식으로 예수님을 고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예수님은 그런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쉽게 걸려들 분이 아니시지요. 짧고 명료한 말씀을 통해 ‘어떻게 단죄할 것인가’의 문제를 ‘누가 그녀를 단죄할 수 있는가’의 문제로 뒤바꾸어 버리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 말씀을 듣고 자기 모습을 성찰해 본 이들은 부끄러움으로 고개를 푹 숙인 채 하나 둘 떠나가고 어느 새 성전 마당에는 예수님과 그 여인 둘만 남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그 장면을 이런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하셨지요. “모두가 다 빠져나가고 오직 둘만 남았습니다. 우리 인간을 대표하는‘비참한 여인’과 ‘하느님의 자비’ 둘만 남았습니다.” 이유를 따져묻거나 추궁하지 않는 사랑, 조건 없이 먼저 용서하는 사랑,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를 주며 격려하는 사랑을 통해 진홍빛처럼 붉던 그녀의 죄가 양털 같이 희고 깨끗해진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예수님으로부터 너무나 큰 용서와 자비를 체험한 그 여인은 사랑을 실천하는데에 최선을 다함으로써 자신이 사랑받았음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삶을 살았을 겁니다. 우리도 그 여인처럼 주님으로부터 조건없는 용서, 제한 없는 자비, 한결 같은 사랑을 받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습니까? 눈 감아 주시고 기회를 주시며 격려해주시는 주님 사랑에 얼마나 성실하게, 얼마나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있습니까? 혹시 사랑의 응답에 뭉그적거리고 있다면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무죄선고’가 아니라 ‘집행유예’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은 운 좋게 집행유예로 넘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회개와 사랑의 실천을 계속 미룬다면 다음 판결은 절대 대충 넘어갈 수 없을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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