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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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반려자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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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8-02-06 ㅣ No.118089



2018.2.6. 화요일 성 바오로 미끼(1164-1597)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1열왕8,22-23.27-30 마르7,1-13




영원한 반려자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



나라가 평창겨울올림픽 개최로 인해 온통 축제 분위기입니다. 올림픽에 관한 몇 일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올림픽을 나흘 앞둔 5일 강릉아트센터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연설에 나선 문대통령의 감동적 연설의 일부입니다.


“불과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여러나라에서 평창올림픽의 안전을 염려했습니다.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참가하고 남북이 단일팀을 구성하는 평화올림픽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가능한 상상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염려는 사라졌고 상상은 현실이 됐습니다. 정말 멋지지 않습니까?”


상상은 현실이 됐습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정말 멋진 일입니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분명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길 희망하며 또 그리 되리라 믿고 간절히 기도하는 우리들입니다. 


지난 4일 오후 남북 단일팀과 스웨덴과의 연습경기중 철벽방어 골리 신소정의 일화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시속 100km가 넘는 퍽, 유효스팅 35개중 32개를 막아내는 눈부신 선방으로 온몸이 멍이 들 정도로 실점을 최소화했다는 것입니다. 


신 선수의 좌우명, “No pain, No gain”이 참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고통이 없이는 얻는 것도 없다는 좌우명입니다. 마치 추운 겨울 없이는 따뜻한 봄도 없다는, 고난과 죽음이 없이는 부활도 없다는 파스카 진리처럼 느껴지는 좌우명입니다. 우연이나 요행의 성공은 없다는 것입니다. 머리 감독은 “얼마나 뛰어난 선수인지 설명이 필요없다.”고 그를 칭찬했다 합니다. 이렇듯 각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고 아름답습니다.


오늘의 일본의 순교성인들 축일이 참 각별합하게 느껴집니다.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 박해 때 바오로 미키 수사는 33세 나이에 25명의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1597년 2월 5일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하셨습니다. 일본인들과 유럽인들, 예수회수도자들, 프란치스코회수도자들, 평신도들로 이루어진 25명 순교자들은 1862년 시성되었습니다. 순교자들 역시 시공을 초월하여 주님과 함께 ‘영원한 현재’를 살면서 영원한 감동을 줍니다.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진행과 일본 순교성인들의 전구로 전운이 감도는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은 분명 도와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반려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 임마누엘 예수님이십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 1독서의 솔로몬의 기도가 참 진실하고 감동적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주님이 함께 계신다는 이 진리를 몰랐습니다. 후반부 기도가 이를 입증합니다.


“당신 종과 당신 백성이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드리는 간청을 들어 주십시오. 부디 당신께서는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 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하늘에 계신 초월자 하느님이 여기 함께 우리와 함께 내재하신다는 사실은 얼마나 놀랍고 위로가 되는 지요. 바로 이런 하느님이신 주님을 모시는 이 거룩한 미사시간이 아닙니까? 열왕기 상권 제1독서에서 솔로몬은 하느님께 묻습니다.


“그러나 어찌 하느님께서 땅 위에 계시겠습니까?”


이에 대해 창세기가 멋진 답을 줍니다. 바로 여기 땅 위에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사람들이기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사십니다. 그러니 솔로몬의 성전같은 거룩한 장소들, 오늘 복음의 몇몇 바리사이들 손을 씻는 거룩한 수행들 모두는 인간의 거룩한 존엄과 비교할 때는 참으로 초라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무적인 진리인지요. 주님의 성체를 모시는 우리가 살아있는 주님의 성전이요 살아있는 주님의 감실이자 성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어제 강론에 인용했던 ‘홈 쉬트 홈!’입니다. 주님의 집은, 주님의 가정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하나하나가 주님의 집이자 주님의 가정이 됩니다.


비록 우리가 교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홈, 쉬트 홈’인 파스카의 예수님은 우리 가까이 계십니다. 우리보다 더 우리 가까이 계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고귀한 품위의 인간인지요.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법이 선포하고 방어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먼저입니다. 이런 사실을 통찰한 복음의 예수님께서 위선자들인 바리사이들에 대해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따끔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면 나를 헛되이 섬긴다.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너희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버린다.”


이런 예수님을, 살아있는 사람을, 하느님의 계명인 사랑을 잣대로 분별할 때 삶은 단순해집니다. 주님을 헛되이가 아닌 참으로 섬길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느님 가까이에서 본질적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계명 앞에서 사람의 전통은 모두 상대화됩니다. 그러니 절대적인 것은 하느님의 사랑 하나뿐입니다.


어제 읽은 신선한 기사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문대통령은 5일 청와대 각 비서관들에게 초심을 잃지 말자는 취지에서 신영복 선생의 글인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선물했다 합니다. 신영복 선생이 참여정부시절 노대통령에게 선물한 것으로 그 때의 기억을 살려 그 글을 찾아 낸 것입니다. 


춘풍추상은 채근담에 나오는 문구로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과 같이 부드럽고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 한다.”는 뜻으로 공직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이 보다 더 훌륭한 좌우명도 없을 것입니다. 영원한 반려자,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의 삶 또한 이래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과 함께 ‘홈 쉬트 홈home! sweet home!’ 인생을, 춘풍추상春風秋霜의 인생을 살게 하십니다.


“행복하옵니다, 당신 집에 사는 이들! 그들은 영원토록 당신을 찬양하리이다. 정녕 당신 앞뜰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낫습니다.”(시편84,5;11ㄱ). 화답송 시편, 그대로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같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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