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좌담에 참석한 평신도 신학자 경동현 · 유정원 · 황경훈 ⓒ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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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톨릭 평신도 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가기관의 불법 선거 개입과 관련, 2013년 9월 11일 ‘천주교 평신도 1만인 시국선언’을 시작으로 세 차례의 시국 기도회가 열렸고, 12월 23일에는 6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대한문 앞에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강정마을, 밀양, 쌍용차 해고자 문제, 그리고 최근의 국가기관 불법 선거 개입 등 사회적 사안에 대해 신학적으로 해석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바 있다.
그리고 신학적 해석이나 논의의 확장에 대한 신학자들의 역할을 역설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한 현장의 신학, 교회의 야전병원 역할, 변방의 신학 역시 신학자들에게도 적용된다.
평신도 운동이 단절됐던 시간을 지나 다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신학적인 조명이다.
이런 맥락에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새롭게 등장하는 평신도 운동에 대해 고민하고, 지금의 사태에 대해서 우리 교회가 나아갈 바를 신학적으로 비춰보기 위해 좌담회를 마련했다.
이번 좌담회에는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장, 평신도 신학자인 황경훈 · 유정원 박사가 참여했으며, 진행은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한상봉 편집국장이 맡았다.
한상봉 : 평신도 운동에 대한 신학적 성찰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게 우리신학연구소(이하 우신연)라고 할 수 있다. 본론에 앞서 우신연이 한국 교회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간단히 소개해 달라.
경동현 : 우리신학연구소는 초기부터 10년 정도 교구와 본당, 수도회 진단 프로그램을 진행해왔다. 교회 쇄신과 관련해 근본적인 문제가 교회 구조에 있다고 봤기 때문에, 그 구조를 분석하고 진단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몇 차례에 걸친 교구 시노드를 경험하고, 200주년 사목회의도 참여했지만, 교회는 바뀐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진단 프로그램이 별로 효력이 없었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주로 교회 내 교육과 관련된 활동에 신경을 쓰고 있다. 2008년에 ‘우리신학배움터 울림’을 만든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다. 그밖에 ‘좋은 본당 일구기’ 프로그램을 통해 본당 구조 안에 있는 분들과 고민을 나누고 의식전환을 꾀해 보자는 노력이다.
한상봉 : 본론으로 들어가서, 한국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존재감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는가? 1987년 이후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발언이 점점 위축되고, 가톨릭농민회나 가톨릭노동청년회(JOC) 등 활력적이었던 평신도 단체들도 예전 같지 않은 느낌이다.
1987년 두 차례에 걸친 주교회의를 거치면서 교회 안의 진보적 인사들이 청산되고, 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평신도 운동을 장악한 게 20년 가까이 지속되어 왔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 안에서 평신도의 위치는 미미하다. 평신도의 존재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경동현 : 가톨릭대학생연합회(가대연) 활동 경험을 통해 보자면, 우리신학연구소를 시작할 무렵,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사무국장들 중 가대연 출신이 많았다. 당시 그들이 정평위 안에서 하는 역할은 지금과 많이 달랐던 것 같다. 나름대로 독자적 활동을 했다.
그러나 평신도사도직협의회(현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를 비롯해 교회 보수화 현상이 짙어지면서 예전에 활동하던 이들이 교회에서 상처를 받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정의평화위원회가 교구별로 다시 재구성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참여하고 있는 평신도들의 존재감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평신도 활동가들은 사제들의 협력자 정도에 머물고 있는 인상이 짙다. 이들이 다른 교구청 직원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모르겠다.
한상봉 : 그렇다. 정평위 활동이 예전에는 사제 운동이 아니었는데, 지금은 사제 운동을 지원하는 센터와 같은 구조가 된 것 같다. 지난 20년, 30년간 보수화되는 과정에서 평신도의 날갯죽지가 다 꺾인 상황을 반영된 것이 아닌가.
지금은 다시 평신도를 규합하기도 쉽지 않고, 이미 나름대로 의식 있는 이들은 많이 교회를 떠난 상태라 난감하기도 하다.
경동현 : 예전에는 정평위나 평신도 운동에 대해 교회가 공인이냐 비공인이냐, 즉 제도권이냐 비제도권이냐를 갖고 많이 따졌다. 제도권 아닌 단체에서 강한 이야기를 하면, 제도권에서 말리다가 안 되면 해체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사제, 수도자가 주도하면서 공인, 비공인 논쟁은 없어졌다. 어떤 면에서는 다행일 수 있지만, 전반적으로 평신도의 존재감이 예전보다 훨씬 미미해졌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유정원 : 제 생각에는, 그때만 해도 우리가 20대였고, 젊은이들이 민주화라든지, 사회 문제에 공동체적으로, 집단적으로 함께 움직이곤 했는데, 지금은 젊은이들이 교회나 종교에 사실상 무관심해졌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평신도 운동을 한다면, 그 당시 활동했던, 이제는 중년이 된 우리가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먹고 살기 바쁘다보니 어려운 점이 있다.
보통, 본당에서도 사목위원 하시는 분들이 50~60대이고, 교회나 사회 문제에 보수적인 입장인 경우가 많다. 최근 시국미사에 참석하는 사제나 수도자, 평신도들의 경우에도 일반적인 신자들은 별로 없고, 개별적으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거나 사회교리에 밝은 이들이 모인 것이다.
▲ ⓒ강한 기자
한상봉 : 결국 평신도의 존재감이 없다는 말의 핵심은, 활동하는 젊은 평신도가 없다는 뜻인가?
유정원 : 젊은 평신도도 없고, 나이든 사람들 중에서도 문제의식이 있는 이들은 본당 활동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수적인 분들, 사제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주로 본당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나 역시 젊을 때는 주일학교 교사를 하기도 했고, 지금도 본당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반 모임 정도나 참여할 뿐, 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기가 힘들다.
또 반모임에 나가더라도 내가 신학을 공부했다는 것을 드러내기도 어렵다. 그냥 모임에서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복음 나누기 할 때 나름의 견해를 말하는 정도다.
경동현 : 시국 문제에 사제나 수도자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판을 만들어 주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평신도들의 입장에서는 사제와 수도자들의 생활과 다른 생활패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성직자 위주의 운동 방법이 평신도들이 참여하기 어렵게 만드는 측면도 있다.
예를 들어 제주 강정과 밀양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신도들은 생업 때문에 매일 출근해야 하는데, 이런 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게 한계가 있다. 결국 평신도들이 시국 문제에서도 주변화되기 쉽다.
대한문 미사도 저녁 6시 30분에 봉헌했는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 시간에 미사에 참여할 수 없다. 이런 활동에서 평신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되었으면 하는데, 그런 기획이나 고민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한상봉 : 그런 고민을 신부님들에게 요구하기는 어렵다. 어차피 이런 것은 당사자인 평신도가 고민할 문제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라고 할 수 있는 평신도 주체가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활동단체 연합조직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지만 신자들을 대중적으로 포섭하기에는 힘에 부치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인가. 최근에 정의평화민주 가톨릭행동 추진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여전히 사정은 다르지 않다. 다만 이러한 활동이 SNS 등 인터넷과 스마트폰 환경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약간의 희망이 보이고 있다.
경동현 :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예를 들면, 환경사목의 경우 본당 차원에서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실천사항들을 만들어 제시하고, 신자들의 개인 활동을 독려한다.
4대강 공사 문제의 경우에 이것은 밀양 송전탑 문제, 농촌 문제와 다 연결되는 것인데,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이렇게 연결해서 고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보통 신자들은 그런 고민과 제안이 자신들의 일상과 별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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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가자 경동현 (우리신학연구소장) 황경훈 (국제가톨릭지식인문화운동 신학위원회 위원장) 유정원 (가톨릭대학교 성심교정 종교학과 강사) 진행 : 한상봉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국장 정리 : 정현진 기자 |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승인 2014.01.13 12:4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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