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금)
(백) 부활 제7주간 금요일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내 양들을 돌보아라.

인터넷의 역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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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덕 [naneuri] 쪽지 캡슐

1999-01-04 ㅣ No.2

아무도 글을 안올려 전에 제 홈페이지에 올릴려고 만들었던 자료를 올립니다. 아직 마무리가 되지 않아 뒤죽박죽입니다. 질문있으시면 메일 주시고요...


1. 인터넷의 역사

1960년대 초 미 국방성(DoD)은 핵무기 공격에도 네트웍을 통해서 군사 명령을 전달할 수 있는 방안을 탐색했다. 64년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의 랜드(RAND)사에서 폴배런이라는 사람이 중앙통제 장치가 없고 중간에 고장이 난 부분을 피해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네트웍을 설계했다.

이 설계에 기초하여 69년 ARPA(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지원을 받아 ARPAnet이 개발되었고 이것이 지금의 인터넷의 모태가 되었다. 초기의 ARPAnet에는 스탠포드, UCLA, UC 산타바바라, 유타주립대의 4개 대학이 서로 연결되었다. ARPA란 기관은, 소련이 우주선 스푸트니크의 발사에 성공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미국이 군사 분야에서 과학적 및 기술적으로 앞서기 위해 만든 기관이다.

ARPAnet은 소련의 핵 공격에 의해 일부분의 네트웍이 파괴되더라도 전체 네트웍에는 영향이 미치지 않고 미국 전역에 산제된 많은 연구소에서 이루어진 군사적 연구자료들의 공유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ARPAnet은 소규모 네트웍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호스트들의 분산자율형 구조로 만들어졌다.

군사적인 목적으로 시작되었던 ARPAnet은 순수 연구 프로젝트로 변경되어 BBN이라는 회사가 연구 프로젝트를 담당하여 ARPA의 연구진과 함께 실제 구축작업에 착수하여 1971년 미국의 MIT에서 ARPAnet의 시연회를 하였다. 1972년에는 ARPAnet을 일반에게 공개하여 학교나 연구소등과의 연결을 지원했다.

1982년에 각각의 프로토콜들이 한 데 묶여져 TCP/IP(Transmission Control Protocol/ Internet Protocol)의 완전한 형태로 개발이 완료되었고 국방성에서 표준으로 제정하였다. 당시의 모든 연구네트웍들의 프로토콜이 TCP/IP를 전환되었고 이로인해 본격적으로 인터넷의 발전이 시작되었다. 이때 연결된 호스트의 수는 213대이다.

다음 해인 1983년에 데스크탑 워크스테이션이 개발되었고 이의 운영체계인 4.2 BSD 유닉스에 TCP/IP 프로토콜이 기본적으로 탑재되고 이때쯤에 기술 개발완료되었던 이더넷(Ethernet) Lan이 워크스테이션에 기본적으로 설치되어 ARPAnet에 직접 연결되게 되었다.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은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군사목적의 MILNET이 분리됨으로서 ARPAnet은 순수 학술연구망이 되었다.

비 국망 부분의 컴퓨터 통신망의 필요성이 증대함에 따라 1983년 미 의회의 입법에 의하여 1985년에 미국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서 "고속 기간망"으로 56Kbps의 NSFNET이란 네트웍을 구축하였다. 이 네트웍은 미국 전역에 흩어져 있던 슈퍼컴퓨터들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되었다. NSFNET은 호스트까지의 연결까지 하였던 ARPAnet과는 달리 지역간을 연결하는 네트웍만 제공하고, 연결하고자 하는 기관이 연결과 유지비용을 책임지게 했다. 87년 T1(1.5Mbps)으로 91년에는 T3(45Mbps)로 확장되었다. 현재는 Gbyte의 기간망을 구축하고 있다. 보다 빠른 속도의 중심망으로서 역할을 시작하면서 ARPAnet이 갖고 있던 대중적 서비스를 NSFNET에 넘겨 주고 ARPAnet은 1990년에 발전적 해체를 하게 되었다.

[그림-1]은 이 NSFNET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굵게보이는 것이 T3 NSFNET이다. 이 NSFNET를 백본으로하여 2,0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네트웍이 거미줄 처럼 전세계를 연결하고 있다. 이와 같이 NSFNET은 인터넷의 기간망의 구실을 하고 있다.


[그림-1] NSFNET의 연결 현황

미국과학재단은 NSFNET의 목적을 교육·연구로만 한정시킴으로서(AUP: Acceptable Usage Policy) 상용 목적의 망을 별도로 구축하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91년 몇몇 상용 서비스 제공자들이 연합하여 NSFNET과 독립된 별도의 기간망을 구축하고 협회를 구성한 것이 CIX(Commercial Internet Exchange)이다. CIX의 구성에 따라 NSFNET의 원칙에 위배 되지 않고 상업적인 목적에서 인터넷를 사용 할 수 있게 되었고, 이에 따라 상용 부문의 급속한 성장을 가져 오게 되었다. 이 것이 지금 상용 서비스가 본격화된 계기라고 볼 수 있다.

현재는 각 국가간에 여러 가지 연결 축과 각종 상용망이 생김에 따라 NSFNET의 역활이 다소 약해진 상태이다.

한편 유럽의 CERN(The European Laboratory for Particle Physics)에서 많은 양의 연구정보들을 효율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1983년 3월에 Tim Berners의 제안에 의해 연구가 시작되어 90년 11월에 WWW를 제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초기에는 마땅한 브라우저가 없었던 관계로 Tree구조로 되어 있는 Gopher의 그늘에 가려 그리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1993년에 미국의 NCSA의 마크 안드레슨이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지원해주는 모자익이란 WWW 서비스 이용 도구를 만들어 내자 상황은 급반전하여 WWW는 인터넷의 세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하였다. 이후 모자익은 WWW 브라우저의 표준으로 자리잡았으나 뒤에 개발된 Netscape에 의해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다.

NCSA에서 모자익을 개발하였던 몇몇이 따로 독립하여 인터넷 전문회사를 만들었고 여기에서 만든 Netscape(Mozilla)는 보다 많은 기능과 빠른 속도로 모자익을 대체하여 현재 전세계 웹브라우저의 80%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인터넷의 확산과 전자결재 등의 상업적 이용에 힘입어 Netscape사는 인터넷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능가하는 회사로 발전을 하고 있다. 인터넷의 비약적인 발전과 Netscap사의 성공으로 인터넷도 충분한 사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었다.

현재는 많은 업체들이 여러 가지의 방법으로 인터넷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회사의 홍보, 소프트웨어의 배포 등의 간접적인 이용은 물론 가상 쇼핑센터, 가상 서점 등의 직접적인 이용도 있다. 이와 같은 인터넷의 사업적인 이용으로 인하여 현재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는 것이 전자결재와 보안이다. 95년 10월 18일 인터넷상에 처음으로 은행이 개설되었고 이 은행은 미국의 저축금용기관감독청으로부터 은행 인가도 받았다. 이 은행의 보안관련 작업은 전적으로 Netscape사에서 하고 있다.

95년 6월에 마이크로소프트, Netscape, 비자, 마스터 등의 7개사가 모여 인터넷상의 신용거래에 관한 표준을 제정하려 하였으나 9월에는 이들이 결별하여 마이크로스프트와 비자의 한그룹과 나머지 5개업체의 그룹으로 나뉘어 서로 업계표준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비자진영은 STT을 내놓았고 마스터진영은 SEPP를 내놓고 서로 표준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싸움이 형식적으로는 마스터와 비자의 카드사업자의 싸움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Netscape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싸움이다. 카드회사로서는 고객확보에는 관심을 보이겠지만 보안에 관해서는 어떤 방식이든 상관이 없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회사로서는 표준으로 채택됨으로서 막대한 라이센스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느 진영이 표준으로 채택될지는 미지수이다.


Copyright(c) 1998 Chung, Jong-Tuk
Last updated : Jun 1,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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